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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Oct 25. 2016

내 친구 히로시마와의 마닐라 여행 1

- 마닐라로 가는 배 안에서


  카즈야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고향에서는 전문적으로 양주를 취급하는 바텐더였다. 사진 속 그는 나비넥타이를 하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겨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바콜로드의 작은 펍에서 만난 그의 행색은 흡사 밥 말리처럼 자유롭고 꾸밈이 없어 보였다. 히피가 꿈이라도 되듯. 나보다 두 살이 어린 그에게 ‘형’이라는 단어에 대해 가르쳐주려 애써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나를 ‘헤이’, ‘어이’, ‘브라더’ 정도로 불렀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카즈야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만들 술집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고 했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나 미시마 유키오, 나쓰메 소세키 등을 공부하는 사람이었다고 나를 소개했다. 그는 ‘우린 친해질 수 없겠군.’이라고 말했다. 나는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에 대해, 그곳에 등장하는 카사블랑카라는 술집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영화도 그런 술집도 모른다고 말했다. 도무지 집합체가 없는 두 사내는 별 말도 없이 술만 마셔 댔고, 자정이 가까워지면 각자의 모국어로 떠들어대기 일쑤였다.

  그는 종종 내가 지내는 호텔 근처로 놀러 와서 맥주를 마시고 돌아갔다. 어느 날 그는 마닐라에서 일본으로 가는 표를 취소하고, 말레이시아로 간다고 알렸다. 그전에 마닐라에서 1주일을 머물며 여행할 계획인데, 함께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다. 나는 호텔에 틀어박혀선 여자 두 명과 함께 무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불행히도 수염이 머리카락만큼 긴 남자가 갑작스러운 여행을 제안해 버리고야 말았다. 딱히 정해진 계획 없이 여러 경로를 열어놓고 있던 터였다. 나는 무심결에 동의해버렸고, 결국 마닐라에서 함께 여행을 한 이후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바콜로드에서 마닐라까지 가는 비행기는 표가 비싼 것도 아니었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즈야는 나에게 배를 타지 않겠냐고 권했다. 배 값은 비행기와 똑같았다. 3끼의 식사와 침대가 주어지고, 20시간 동안 태평양의 바다 위에서 흔들려야 한다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혹시 알아? 더 재미난 일이 생길지.”

  이번 여행은 그런 식이었다. 즉흥적으로 발걸음을 내디뎌 보는 것이다.     


  배에 탈 때까지만 해도 마닐라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일정부터 짜기로 했다. 우리는 배의 2층 로비에 있는 식당에 앉아서 맥주를 주문했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인터넷을 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관광 책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맥주를 더 마셨다. 이상하게도 전혀 취하지 않았다. 나는 태블릿 PC에 담아둔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카즈야에게 보여주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각본을 쓴 알랭 레네 감독의 첫 장편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은 ‘기억’이라는 모호한 관념에 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남녀가 벌이는 정사를 담아낸 오프닝 시퀀스는 영화 전체를 함축한다. 이 영화는 프랑스인 ‘그녀’와 일본인 ‘그’의 불같은 사랑이 죽음의 기억들로 (원폭 후의 방사능, 혹은 검은 연기처럼) 번지는 아픔 그 자체이다. 그들이 만나는 ‘카사블랑카’라는 술집(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처럼)은 이미 이별을 예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와 그녀는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들이 주고받는 마지막 대사는 우리가 기억으로부터 완벽히 해방될 수 있는지를 진중하게 묻는다. 

  “당신의 이름은 히로시마(일본)”, “당신의 이름은 느베르(프랑스)” 

  <히로시마 내 사랑>은 과거가 현실 속에 잠재하고 있다는 전제로 새로운 시공간을 연출해낸다.

  나는 이런 말들을 영어나 일어로 해낼 재간이 없었다. 다만 이 영화가, 혹 네가 태어난 그 도시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는 무심하게 맥주를 마셨다. 나는 이 여행이 어떻게 흘러갈지 감이 오지 않았다. 부산 남자와 그보다 더 무뚝뚝한 히로시마 남자가 여행을 하게 될 줄이야. 돌아가려 해도 이미 늦어버렸고, 우리는 둘 다 그걸 알고 있었다.     



  화장실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오다 서너 개의 갈색 상자를 발견했다. 이상한 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분명 그 상자들 속에서 무언가 살아 있는 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볼일을 보고 온 나는 계단 주위를 기웃거리다 상자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강렬하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나를 직시했다. 우린 서로 눈을 마주치며 아주 잠깐 동안 그렇게 정지했다. 순간적으로 그 구멍을 통해서 날카로운 부리가 튀어나왔다. 나는 화들짝 놀라 나자빠질 뻔 했다. 상자의 주인은 내 모습에 낄낄거리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전사들이오.”

  Fighter라는 말을 잘못 이해한 게 아니라면, 그 닭들은 식용으로 쓰이는 게 아닌, 전투를 위해 키워진 즉 글레디에이터들인 것이다. 마닐라에는 투계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긴 했다. 이런저런 영화들을 떠올리며 암시장에서나 이뤄질 법한 분위기를 떠올렸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전투를 치르러 가는 이 닭들의 운명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다음에 내가 한 일은 마닐라에서 투계를 보러 가자고 카즈야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야수 같은 외모와는 달리 고양이만 보면 길을 멈추고 ‘키티’라고 부르던 이 일본 청년을 설득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마디면 충분했다.

  “혹시 알아? 더 재미난 일이 생길지.”

  그렇다, 또 그런 식이다. 즉흥적으로 발걸음을 내디뎌 보는. 

  성난 수탉은 작은 상자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우렁차게 울어댔다. 주인은 상자 밖으로 삐져나온 깃털을 조심스럽게 빗어 내리며 다시 상자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좌표도 시간도 잃어버린 채로 닭들과 함께 이리저리 흔들려댔다. 창밖은 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마도 앞으로, 그곳으로 나아간다고, 분명 그런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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