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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l 27. 2020

누군가의 먹이로 사는 삶

 나는 아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하지만 멀리 서는 잔잔해 보였던 바다가, 가까이서 보니 집 한 채를 덮칠만한 큰 해일이었음을 보고 놀라 피하듯,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려는 시도나 결심을 하다 보니 이게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고 책임감이 필요한 일인지 매일 인식의 범위가 넓어져서 요새는 두렵기까지 하다.     


 내가 7살 때 내 동생이 태어났기 때문에 나는 임신과 육아가 어떤 건지 어렴풋하게 알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입덧이 유달리 심하셨다. 내 동생을 가졌을 때 동네에서는 어머니가 암환자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주 짧은 머리를 하고 보통은 침대에만 누워 계셨다. 어머니는 냄새에 민감하셔서 믹서에 간 즙은 못 드시고 강판에 곱게 갈아 짜낸 즙만 드실 수 있었다. 음식 냄새도 못 견뎌하셔서 나를 임신하셨을 때는 오이만 드시고 동생을 임신하셨을 때는 우유랑 당근주스 같은 액체류를 많이 드셨다. 어머니는 침을 삼키지 못하셨고 항상 뱉어내셨다. 어머니가 누워 지내던 침대 옆엔 항상 까만 쓰레기통 같은 게 있었는데 어머니는 거기에 항상 침을 뱉으셨다. 나도 가끔 그 통을 헹구곤 했다. 더럽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들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평소 허약한 체질의 사람이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육상부에서 활동했고 운동을 좋아하시고, 잘하기도 하셨으며 굉장히 힘이 넘치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힘이 셌다. 악력도 엄청 셌다. 어머니는 에너지가 넘치셨고 해맑은 분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임신 중엔 우리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이 되었다.    


 임신이 힘들다는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었다. 아직 내가 겪어본 일이 아니기에 ‘어떻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1년 가까이 한 생명을 품고, 또 출산하고 양육한다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지만. 나는 그 이후를 말하고 싶다. 여성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다 쏟아붓게 만들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내려 가버리는 모래 같은 것. 엄마가 된다는 것. 움켜쥐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손 끝을 스쳐 지나가버리는 모래 같은 것. 엄마 됨이란 무엇인가. 그 후엔 무엇이 있는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양육하는 모든 과정에 사실 누군가의 온전한 희생이 필요하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라면 할머니의 희생이든, 아이를 돌봐주시는 이모님의 희생이든, 좌우지간 아이를 돌볼 규칙적이고 사랑이 담긴 손길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외벌이 가정의 경우 아내, 엄마가 온전히 희생하도록 요구받는다. 당연히 내 아기고, 사랑하니까 열심히 키우지만 사실 육아가 힘들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이다. 밥 먹이고, 기저귀 갈고, 놀아주고, 목욕시키고 이런 행위들을 7년 정도 하고 초등학교로 보내면 또 신경 쓸 일이 많다. 새로운 환경에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살피고, 들어주고, 학원도 알아보고,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면 좋을지 생각한다. 아이들의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칠 시간도 기회도 없고 아이들은 마치 금방 둥지를 떠날 것처럼, 더 이상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는 듯,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방황한다.   

  

 어느 순간 부모의 역할은 작아지는데, 비교적 사회 활동이 활발한 남성, 남편들과는 달리, 엄마들에게는 이 빈 둥지가 버겁고 허전하다. 내가 살아온 인생과 우리네 엄마들의 인생을 돌아보며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남겨놓은 업적으로 한 사람의 삶을 재단하며 평가하는 이 시대에, 엄마들의 삶은, 엄마들의 업적은 어디에 있는가. ‘나’라는 존재는 엄마를 먹어버리고, 엄마는 껍데기만 남아 아파한다. 어쩌면 그것이 갱년기의 다른 이름 같다.     


 30년 이상을 주부로만 살았던 내 어머니는 최근에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셨다. 그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어머니는 넘쳐흐르는 시간 속에서, 잡히지 않는 모래 같던 지난 기억과 젊음을 곱씹고 곱씹고 또 곱씹으며 많이 슬퍼하셨다고 했다. 넷이 살던 둥지에 새 한 마리가 날아가버리니 허전했을 것이다. 외롭고, 서럽고, 슬픈 그 시간들을 어머니는 홀로 견디고 계셨다. 어머니도 그 옛날엔 사랑받는 딸이었지만 어느샌가 일방적으로 남을 돌보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찌 됐건 내가 없었다고 해서 어머니의 인생이 더 값지고 아름다웠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의 존재로 그녀는 엄마가 되었고, 어머니는 항상 그것을 제일 자랑스러워하신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이룬 가장 큰 성취가 ‘나'인 것이다. 한때 그게 부담스러웠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 누구의 그늘에서 걷고, 뛰고, 쉴 수 있었는지를. 나는 감히 그것이 '값지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감히 그것이 '복'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엄마들이 좀 더 엄마 같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식들에게 자신을 먹이로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방법은 잘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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