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Aug 07. 2020

거꾸로 걸어올라가느라 피곤한 일상

 당장 텔레비전을 켜거나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을 하면, 내가 알고 싶지 않아도 오늘이나 어제 있었던 일들을 모두 나에게 알려준다. 메일만 확인하고 로그아웃하고 싶어도 눈앞을 스쳐가는 수많은 단어들이 나를 더 피로하게 한다. 가만히 앉아 뉴스를 보면 (수백 년 전에도 그랬겠지만) 세상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지구의 자전 속도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사건들이 일어나는 것 같아 나는 매일 피곤하다. 


 공방의 바쁜 일도 많이 끝났고 과외도 일부 방학을 맞아서 그동안 사두었던 책들을 읽고 있는데, 관심 있는 걸 고르다 보니 어쩐지 다 여성에 관련된 책들만 책상에 쌓여있다. 이상하게 그런 책들을 읽으면, 뭔가 행동을 해야겠다던지, 적극적으로 투쟁해야겠다던지, 뭐 마음이 뜨거워진다기보다는 약간 슬퍼진다. 물론 화도 나긴 나는데, 슬퍼진다. 그래도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읽는다.  


 공방을 준비하고, 운영하고, 또 이사를 하면서도 느끼는 건데 여성 혼자 주(主)가 되어 뭔가 하려고 하면 상대방이(특히 어른 남성들) 그것 자체를 불완전하게 느끼는 것 같다. '남성'의 존재가 없으면 뭔가 앙금이 빠진 것처럼 취급하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있으면 더 보기 좋게 여기는 것 같다. 여성이 혼자 사업을 한다고 하면 굉장히 참견하고 가르치려고 든다. '남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한다. 남편이 있고 없고 가 왜 그런 차이를 만드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 철물점을 운영해온 나의 부모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었다. 아버지가 건축자재 배달을 나가시면 주로 어머니 혼자 가게를 보곤 하셨는데, 분명 어머니와 아버지는 동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만 "여자가 뭘 알겠냐, ""남편분이 더 잘 아시는데."등 성차별적인 발언을 일삼고, 사장님 취급(?) 자체를 안 해줬다고 한다. 주로 나이가 좀 있는 남자 손님이 주 고객층이었던 철물점의 특성상 더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니 애초에 대체 그 아저씨들은 왜 그런 말을 면전에 대고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말인가. 쓰면서도 화가 난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제가 만연한 나라에선 남편이 가장이 되어 일방적으로 돈을 벌고 여성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살림을 한다. 그렇게 장려한다. 우리나라도 대부분 그렇고 그것이 기본값처럼 여겨진다. 어떤 남성들은 그것을 보고 "여자들이 꿀 빤다"고도한다. 나보다 남편이 돈을 더 많이 벌고, 현재 결혼생활에 금전적으로 기여한 바가 더 많으니 어쩌면 나도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고 있는 여성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너무나도 편안하게 안착해버린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불평등을 떠올린다. 여기서 남편과 사이가 안 좋아지거나, 남편이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정서적인 폭력을 가하게 되면 백이면 백, 피해자는 아내가 되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나는 남성들도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일방적으로 돈을 벌어와야 하는 존재는 없다. 남자가 되는 법이나 남자다워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것도 없다. 그냥 우리는 타고난 대로, 그냥 각자 가정의 상황에 맞게 살면 된다. 다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 이전과는 같지 않은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따라야만 하겠지만. 나는 그저 어떤 한 개인의 결심 외에, 이 사회나 타인이 그 무엇도 강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활기차게 뭔가 실행에 옮기진 못하겠어서 이렇게 글을 쓴다. 거꾸로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기울어진 땅을 거슬러 올라가며, 나는 먼 훗날 내 자식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의 먹이로 사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