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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Jun 13. 2018

NoMoreTram의 운행을 시작합니다

- 스완스톤 스트리트(Swanston St)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세고 벗겨졌다. 기타는 어제를 노래하고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그리워했다. 손은 느려지고 점점 여려지지만, 힘을 잃지 않는 2분 음표가 되어 오늘을 노래하고 있다.



    

  또다시 병이 도진다. 내 손으로 내 목소리로 음악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병이. 어느 나라에 있건 어느 도시에 있건 병은 나아질 기색이 없다. 리듬에 몸을 싣고, 슬쩍, 다만 8cm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공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때가 내게도 있긴 한 건가. 나는 이미 커버려 그러한 자유가 내게 경제적인 여유를 안겨줄 수 없다는 데에 좌절하고, 아파하고, 인정해버린 서른셋. 도진 병을 치유할 방법은 알지만 늘 결린 어깨처럼, 삐걱대는 무릎처럼, 흐려지는 두 눈처럼 그저 안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환자다. 중증의, 아니 불치의.


  종영은 호주의 시골마을에서 공장과 농장 생활을 줄곧 해오던 20대 중반의 청년이다. 고기 공장에서 청소를 하고, 농장에서 토마토를 따던 이 청년이 옆방으로 이사 온 날은 작년 핼러윈 데이였다. 종영은 옆집의 초인종을 누른 뒤에 사탕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순박한 모습이었다. 청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기타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그의 발목에는 기타 모양의 타투가 그려져 있었다. 직접 디자인한 것이라 했다. 이 녀석도 환자구나. 같은 병을 앓는 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마련이니까 그 역시도 나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함께 마주 보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게 된 데에는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되게끔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공연을 푹신한 소파가 있는 거실이 아닌 거리로 옮겨보고자 한 데에 있다. 소음이 넘치고, 이방인을 향한 낯선 시선들이 아래위로 내리 꽂히며,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돌보아주지 않는, 차가운 거리로, 여행자의 길로.



  길거리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시청에서 교육을 이수한 이후에 발급받을 수 있는 허가증이 필요하다. 이 종이 티켓만 있으면 길거리에서 모자를 발끝에 놓고 마음껏 노래를 불러댈 수 있다. 누군가 모자를 향해 동전을 던지며 찡끗 웃어주면 그걸로 족하다. 관객과 같은 높이에서 이야기를 건네듯 노래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신중히 상대의 말소리에 귀 기울이듯 음악을 들어주는 것이다. 멜버른의 길거리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수없이 많은 음표가 떠다닌다. 음표를 먹고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얼마나 다채로운가. 그들의 걸음걸이에 맞춰 멜로디만 얹으면 어느 때고 음악은 살아있는 것이 된다.


  우리는 멜버른 시티의 스완스톤(Swanston street)이라는 악보 위에 4분 음표 같은 검은 머리 두 개를 얹어두려 했다. 트램과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를 등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그대들을 맞이하려 한 것이다. 버스킹을 위한 앰프와 마이크를 구입하고, 허가증을 따고, 틈을 내어 곡을 만들고, 기타를 튕기고, 엎어진 술병에 코를 박기도하고, 비틀거리는 두 다리를 원망하기도 하며,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고, 쉰 목으로 잃어버린 사랑도 불러보고, 도클랜드의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피지도 않는 담배도 물어보며, 그렇게라도 청춘을 소환하려 애써본 것이다.


  아무래도 기타 두 대로 할 수 있는 음악은 한정적이었고, 그 한계를 우리의 색으로 만들어내려 애썼다. 계절은 여름에서 두 걸음이나 멀어졌으니, 스카프나 스웨터에 어울릴 법한 톤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뒷골목에 그려진 벽화처럼, 카페 앞을 지날 때면 밀려오는 커피 향처럼, 긴 허리로 유연하게 좌회전을 하는 트램처럼, 그저 이 도시에 스며들어 하나의 풍경이 되고 싶었다.


  누구도 봐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우리의 음악이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달리 만들어 준다면, 그만한 짜릿함도 없는 것이다. 한곡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저 깊숙한 기억의 우물에 두레박을 던져 기어코 과거를 길어 올린다.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시간을 멈추는 것도 모자라서 되돌려놓을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 4분여의 시간 동안에.



  그러니 내가 하는 짓거리, 즉 길거리에서 부르게 될 노래와, 이렇게 써 내려가는 글은 내가 가진 병에 대한 자가진단, 일종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런 글귀였으면 좋겠다.


  어느덧 머리가 하얗게 세고 벗겨졌다. 기타는 어제를 노래하고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그리워했다. 손은 느려지고 점점 여려지지만, 힘을 잃지 않는 2분 음표가 되어 오늘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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