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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은 Jun 20. 2018

Tram의 운행이 중단되다

- 트램의 안과 밖(In the tram, out of the blue)


  나는 이미 서른셋, 현실은 귀를 찢을 듯이 사방에서 소리를 쳐댄다. 왜 음악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왜 차가운 도로 위에서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연주를 해대고 있는가. 

  트램이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는 페이드아웃 없는 이 장면에서 콘센트를 뽑아버렸다.




  해가 제 몸을 길게 기울이던 4월의 일요일, 버스킹을 시작한 지 고작 3주 만에 우리는 연주를 멈췄다. 기타 두 대와 두 개의 목소리가 멜버른 도심의 빌딩 숲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길 기대했지만 쉽지 않았다. 단 3회의 공연으로 끝을 내기에는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이, 무엇보다 우리의 열정이 초라하게 느껴져 잠시 휴식기를 가지기로 했다. 트램은 세 번째 정거장에서 연료를 갈고, 철로의 방향을 틀어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우리의, 아니 나의 실패를 돌려 말하려는 비겁한 변명 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했고, 그에 반해 준비해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팀의 이름과 만들어 둔 서너 곡들과 몇 개의 커버 곡이 전부였다. 그것도 대부분이 한국어로 되어 있었다. 심지어 나는 기타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자금이 부족해서 빌려둔 기타가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 버리자, 때마침 그것이 가장 큰 이유라도 되었던 것처럼 트램의 운행을 중단해 버린 것이다.



  첫 번째 공연을 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거리의 일부가 되어 버스킹을 즐기고 있었다. 두 대의 기타 소리는 손톱 끝에서 울림통을 거쳐 다시 손가락 사이를 바람처럼 스치며, 여러 길로 뻗어 나갔다. 어떤 멜로디는 금발 여인의, 꼬마 숙녀의,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중절모를 쓴 신사의 귀를 사로잡았다. 또 어떤 멜로디는 거리의 발걸음과 섞여, 박자가 되었다. 모든 소리는 등 뒤로 지나가는 트램의 바퀴소리에 맞물려 그대로 사라졌다. 그건 내가 바라던 길거리 연주의 묘미였다. 비록 코드가 틀리고 가사도 잊었지만, 동전을 던지러 온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기도 했다. 나는 우리 팀의 막내인(No More Tram은 종영과 나 2명으로 된 팀이다) 종영의 발끝에 비트를 실어 우리만의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40분의 공연 만에 벌어들인 수입은 86달러, 내 생애 받아보지 못한 시급으로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멜버른의 도심 상업지구 내에서는 길거리 연주자를 마주하기 어렵지 않다. 큰 빌딩 앞에서 고가의 장비를 준비해 화려한 공연을 펼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골목 입구에서 마이크도 없이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는 예술가도 있다.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세련된 신식 빌딩이 어우러진 도심의 가운데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세계적인 이 도시에서, 내가 만든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거리의 모든 연주자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돈은 사람의 마음을 흐리게 만들었다. 늘 그랬다. 비록 1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나는 흔들렸다. 조명이 아늑하게 비춰오고, 인적이 드물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살필 수 있는 그 거리에서 무사히 첫 공연을 마쳤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끌고 싶었고, 기타 가방 속으로 떨어지는 동전 소리를 마음껏 들어 보고 싶었다. 그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귀를 기울이게 하고 싶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 같은 음악을 들려주자던 신념은 사라졌다. 화려한 네온사인에 취해 버린 불나방처럼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힘들게 장비를 설치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노래를 했으니,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팁은 당연한 수당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좁고 어두운 거리를 떠나선 복잡한 차이나타운으로 무대를 옮겼다. 차이나타운의 횡단보도 앞에 선 사람들의 국적을 물어본다면, 단언컨대 10개의 국가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양성에 따른 색채의 화려함이 오히려 무채색으로 스며 결코 나 자신을 외국인이 아닌 기분이 들게 하는 곳. 내가 느낀 멜버른의 차이나타운은 이방인이 없는 거리였다. 우리는 그곳에 앰프를 설치하고, 기타 가방을 열었다. 마이크를 붙잡고 머리를 주억거리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북적이는 곳에서는 그 어떤 노래 실력도 소용이 없었다. 누구도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만찬을 즐기기 위해 거리를 나선 연인이나 가족에게, 사랑은 언젠가 떠난다는 노래나 불러 대는 두 사내를 위한 여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들과 철저하게 차단된 채로 힘겨운 공연을 마쳤다. 벌어들인 돈은 3달러 70센트. 나의 선택이 철로의 1mm를 비켜가게 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한 주가 더 지나서도 우리는 그 거리 주변을 서성였고, 끝끝내 또다시 기타를 튕겼다. 우리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이리저리 방황했다. 멜버른의 거리는 더 이상 나의 무대가 아니었다. 그곳은 빌딩 숲의 낭떠러지. 고개를 비쭉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어디선가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트램이 나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트램의 헤드라이트는 두 눈 속에서 점점 더 거대하게 빛이 났다.


  기타를 처음 잡았던 날이 아득하게 떠올랐다. 어머니는 이웃집의 창고 속에서 폐기 처분될 뻔한 기타를 구해왔다. 기타를 껴안고 곧잘 잠이 들었던 푸르른 나의 열다섯 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떤 반작용도 없이 순수하게 음악을 알아가던 그때, 그 시절. 기억은 중력처럼 내 몸의 모든 감각을 아래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나는 이미 서른셋, 현실은 귀를 찢을 듯이 사방에서 소리를 댔다. 왜 음악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왜 차가운 도로 위에서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연주를 해대고 있는가. 

  트램이 다가오는 소리는 점점 커졌다. 나는 페이드아웃 없는 이 장면에서 콘센트를 뽑아버렸다. 1mm의 철로를 다시 잡지 않는다면 인생의 철로가 뒤틀어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아직 거리로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토록 시린 겨울을 음표라는 철창 속에서 헤매고 있을 뿐.


  빠앙. 트램의 클락션이 울렸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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