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이나 월세도 적당하고 크기도 적당해서 지금의 공방 자리에 계약을 했다. 영어를 가르치면서 공방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하니 부동산 사장님은 재주가 많으시다며 껄껄 웃으셨고, 나는 재주도 재준데 그 재주로 돈을 벌어야겠지 않냐고 덧붙였다. 그는 돈을 바라고 장사를 하면 안 되고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돈은 따라오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 너무 조바심을 가지지 말라고. 좋은 분 같았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옆집 이발소 사장님이 텃세를 좀 부릴 거예요. 너무 휘둘리지 말고.”
일단 그 한마디로 선입견이 생겼다. 괜히 신경이 쓰여서 남편한테도 여러 번 얘기했다. 옆집 이발소 아저씨 말이야. 이상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막 괜히 해코지 하는 거 아니야? 계약은 여름에 했고 입주는 11월쯤 했으니 공방을 오픈할 때 즈음 나는 이미 옆집 아저씨를 무슨 악당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있었다.
전 세입자가 나가고, 공방이 비어서 마침내 부랴부랴 오픈 준비를 했다. 아버지께서 오랫동안 철물점을 하셨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아버지는 뭔가 멋진 공구 박스와 왕 큰 드릴을 가지고 어머니와 공방을 찾아오셨다. 간단히 싱크대도 설치하고 조명도 달고 벽에 수납박스도 달았다. 어머니는 엄청 성대한 진수성찬을 싸 오셨다. 어머니 고마워요.
본격적인 공사 전, 온 건물을 울릴 드릴 소리가 걱정되었는지 아버지는 옆집 이발소로 갔다. 아버지는 꾸벅 인사를 하시고(아버지보다 연세가 더 있어 보이시니 아마 70대 정도 되셨을 것이다.) ‘여기 옆에 드릴 좀 잠깐 할게요. 시끄러울 텐데 죄송합니다.’라고 하셨고 아저씨는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하셨다. 위잉 위잉 드릉드릉. 앉아있기 민망할 정도로 너무 시끄러웠다. 드릴 작업이 끝나고 나와 남편이 안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는 동안 어머니 아버지는 옆집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았다. 딸내미가 결혼하고 여기 와서 영어 가르치면서 공방 한다고, 잘 부탁드린다고. 아저씨 따님도 어딘가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셨다. 뭔가 큰 공통점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1년여 남짓 겪어보니 이발소 사장님(아저씨, 옆집 아저씨 등 다양한 호칭을 사용하겠음.)은 그야말로 ‘내 편이면 좋고, 남의 편이면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우리 건물 옆에 두 칸짜리 작은 주차장이 있는데 아저씨는 모르는 차가 거기에 주차를 하기만 하면 바로 가서 확인하셨다. 손님 차가 아니면 신고 전화를 하셨다. 특히 내가 처음에 부동산 계약을 했던 그 사장님이 나한테 와서 ‘사장님 잠깐만 차 좀 댈게요’해서 나는 대라고 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셔서 욕을... 아주 찰진 욕을 하시는 모습을 보고, 아 그래서 부동산 사장님이 텃세 부린다고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매일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8시에 닫으시며, 햇살이 좋은 오후에는 화장실 가는 작은 길에다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깊은 낮잠에 빠지신다. 아저씨는 매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주차장을 깨끗하게 쓸고, 쉬는 날에도 불법 주차하는 차들을 잡으러(?) 왔다 갔다 하신다. 아저씨의 삶은 자칫 지루해 보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견고하고 정확하다. 아저씨는 내가 과외 간 사이에 택배가 오면 맡아주기도 하신다. 보통은 과외가 끝나면 공방으로 복귀하지 않고 집으로 가기 때문에 내가 다음날 출근해서 엥 내 택배가 어딨지? 하고 이발소에 가보면 아저씨가 가져다 놓은 택배를 가리키신다. 말은 별로 안 하신다.
공방에 출근하면 손님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혼자 작업을 하는 나로선, 가끔 아저씨가 동료이자 친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그 자리에서 40년 가까이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매만지고, 수염을 깎고, 타월을 빨고 말리고 했을 아저씨의 지나간 세월이 어렴풋하게 보인다. 꼭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이가 비슷하지 않아도,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이발소 사장님에 대해서 쓰고 있는 이 글도, 지나간 시간을 생각해 보는 이 행위도 어쩌면 우정의 징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