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을 찾아서
바다 내음이 기분 좋게 코끝을 스치는 날이었습니다. 충남 태안의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느릿한 걸음으로 동네 산책을 시작했습니다. 나지막한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평범한 주택가 길이었죠. '정말 이런 곳에 옛 성곽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쯤이었습니다.
유명한 근대 가옥을 구경하려고 골목을 살짝 돌아섰는데, 세상에! 거짓말처럼 커다란 읍성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웅장하면서도 고즈넉한 태안 읍성의 성벽. 흑백 사진이 주는 특유의 깊이감이 마치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듯합니다.]
이 읍성은 조선시대에 처음 쌓였다고 합니다. 아주 먼 옛날부터 왜구의 침입을 막으며 이 땅과 사람들을 묵묵히 지켜온 든든한 파수꾼이었던 셈이겠지요.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바람과 구름이 이 성벽을 지나쳤을까요?
성문을 조심스레 통과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주변의 소음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다 향을 품은 바람도, 흘러가던 구름도 잠시 멈춰 서서 저를 반겨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찰나, 성 안에서 활기차게 물건을 주고받는 상인들, 늠름한 모습으로 보초를 서는 군인들, 그리고 골목을 뛰놀던 아이들까지... 흑백 사진 속 장면처럼 평화롭고 한가로운 과거의 어느 날 속에 제가 서 있습니다. 마법 같은 '시간의 문'을 발견한 것입니다.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문을 돌아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습니다. 역사가 주는 든든한 기운을 등에 한가득 지고 돌아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일상의 골목 끝에서 우연히 만난 태안 읍성. 왠지 모를 위로와 용기를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