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 속의 빈곤과 '나' 사이의 연결고리 찾기
다른 집도 똑같은지는 모르겠는데 텔레비전 채널이 20번을 넘어가면 보험 광고, 상조회사 광고, 신기한 접착제, 숙취해소 음료, 주방 용품 등 평소에 잘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특이한 제품들의 광고가 많이 나온다. 저녁 식사 후에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냥 누워있고 싶을 때 텔레비전을 저절로 켜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고들이 있다. 각종 비영리단체의 광고들이다.
내가 구호 활동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인가 하면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말 짧은 일정들이었지만, 해외 선교를 몇 번 다니면서 어떤 형태의 구호 활동이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고 아직도 마음속에는 2010년에 봉사활동차 다녀온 아이티라는 나라가 내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아이티에서 만난 에반 손이 아른거리고, 또 갈 수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같다. 시혜적인 태도는 지양해야 하겠지만 공존의 의미에서, 연대의 의미에서 구호활동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믿는다.
여러 비영리 단체의 광고에선 가난한 사람들, 극빈국의 병든 어린이들, 생리대가 없어 빌려야만 한다는 소녀의 이야기들을 너나 할 것 없이 싣는다. 물론 그런 사연을 가진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사투를 벌이고 있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영상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은 한 사람이 전화 한 통화로, 또는 매달 일정 금액을 약정해서 또 다른 한 사람을 살리고 단체에 도움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으나, 내가 후원을 한다는 것이 그 특정한 사연을 텔레비전에서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 지점에서 가장 좌절을 느꼈다. 사실 저 특정 사연자의 빈곤은 나의 전화 한 통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빈곤 포르노'라는 말이 있다. 더 많은 후원금과 지원을 받기 위해서 사연자가 더 가난하게, 더 비참하게 보이도록 꾸며낸다는 의미이다. 어느 순간부터 텔레비전을 틀어도, sns 계정에 접속해도,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도 끊임없이 내 시선 끝을 끊임없이 따르는 그 '빈곤 포르노'에서 더 이상의 어떤 자극도 느낄 수 없게 무뎌지는 것 같다.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텔레비전이나 보자 하고 틀었는데 정말 조그만, 복수로 배가 부푼 아기가 나와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다고 하면 정말 울고 싶어 진다. 그리고 이내 채널을 돌리게 된다.
나는 비영리 단체들이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방방곡곡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설립 취지에도 동의한다. 세상은 더 나아질 필요가 있고, 우리의 도움도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 도움을 다른 방식으로 요청해주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후원금을 얻기 위한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면, 정 그렇다면 하나의 마케팅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 사연자들을 대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