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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Jun 25. 2020

위대한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리네 부모님의 굽고 너른 등짝 빼고는

 지금은 그런 문화가 많이 사라진 것 같은데, 내가 어렸을 때는 위인전 읽는 게 되게 흔했었다. 그 시대 어른들은 아마 '이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돼라.'라고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게 했을 것이다. 나는 이순신, 링컨, 나이팅게일, 세종대왕 등 '위대한'사람들의 탄생과 성장기를 읽으며 큰 감명을 받고 언젠가 나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겠단 결심을 했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경쟁적인, 성과 중심적인 이 사회에서 어느새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1등을 할 만큼 잘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위대해지기에는 이미 늦었고, 능력도 부족하고 별로여 서가 아니고 내가 어떤 것을 '위대'하다고 명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무조건 목표지점만을 향해 내달리지만, 함께 가는 사람들이 낙오되거나 지치고 아프면 그냥 버려버리는 사회적 풍토에 큰 반감이 들었다. 너무 과속에 익숙한 우리, 크고 거대한 것에만 감탄과 찬양을 보내는 우리, 조금만 지체되면 호들갑을 떨고 서로를 다그치며 재촉하는 우리, 너무 바빠 슬픔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 다른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 나는 이내 슬퍼졌다. 그리고 무엇이 위대한가에 대해 계속 곱씹었다.


 나는 우리네 부모님의 굽고 너른 등짝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사랑과 포용을 본다.

 나는 매일 고단한 삶을 지고 일터로, 집으로 오고 가는 많은 이들의 발에서 위대함을 발견한다.

 나는 봐주는 이 없어도 매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많은 예술가들의 삶에서 위대함을 본다.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터에 뿌리내린 민들레에게서 위대함을 본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나는 내가 더 늙고 지쳐 과거를 회상할 많은 시간들이 주어졌을 때, 너무 빨리 지나가서 혹은 빨리 감기처럼 살아서 회상이 불가능한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매 순간을 천-천히 느리게 음미하며 살고 싶다. 오늘 하루를 살아도 더 바람이 없는, 충분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사회가 바라는 '위대한 사람'이나 '위대한 인생'과는 영 딴판의 인생이 내가 바라는 인생이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영화배우 주윤발이 자신의 전재산 8100억을 기부한다고 한다. 그는 홍콩 라마섬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라 우체부, 공장 노동자, 판매원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는 드라마로 데뷔했지만 영화 '영웅본색'으로 홍콩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가 이뤄낸 커다란 성공에도 불구하고 주윤발은 자기 자신을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아내 천후이롄 또한 남편 주윤발을 두고 "그는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옆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팬들의 셀카 요청에도 친절히 응한다. 행복의 조건이 뭐냐는 물음에 그는 "소박한 생활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매일 세 끼 밥을 먹고 잘 수 있는 작은 침대 하나, 과하지 않잖아요. 필요한 건 그게 다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남편과 주윤발의 위 인터뷰 영상을 보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많은 기술들이 고도로 발달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것을 두고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 소중한 것들을 감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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