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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Apr 04. 2018

저기 저 하늘 어딘가로 불꽃이 진다, 새해가 온다

- 도클랜드의 새해 불꽃놀이


New Year's Eve fireworks display at Docklands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던가, 모두가 작품이고 모두가 꽃을 피우며 모두가 시간 속에 스러진다. 그래서일까, 아름답고, 찬란하며, 슬프다. 새해를 맞이하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나는 베란다로 나가서 건물들 창에 비치는 해를 바라보며 와인을 입안 가득 털어 넣었다. 아껴 마시려 했지만 좀처럼 쉽지 않았다. 와인은 달게 다가와 씁쓸한 향을 남기고 혀 뒤로 흘러내렸다. 할 수만 있다면 으스러지는 저 태양을 이 잔에 담아볼 텐데. 어떻게 보낸 건지 되새기기도 전에, 한 해가 져버렸다. 다가올 해는 저 해와 다를 거야.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는 그런 해가 아닌, 완벽히 새로운 해 말이야. 나도 나를 흘려보내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중얼거렸다. 와인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해가 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숙소를 찾는 일이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그 도시의 숙소였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도클랜드는 호주 멜버른 시티에 근접한 하버로 유람선과 요트가 정박해 있고, 고급 레스토랑과 세련된 펍이 즐비한 신도시였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사람들은 바다를 곁에 두고 달렸고, 주말이면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은 신사 숙녀가 팔짱을 끼고 산책을 했다. 무엇보다 나를 이끈 것은 역시 바다였다. 바다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보다 더 평온을 주는 것은 없다는 걸 나는 알았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인 셈이었다.     


  도클랜드 공원에는 자정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무엇보다 나를 들뜨게 한 건 DJ가 선곡한 음악이었다. 카메라와 대형 스크린, 그것만으로도 광란의 파티가 펼쳐졌다. 무대는 꽤 단출했다. 서너 평수밖에 되지 않는 무대에서는 DJ가 턴테이블을 돌렸고, 그 옆에 트라이포드를 세운 카메라맨은 관중을 찍었다. 그게 전부였다. 카메라에 찍힌 관중들의 얼굴이 대형 스크린으로 실시간 출력되었다. 뉴에라 모자를 쓰고 스케이트보드의 바닥에 쓰인 글씨(REAR)를 든 호주 소년, 아빠의 목에 걸터앉아 야광 바람개비를 돌리는 아이, 휴대폰 액정에 하트 이미지를 내보이며 양손을 높이 든 동양인, 마이클 잭슨의 춤을 따라 추는 흑인 여자, 크리스마스가 일주일이 지났지만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나온 나, 두 눈을 가운데로 모아 모두를 웃게 만들어준 아랍권의 남자 등 카메라에 나온 사람들은 무대 위에 오른 것처럼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어댔고, 그 장면이 모여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멋진 공연을 연출하고 있었다. 


  야구장에서도 공수를 바꾸는 틈에 카메라는 커플들을 찍어댄다. 일명 ‘키스 타임’인 그 이벤트는 야구장에 들어찬 관객을 사랑스러운 한 커플에게 집중시켜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미디어 공연인 셈이다. 도클랜드 하버 파크에서 펼쳐진 이 공연에는 무대 위의 카메라가 주인공이었다. 달리 말하면 바닥 위에서 쿵쿵 뛰어대는 관중 모두가 카메라의 프레임 속에만 들어서면 주인공이 되는 셈이다. 혹, 모두가 주인공이 될 가능성을 가진다. 미디어적 변칙을 활용한 영리한 기획이었다. 자정이 되기 1시간 전부터는 시계를 화면에 내걸기도 했다. 음악의 템포는 고조되었고, 심장박동도 더욱 빨라져만 갔다. 도클랜드에서 펼쳐진 2015년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자정이 되기 1분 전부터는 카운트다운에 들어섰다. 인간은 시간의 개념을 만들어 과거와 현재를 분리했다. 이제 2015년은 작년이 되었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념으로 하늘 높이 불꽃이 터졌다. 모든 사람이 고개를 들고, 쏟아져 내리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중국에서 처음 발견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불꽃놀이는 마르코 폴로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된다. 불꽃놀이의 영어인 fireworks와 함께 쓰이는 동사는 display다. 우리는 주로 불꽃놀이를 ‘하다’라고 쓰지만 영어에 있어서는 ‘전시하다’가 되는 셈이다. 그러자면 work의 의미 역시 작동, 작업의 차원에서 한층 높아져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불로 하는 작품. 터진 불꽃은 밤하늘을 환히 밝히다, 어느 순간 사라진다. 이 작품의 특징은 프레임의 한계가 없고, 결코 캔버스에 갇히지 않으며,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공중으로 솟아오른 폭죽은 한순간 신명 나게 터지고, 십여 초가 되지 않아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마치 씨앗이 터져 줄기가 솟고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것처럼, 그 꽃이 소리 없이 지고 바람에 쓸려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네 삶도 그렇지 않던가, 모두가 작품이고 모두가 꽃을 피우며 모두가 시간 속에 스러진다. 그래서일까, 아름답고, 찬란하며, 슬프다. 새해를 맞이하는 데에는 이만한 게 없다.



  불꽃놀이를 마치고 모두가 박수를 쳤다. 멋진 공연에 대한 박수이기도하겠지만, 무엇보다 한 해를 희망차게 보내자는 스스로의 의지일 것이다. 도클랜드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이 힘을 모아 소리 내는 이 박수가 바람을 만들어 파도를 움직이게 하고 지구를 돌게 하며 또다시 태양을 솟아오르게 할 것이다. 그건, 자전의 힘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나의 의지로, 전에 없던 새로운 태양을 만들어내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다시 새해가 아닌, 처음 맞는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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