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사이먼의 <Paul Simon>
해가 여린 4월의 일요일 오후,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어둔 채 폴 사이먼의 앨범을 꺼내어 본다. 겨울의 달력은 벌써 두 장이나 넘겼지만 볕은 아직 달지 않다. 꽃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먼지로 뒤덮인 뿌연 하늘에 봄은 먼 나라의 소식 같다. 창틈으로 새어온 바람에 몸이 으슬으슬하다. 이에 동의라도 하듯 앨범 재킷의 폴 사이먼 역시 털이 달린 점퍼를 입고 있다. 큰 코에 짙은 쌍꺼풀, 각이 진 턱, 얇고 마른 입술, 희미한 미소. 그의 갈색 눈동자는 오른편으로 치우쳐 있다. 사진작가가 주문한 것인지도 모르고, 돌연히 그가 눈길을 준 것을 포착한 건지도 모른다. 반세기 전의 그는 포크 음악으로 세계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될 거라는 걸 상상이나 해봤을까. 넌지시 무언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속에는 천진한 아이의 호기심과 굳고 고집스러운 심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담겨 있는 것만 같다. 전설적인 포크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활동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앨범을 낸 폴 사이먼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PAUL SIMON>. 타임머신을 타고 1972년의 그를 만나는 건 봄꽃을 마주한 것만큼이나 반가운 일이다.
이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가장 유명한 곡인 "Mother and child reunion"은 포크와 라틴음악, 재즈, 블루스, 레게, 컨트리 음악을 접목한 듯 2박자와 4박자에 강세를 주며 경쾌한 멜로디를 자아낸다. 엄마와 아이의 재회라는 절절한 제목은 중국식당의 닭고기와 계란 요리에서 따온 것이라 하니 권위나 숭고를 감춘, 그러나 일상을 포용하는 그의 태도에 더욱 귀가 이끌린다. 내 아버지는 어부, 어머니는 어부의 친구, 권태로움과 혼란 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젊은 시절, 그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두 번째 트랙의 "Ducan". 기타의 화려한 아르페지오와 높으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음색이 묘하게 어우러진 포크 음악이다. 나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스튜디오 사운드에 매료되어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저 음악이 흐르는 길을 지켜볼 뿐이다.
세 번째로 흘러나온 곡은 바로 “Everything put together falls apart”이다. 1분 59초 동안 흘러나온 폴 사이먼의 목소리와 기타 연주에 나는 완벽하게 매료되었다. 이 노래를 다시 듣기 위해 톤암을 들어 올리길 반복했다. 턴테이블은 흔히 디지털 음원 장치에서 볼 수 있는 ‘한곡 반복 재생’이라는 개념이 없다. ‘일시 정지’도 없다. 톤암을 들어 올리고 내릴 수는 있겠지만 판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다시 톤암을 제자리에 내려 보아도 미세하게 노래는 앞으로 당겨지거나 뒤로 밀려나 있다. 디지털 음원과 LP의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이 같은 기능, 한곡만을 혹은 한 구간을 반복해서 재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디지털은 초 단위로 정확한 지점에서부터 재생하고 멈출 수 있다. 하지만 LP는 다르다. 톤암을 올려 노래를 정지하는 순간, 악기들의 연주와 보컬의 목소리는 미지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듯 구겨지며 이내 사라진다. 정확히 정지하는 것과 여지와 여운을 남기며 정지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일시정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정지를 하기로 결심한 이후로 행해지는 동작들과 밀려남, 미끄러짐과 허우적거림 등의 자연스러움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한다.
기타의 슬라이드, 현란하지만 절제하며 움직이는 코드, 간간이 들려오는 피아노 건반의 부드러운 음정, 있는 듯 없는 듯, 부르는 듯 마는 듯, 가성을 넘나드는 목소리,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숭어 같은 피크 소리의 향연, 통기타 바디의 거친 울림, 시원의 저편에서 불어오는 고요한 음정의 잔물결. 폴이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한 편의 시에 온 정신이 빨려 들어간다. 음악이 우주라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순간은 바로 이 같은 곡을 들을 때이다. 그 누구라도 단 백십구 초 만에 폴 사이먼의 세계에 빠져들고 말 것이다.
76세의 나이의 그는 2018년 7월 런던 투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의료보험 개선 캠페인의 참여와 반전운동, 아프리카를 위한 음악, 사회 운동 등 그가 만들어낸 역사는 아직 끝이 아니다. 기타를 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일은 왼손으로 하는 폴 사이먼은 다만 오른손을 잠시 쉬게 하려는 참일 것이다. 폴 사이먼이 마법처럼 부른 백십구 초의 노래가 끝난 이후 당신은 이 곡을 다시 되돌려 들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