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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Nov 06. 2016

내 친구 히로시마와의 마닐라 여행 2

-투계 경기장, 라스 피나스 콜리세움(Las Piñas Coliseum)

닭들의 울음과 사람들의 고함소리, 비릿한 피 냄새와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던 그 열기 속으로 모래가 깔린 철창이 보였다. 콜리세움 속에서는 두 마리의 닭이 날개를 펼쳐가며 서로의 숨통을 끊어내려 하고 있었다.      



  21시간의 항해를 거쳐 마닐라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어둠은 이미 저변에 깔려버렸다. 찰랑이는 파도소리와 짠 내의 그윽함이 하늘과 바다를 간신히 구별 지을 뿐이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낑낑대며 내려가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형광색 옷을 입은 남자가 가방 손잡이를 가로챘다. 그 역시도 체격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다년간의 경력이 무기였을까, 선상에서 육지로 내려가는 빌딩 3층 높이의 계단을 터벅터벅 잘도 내려가는 것이었다. 나는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며 그를 뒤따라 내려갔다. 그는 육지에 닿아서야 가방을 털썩 내려놓더니 손을 내밀었다.

  “팁!”

  그는 협박조로 강하게 툭 쏘아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주머니를 뒤졌다. 구겨진 몇 장의 지폐를 펴고 있는데 그가 순식간에 50페소를 가로채어 갔다. 그는 아무런 인사도 없이 다시 배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1년 내도록 여름인 나라이지만, 부둣가의 밤공기가 서늘하게 등골을 휘감았다.

  카즈야와 나의 짐은 자동차 트렁크가 가득 찰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택시기사는 우리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승객을 더 찾아다녔다. 10대로 보이는 두 명의 소년을 보조석에 한쪽 엉덩이씩만 걸치게 해서는 태웠다. 그리곤 모자를 쓴 아저씨와 뼈가 앙상하게 보이는 할머니를 뒷좌석에 태웠다. 5인승 승합차에 7명이 타고 가는 셈이었다. 트렁크는 닫히지 않을 것만 같았고, 바퀴는 움푹 내려앉는 느낌이 났다. 하지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늙은 기사와 별다른 불만 없이 몸을 구겨 넣는 현지인들의 모습에 우리도 그저 숨을 죽이곤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선착장을 벗어나서 야자수가 심어진 해안도로를 내달렸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리고 나서야 우리가 묵게 될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선불을 냈는데도, 택시 기사는 팁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카즈야가 10페소 동전을 두 개 건넸다. 아무래도 카즈야처럼 동전을 준비해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만나건, 어떤 도움을 받건, 악수하는 손바닥 안에는 늘 팁이 들어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팁은 허그보다, 키스보다, 잘 가라는 인사보다도 더욱 강력하고 여운이 남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나는 뒷주머니를 만져보며 지갑을 확인했다. 그 어떤 무림의 고수라도 날카로운 칼날이나 두꺼운 방패만으로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저 지갑 속에 고이 접힌 몇 장의 지폐가 나를 지켜주고 가치 있게 만드는 수단이 되어 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뒷골목에서는 관광객을 노리는 총구가 사나운 맹수의 눈동자처럼 번뜩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바콜로드의 밤에서 마닐라의 밤으로, 바다를 건너서 왔다. 부산과 히로시마에서 자라온 두 청년은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서 맥주병을 기울이며 마닐라의 밤하늘을 슬며시 맛볼 수 있었다. 일정을 짜고 떠나온 여행이 아니었기에 즉흥적으로 서로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했다. 어쩌면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양 국가의 비밀스러운 회담처럼 우리는 서로의 입장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첫날의 일정부터 삐걱대고 있었다. 카즈야는 시장과 성당을 가길 원했다. 내가 제안한 건 투계였다. 

  “그럼 동전으로 정할까.”

  앞면이 나오면 카즈야를, 뒷면이 나오면 나의 동선을 따르기로 정했다. 개구쟁이 카즈야가 하늘 높이 동전을 던져버렸고, 동전은 어디로 떨어졌는지 소리를 들을 수조차 없었다. 누가 이겼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정하는 게 어때?”

  문득 여행을 떠나온 게 실감이 났다. 비록 소풍이 내일일지라도, 전날 김밥을 싸는 것부터가 여행의 시작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냉철하게 반박하기도 하며 마주 보고 앉아 여행과도 같은 맥주를 마셨다. 김밥 꽁지는 아무래도 만드는 동안 입에 넣어야 제 맛이다. 우리는 맥주를 한 병씩 더 마셨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결정한 여행 방식은 무식하면서도 단순한, 그러나 제법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지프니 기사에게 어디로 가면 좋을지 물어본 것이다. 이곳에서 지프니만큼이나 이색적인 볼거리가 또 있을까. 필리핀은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국가이기에 문화, 관습, 종교 등에서 미세한 차이가 났다. 언어 또한 달라서 공용어인 따갈로그어와 자신들의 섬에서 쓰는 고유 언어를 함께 습득해야 했다. 내가 머물렀던 바콜로드와 세부에서는 일롱궈어와 세부아노가 쓰였다. 하지만 그들도 이곳으로 모여들면 따갈로그어를 써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영어가 그들의 언어를 지배하고 있는 추세였다. 식민지 국가의 강력한 통치방법인 언어 정복은 한국의 역사에서도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직까지 생활 속에서 관습적으로 일본어가 사용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몇 세기를 걸쳐 스페인, 미국, 일본 등에 의해 지배되어 온 필리핀 역시 이 같은 문제가 극복 과제로 남아있는 듯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남겨진 미군의 군용 차량(Jeep)을 개조하여 그들만의 대중교통 수단인 지프니를 만들어낸 건 뒤엉킨 역사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돌연변이처럼 무질서하지만 보다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보다 생생한 마닐라를 확인하길 원했고, 그래서 두 번 다시 택시를 타지 않기로 했다. 지프니를 여러 번 갈아타며 기사들에게 가볼만한 장소를 물어보았고, 함께 올라탄 승객들에게도 길을 물어 앞으로 나아갔다. 기사는 뒷골목의 투계 경기장은 제법 위험하다며, 가드가 있고 규모가 큰 경기장으로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마침내 도착한 투계 경기장의 이름은 라스 피나스 콜리세움(Las Piñas Coliseum). 그곳에서는 볏을 세운 닭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경기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부터 한 사내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탓도 있지만, 그의 팔을 본 순간 나는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카즈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의 양 팔은 팔꿈치까지 잘려있었다. 그는 듬성듬성 빠진 치아를 내보이며 호탕하게 웃었다.

  “머니, 머니!”

  그가 외쳤다. 우리는 지갑을 꺼내어선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주위의 사람들도 이 광경이 재밌는지 낄낄대며 귓속말을 해대었다. 우리는 그를 피해서는 서둘러 경기장 안으로 들어섰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해 들었다. 총을 든 가드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우리의 자리를 안내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곳은 외국인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우리는 그의 등에 바짝 붙어서 따라갔다. 커다란 문을 열고 천정이 높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닭들의 울음과 사람들의 고함소리, 비릿한 피 냄새와 숨쉬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던 그 열기 속으로 모래가 깔린 철창이 보였다. 그 속에서 두 마리의 닭이 날개를 펼쳐가며 서로의 숨통을 끊어내려 하고 있었다. 누구도 우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모두 한 곳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경기장의 분위기에 순식간에 압도당해버렸다.

  “이곳을 벗어나지 마시오.”

  가드는 이 말을 남긴 채로 사라졌다. 심판으로 보이는 사람이 쓰러진 닭을 세 번 들어 올렸다. 닭은 이미 죽어버린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것이다.

  잠시 후, 다음 경기가 펼쳐지기까지의 그 5분여 동안, 나는 이곳에 모인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닐라가 나를 압도하는 그 찜찜한 기운이 무엇인지 드디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즈야 역시 긴장하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다음 시합에 출전할 닭들이 소개되고 사람들은 배팅을 하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악다구니를 쳤다. 이건, 용맹한 닭들이 기량을 과시하는 시합이 아니었다. 꾼들의 오른손과 왼손에 쥐어진 돈뭉치들을 본 그 순간, 나의 양 팔은 어디론가 달아난 것처럼 그 어떤 감각도 느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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