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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Sep 09. 2016

멜로디는 교복을 입은 적이 없다.
스티브는?

버크/엘리자베스(Bourke/Elizabeth St Melbourne) 


  여러 도시와 나라들을 거치곤, 호주 멜버른으로 오게 되었다. 연고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발길이 닿은 것이다. 이곳에서 누구를 만나건 서로 궁금해하는 공통된 질문이 있다. 왜 멜버른인가. 대답은 가지각색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뉴스를 보고선 왔다는 사람, 셰프, 바리스타, 소믈리에, 플로리스트의 꿈을 안고 온 사람, 저렴한 비행기 티켓을 구해서 왔다는 사람, 친구 따라 태평양을 건너왔다는 사람들까지. 교육열이 높은 도시이기도 하거니와 세계적인 카지노인 크라운, 도심을 가로지르는 야라 강, 시원한 도클랜드 하버가 멜버른 시티 내에 자리해 다이내믹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들 각자만의 이유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어찌 되었건 ‘여행은 그 자체로 보상이니까.(The journey is the reward - Steve Jobs)’

  당신은요? 되돌아오는 물음에 나는, ‘그저 음악 때문에’라고 답하며 말을 줄이곤 했다. 사실 그게 전부고, 정확한 이유다. 멜버른으로 도착한 첫날, 도시를 한 바퀴 걸었다. 바둑판처럼 잘 구획된 CBD(Central Business District) 내에는 주 교통수단인 트램이 지나다녔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자기가 타야 할 번호의 트램이 와도 서두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트램 정류장 앞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거리의 음악가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4분여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살아있는 음악이 자신의 하루를 달리 만들어준다는 것을 아는 게 분명했다. 그게 다였다. 나는 멜버른에서 더 있고 싶어 져 버렸다.     



  뮤지션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은 바깥을 꿈꾼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규율이나 규칙도 없다. 물론 멜버른 시내의 길거리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서는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거기에 따른 책임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테두리 속에서도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음악이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순간, 그건 소리라는 음파를 넘어 전에 없던 에너지 작용을 일으킨다. 관객은 함께 몸을 들썩이고 리듬을 탄다. 소리가 아닌, 하나의 세계가 전해졌기 때문이다. 혹 관객이 없다 해도 크게 중요치 않다. 이미 그들의 노래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건 그들의 바깥이다. 바깥이라는 이 추상적인 단어를 명확히 설명해낼 재간이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에 열광하고, 락큰롤이 바위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해내고 싶었던 때가 내게도 있었는데 말이다.

  중학교가 배정되고 처음으로 맞닥뜨린 고민은 교복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가게 될 중학교를 이미 졸업한 사촌 형들은 고스란히 교복을 물려주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기어코 나를 교복 맞춤 가게로 데려갔다. 브랜드 가게에서는 교복 한 벌에 십만 원이 훌쩍 넘어 형편상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동네의 작은 맞춤 수선 가게는 몸에 맞게 직접 만들어 주었는데도 브랜드 회사보다는 삼만 원 정도가 더 쌌다. 싸다고 해도 싼 돈이 아니었다. 3년은 족히 입을 거라지만, 내게는 이미 옷감이 멀쩡하고 디자인은 완벽히 똑같은 옷이 두 벌이나 더 있었다. 이제 막 14살이 된 중학생이 느끼기에도 그건 아까운 돈이었다. IMF가 부산 영도의 산복도로까지 영향을 미쳤던 1997년 봄, 우리 모두가 가난한 시절이었다. 나는 사촌 형들의 옷을 입어도 된다고 말을 하면서도 교복점으로 이끄는 어머니의 손길이 그다지 싫지만은 않았다. 내심 기대했던 나의 마음을 어머니가 미리 알아차렸던 게 분명했다. 그 시절,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의 관심사란 교복이나 운동화나 책가방 따위였으니까.

  내 몸에 딱 맞는 교복을 입었을 때의 촉감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런 일들은 어머니의 사랑과 아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포함된 일이기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나만의 사이즈로 된 옷이 처음으로 내게 주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교복이라는 게 좀처럼 개운치가 않다. 고등학교 교복에는 한 가지 추가사항이 생겨났다. 바로 넥타이였다. 새천년 시대를 맞이한다며 한참 들떠있던 17살, 처음으로 매 본 넥타이 녀석이 내 목을 움켜쥐며 그렇게 말을 했던 것 같다. ‘평생 나와 함께 하자. 그러면 넌 성공한 사람이 되는 거야.’ 어찌 되었건 지퍼가 달린 남색 넥타이는 정확히 3년까지만 나와 함께 했고, 졸업과 동시에는 사라져 버렸다. 넥타이의 저주 때문이었을까, 20살 이후로 줄곧 실패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단정하고 깔끔하고 바르게 보이려면 맞춤 양복만 한 게 없다. 하지만 그 또한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고착된 이미지인 건 아닐까. 어찌 되었건 중학교 때 입었던 교복이 내 영혼의 한 부분을 꽉 쪼이고 있다고 의심하게 된 건 이 도시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들 덕분이다. 돋보기를 들고, 십 대의 나를 들여다본다. 나의 바깥은 교복에서부터 차단된 것이 분명하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교복 바깥을 꿈꾸곤 했었다.     



  스티브 잡스가 하나의 혁명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그의 ‘애플’이 주된 이유겠지만 그가 즐겨 입었던 청바지와 검정 터틀넥 또한 한몫을 했다. 그는 새 제품을 출시하는 중요한 발표 자리에서 넥타이나 구두 대신 평상복을 입고 나왔다. 청바지는 광부들을 위해 잘 찢어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작업복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패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한 기업의 일대사가 걸린 프레젠테이션에 적합한 복장은 아니라는 게 보편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그것을 깨부수고자 하는 것이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의, 곧 애플이라는 회사의 철학인 셈이다. 마치 누군가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처럼, 사과의 바깥처럼.

  그가 단정한 차림의 정장을 입고 나타났더라면 아이폰, 혹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은 스마트 기기가 이만큼 빠르게 발전하거나 창의적일 수 있었을까. 어차피 학문이라는 것은 인간을 위한 도구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수단에 계급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교복이라는 옷이 사회적 계급을 주입시키는 하나의 매개가 된 것이라면 섬뜩하게도 나의 십 대는 바깥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된 셈이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교복 같은 단정함으로부터 멀어져 버린 것만 같고, 그래서 때론 짜릿하지만 대부분은 멜버른의 날씨처럼 우울하다. 그래도 나를 달래줄 뮤지션들이 이 도시 곳곳에서 열창하고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그들의 바깥이 관객인 나라면, 나의 바깥은 그들일 테니 그나마 다행이다. 멜로디의 옷은 악기이고, 스티브 잡스에게 옷은 청바지와 터틀넥이었듯, 나의 옷은 멜버른이다. 멜버른은 당분간, 나의 바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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