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 우먼을 꿈꾸다

번지 피트니스의 매력

by 세리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시골 학교를 다닐 적엔 운동에 소질이 있나 착각한 적도 있었다. 전교생 100명 남짓에 학 학년에 한 학급씩만 있던 그곳에서 매해 계주 대표 선수로 뽑히곤 했다. 오합지졸 사이에서 운 좋게 누린 혜택이었지만 그 시절 체육 선생님은 남달리 훈련시킬 재목이 없었기에 나와 몇몇 아이들을 데리고 단거리 달리기, 장거리 달리기, 멀리 뛰기, 심지어 높이 뛰기까지 시켜보면서 미래의 인재를 찾는데 열심이셨다.


결국 가장 만만한 단거리 100m 뛰기 선수로 잠시 활약했다. 그러다 선생님은 이제 때가 왔노라며 당시 전북체전 초등부 예선에 도전해보자고 하셨다. 나와 함께 연습하던 소꿉친구와 나는 그게 무슨 대회인지 가늠조차 못했지만 그냥 도시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기에 신나서 가겠다고 했다. 막상 전주에 도착해서 큰 운동장에 들어선 순간 나의 기세는 풀 먹은 종이처럼 흐물거렸고, 결국 예선 1차전에서 출발 신호가 울리자마자 뛰어나가는데 다리 스텝이 꼬여 호랑나비 춤을 추는 개그로 끝나버렸다.


그 뒤로 단 한 번도 운동선수의 꿈을 꿔본 적은 없지만 운동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가까이하며 살았다. 머리가 복잡하고 꽉 막혔을 때는 몸을 움직여야 답이 나온다는 나만의 개똥철학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운동에 도전했다. 가장 만만하게는 파워 워킹과 줄넘기를 평생 친구로 삼아왔고, 덕분에 마흔 인생 동안 몸무게의 변화는 임신을 두 번 겪었던 시기 이외는 크게 없었다.


나이가 들면 유산소보다는 근력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꽤 큰돈을 들여 PT도 받아봤고, 체형 교정을 위해 요가와 필라테스도 도전했다. 중간에 지루해질 즈음엔 줌바댄스로 신나게 호들갑을 떨어보기도 했다. 각각의 운동은 그마다 가진 매력이 있다. 뭐가 더 좋고 나쁘다의 기준은 운동에서는 절대 적용할 수 없는 듯하다. 일단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게으름 뚫고 나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나온 이들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요즘 나는 번지 피트니스란 운동에 빠져있다.


이름도 생소한 이 운동을 우연히 접하고 열렬한 애정을 쏟고 있다. 이름처럼 번지점프를 하는 듯한 장비를 몸에 착용하고 천장에 달려 내려온 로프와 연결한다. 줄 하나에 내 몸을 연결하는 것이다. 그렇게 줄의 탄력성을 이용해서 점프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온갖 근력 운동도 한다.


여러 기본 동작을 배운 후에는 노래 한 곡에 맞춰 안무를 만들어 작품을 만드는 게 이 운동의 최종 단계이다. 이 운동의 가장 정점은 로프를 매달면 몸이 위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줄을 최대한 뒤로 힘 있게 당겼다가 줄의 탄성을 이용해 온몸을 힘차게 박차며 뛰어나온다. '왼발 , 오른발, 왼발, 점프!'를 하면서 오른발은 무릎을 접어 위로 차오르며 상체는 곧추 세운다. 왼발을 쭉 뻗어 힘을 가하면 그대로 높이 날아오른다. 손도 오른쪽은 위로, 왼쪽은 아래로 발과 맞춰 아래로 쭉 뻗어 마치 벽을 타고 올라가는 스파이더맨 자세를 취해주면 완벽한 포즈가 완성된다.


사실 완벽한 포즈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기초작업이 필요하다. 코어의 힘을 바짝 잡아야만 공중으로 점프했을 때 허리를 세울 수 있다. 한쪽 다리를 접고 다른 쪽을 곧게 뻗으려면 허벅지 내정근에도 근육이 꽤 잡혀 있어야 흔들림 없는 근사한 스파이더맨 자세를 취할 수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도 수없이 절망했고, 공포스러윘다. 무엇보다 허벅지에 착용하는 장비가 몸에 좀처럼 적응되지 않아 허벅지 안쪽에 연약한 살들에 뻘건 피멍이 매일 들었다. 함께 시작했던 많은 동지들은 중간에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그 점프했을 때의 쾌감은 다시 내 몸을 그 줄에 붙들어 맸다.


겨우 줄 하나와 연결했을 뿐인데 그 가느다란 줄을 의지해서 나는 땅에 발을 떼고 찬란하게 위로 날아오른다. 번지 피트니스는 한 시간 동안 대략 1000칼로리가 소모된다고 할 정도의 고강도 운동이라 꽤 힘겹게 헉헉대며 선생님의 안무를 좇아간다. 그러다가도 날아오르는 포인트에는 그 힘듦이 땀과 함께 저 멀리로 증발되고 '와아'하는 거센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맞는다.


운동을 마치고 줄의 고리를 푸르고 다시 지상으로 내려왔다. 스파이더맨이 평범한 피터 파커로 바뀌는 그 순간의 마음도 이렇게 아쉬울까. 그러나 스파이더맨도 매 순간 찬란하고 멋질 수만은 없다. 현실세계로 돌아왔을 때는 다시 범속한 일상에서 이런저런 관계 속에 치열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래도 다시 스파이더맨 코스튬을 입고 영웅이 되어 날아갈 순간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현실을 살아다. 나도 스파이더 우먼을 꿈꾼다. 3초간 공중에서 맛볼 극강의 일탈을 기대하며 내가 서있는 곳에서 발을 굳세게 딛고 힘을 내어 살아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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