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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ug 27. 2020

어느 힙합 꼰대의 소회

34살에 느끼는 세대 차이

  나는 랩 음악을 즐겨 듣는다. 춤추는 것도 좋아한다. 제일 좋아하는 래퍼는 더 루츠(The roots)이다. 직접 연주한 음악에 랩을 한다는 것이 그들의 큰 강점인데 가사도 좋고 사회참여적이라서 더 좋아한다.(물론 노래도 좋다. 평도 좋다.) 개인적으로 드럼의 베이스와 하이햇이 쿵치 타치-하며 무겁게 쳐주는 붐뱁 비트의 곡들을 좋아하는데, 한 마디 안에 많은 가사가 후두두 쏟아지는 것 같은 트랩 비트가 유행하고 나서는 힙합을 잘 안 듣게 되었다. 쇼미 더 머니라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꽤 열심히 봤는데 어느샌가 관심도 사그라들고 시들해져 버렸다.


 정기 구독 중인 모바일 음원 서비스 어플의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쭈욱 살펴보다가 '대한민국 대표 힙합'이라는 제목에 혹해서 클릭했다. 근데 웬걸.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래퍼들의 노래만 있었다. 그냥 한없이 가볍고, 왠지 신념도 없고, 존중도 없고, 돈이나 많이 벌어 탕진하고 싶고, 좋아하는 여자는 없지만 자고 싶은 여자는 많은 그런 래퍼들이 부르는 노래들만 가득인 것 같아서 싫었다. '노래들이 다 왜 이래? 요즘 애들은 진짜 힙합을 몰라...' 그렇다면 진짜 힙합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느 순간 힙합 꼰대가 되어있었다. 


 영원히 젊을 것 같던 나도 나이 들어가고 요즘 들어서는 그 '나이 듦'을 더욱 자주 실감한다. 예전에는 힙합 페스티벌도 가고 록 페스티벌도 가고 이틀 내내 밤새서 놀고 그랬는데 이제는 다 남 얘기 같다. 근데 나이가 들어서라기보단 어느 순간 새로운 것, 요즘 유행하는 것들보다는 내가 알던 게 더 낫고 좋다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더 배타적인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다. 신체적인 노화보다 나의 내면이 노화되고 있는 것 같다. 왜 여자들은 결혼하면 화장을 잘 안 하고 머리를 그냥 질끈 묶고 다니는지, 왜 결혼하면 살이 찌는지, 왜 엄마들은 고무줄 바지를 입는지, 왜 할머니들은 모두 뽀글 머리 파마를 하는지, 왜 할머니들은 화려한 색감의 옷을 즐겨 입는지 몰랐고 이해도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그런 '여자, '가 되고 앞으로 '엄마, '이자 '할머니'가 될 것을 생각하니 뭔가 바보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을 쓰고 머리를 검정 고무줄로 묶고 지금 이 글을 쓴다.)


 가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나이를 가지고 나를 놀리거나 늙은이 취급을 할 때 '이것들아 너네도 늙는다. 나는 그냥 먼저 늙은 거지.' 하며 아니꼽게 생각했는데,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신체적인 나이 때문이 아니라 내가 경험하고 토양 삼아 살아온 문화가 (비교적) 젊은이들과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세대 차이'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젊은 문화를 좋아하고, 동경하고, 그들의 말투를 쓰고, 그들이 쓰는 이모티콘을 써도 나는 그 토양에서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타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대와 세대 사이에 수없이 많은 '라떼'(참고: 나 때는 말이야~)가 만들어진다.


 뭐 서두에 내가 좋아하는 그룹은 무엇이며 난 그들이 왜 좋은지 주절거려 놓았지만 어찌 됐든 최근의 힙합 곡들이 싫은 이유를 나는 취향의 문제가 아닌 '꼰대 짓을 하고 싶은 나 자신'에게서 찾았다. 오늘 밤 잠에 들기 전에 플레이리스트의 곡들을 다시 들어볼 참이다. 젊은이들이여, 아무리 나 같은 꼰대들이 뭐라고 해도 가고 싶은 길을 가시오. 꼰대들은 당신들이 무슨 좋은 일을 벌이더라도 '라떼'를 찾으며 반기를 들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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