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옥수수

by 세리

내 어릴 적 고향은 지금은 물속에 잠겨 사라진 마을이다. 정유정 소설 <7년의 밤> 속에 등장하는 '세령 마을'처럼 마을이 훼손되지 않은 채 수몰이 됐다면 진짜 잠수복이라도 입고 입수해서 그곳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실제로 댐을 만들 때는 마을을 거의 철거 한 다음에 물을 가둬서 수몰시킨다. 나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동화 속 같은 장면 장면에 추억들을 고이 새긴 시간들을 보냈다.


나의 고향은 8절지 스케치북을 펼쳐서 그릴라치면 그 공간에 그곳의 구석구석까지 다 그릴 수 있을만한 곳이었다. 진안군에 속한 작은 면 소재지였는데 다른 마을과는 외떨어져서 버스를 타야만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마을 중앙엔 소박한 시장과 버스정류소, 그 옆으로 농협과 우리 집 단골 외식 집 손짜장집이 있었다. 그리고 시장을 빙돌아 왼쪽 길로 쭉 가면 큰집이 있고 시장에서 오른쪽 오르막길로 쭉 올라오면 다홍 지붕 집 우리 집이 있었다.


농협 직원, 학교 선생님, 혹 가게를 소유한 동네 주민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농사를 짓는 이웃들이 많았다.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 밑으론 천이 굽이지어 흘렀기에 산골마을에 속했지만 논농사와 밭농사 구분 없이 농작물 수확이 좋은 편으로 기억한다.


아빠는 농협을 다니셨기에 우리 부모님은 농사를 안 지으셨지만 같은 동네에 살던 큰아버지 댁에서 논농사 조금이랑 옥수수를 많이 심었다. 그래서 사촌 언니 오빠들과 재미 삼아 봄에는 모내기할 때 논에 놀러 가 도와주는 시늉을 하면서 새참을 얻어먹던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내게 가장 큰 기쁨은 옥수수였다.


언젠가 처음으로 엄마가 금산 읍내에 가셔서 롯데리아 햄버거를 사 왔던 날을 기억한다. 야들야들한 빵 사이에 달척한 고기 패티가 박혀있고 숨 죽은 양상추가 그 위를 살짝 덮은 불고기 버거는 말 그대로 시골 촌뜨기들에게 별천지 맛이었다. 그렇게 우리 삼 남매는 엄마가 도시 나들이 가는 날만 기다리며 불고기 버거를 기다릴 정도로 그것은 동경의 맛이었지만 내게 불고기 버거와 옥수수를 택하라고 하면 난 주저 없이 옥수수를 고를 정도로 유명한 옥수수 빠순이였다.


뜨거운 여름 태양이 절정에 달하는 7월 중순쯤 되면 큰엄마 댁에서 옥수수를 수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난 엄마를 재촉해서 같이 옥수수 밭으로 뛰어갔다. 드넓은 옥수수 밭에 빼곡히 열린 옥수수 풍작을 보는 것은 일단 눈으로 처음 맛보는 큰 기쁨이었다.


할머니는 옥수수는 옥수수수염이 잘 마른 것이 잘 익고 튼실한 옥수수라고 알려주며 파란 껍질에 수염이 마른 옥수수를 잘 골라서 따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할머니, 내가 맛있는 옥수수는 기가 막히게 찾으니 걱정마요!!"라고 말하며 부지런히 도왔다. 옥수수는 껍질이 누렇게 마르면 너무 익은 것이라 딱딱해진다. 그래서 적기에 옥수수를 빨리 수확하는 것이 맛난 옥수수를 먹기 위해 가장 중요하다. 무엇보다 옥수수는 수확한 직후에 바로 쪄서 먹어야 그 어마한 맛을 맛볼 수 있다. 바로 찌는 옥수수에는 다른 첨가물은 필요 없다. 오히려 옥수수 맛의 향연에 방해꾼이 될 뿐이다. 소금과 사카린이 잔뜩 들어있는 서울에서 맛본 시판 옥수수에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던지.


옥수수를 잔뜩 수확한 후 큰엄마는 우리 가족이 충분히 먹을 양을 싸서 우리에게 주셨고, 나머지는 주변분들에게 나눠주고 대부분은 농협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분류를 하셨다. 엄마는 옥수수를 받아와서 집에 와서 바로 삶았다. 옥수수는 삶아도 쪄도 다 맛나지만 대량의 옥수수를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삶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옥수수가 익어가는 그 향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달콤하게 만드는 위력을 가졌다. 그 향에 취해 부엌 근처에서 동생들과 공기놀이를 하거나 사방치기를 하면서 시간이 어서 가기를 재촉해보곤 했다.


드디어 옥수수가 다 익으면 우리는 마루에 걸터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신기하게 옥수수는 노란 색도 있고 하얀 색도 있고 알알이 검은 점이 박힌 옥수수도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어여쁜 노오란 옥수수를 먼저 쥐어들곤 했다. 여름 더위도 매섭지만 옥수수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는 더 뜨거운 법. 그것에 질세 없다. 나는 "앗 뜨거! 앗 뜨거!"를 연발하면서도 옥수수 대를 놓치지 않고 오물오물 알알이 베어 물기 시작했다. 첨가물 하나 없이 옥수수에서만 나오는 그 깊은 단맛과 짠맛의 조화는 가히 경이로웠다. 더구나 큰집 옥수수는 어김없이 찰옥수수였다. 한번 베어 물을 때마다 목에 넘기는 양만큼 이 사이에 끼는 것이 자꾸 쌓여 갈 정도로 강력한 끈적임. 노란 옥수수 다음으론 검은 알이 콕콕 박힌 옥수수가 표적이었다. 노란 옥수수보다 단맛은 덜하지만 찰짐은 더 센놈! 알맹이들이 따로 야무지게 떨어지지 못하고 서로 엉켜 붙고 앙팡지게 뭉개져서 베어 물 때마다 지저분한 꼴이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다시 쪽쪽 빨면서 마무리를 해주면 되니 말이다.


그렇게 더운 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한 자리에 옥수수 10개는 기본으로 먹어 치웠다. 엄마와 할머니는 내가 옥수수 먹는 걸 보면 흡사 메뚜기 떼가 습격해서 벼를 갉아먹는 꼴이라고 놀리곤 하셨다. 잔뜩 삶아서 가을 대비용 간식으로 냉동고에 들어갈 몫으로 남겨둔 것 까지 나는 그날 저녁에 밥 대신 또 습격하곤 했다. 그러고도 며칠 후 또 옥수수 생각이 간절했다. 그럴 때도 방법이 있었다. 큰엄마 댁으로 가면 어김없이 수확 후 며칠 후까지 부엌 냄비에 옥수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당시 시골집들은 집들마다 다 대문이 달려있었지만 그 쓰임새가 제대로 쓰이고 있던 집은 하나도 없었다. 늘 활짝 열려있던 대문을 통과해 나는 자연스레 큰엄마 댁 부엌으로 바로 들어가 옥수수를 꺼내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도둑질이나 진배없는 거였는데 그때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내가 옥수수를 먹고 있으면 볼 일 보고 들어오신 큰엄마가 오셔서 "어이구, 우리 옥수수 귀신 또 와있구먼. 실컷 먹고 가래이" 하셨다.


여름이 다가오면 난 어김없이 옥수수 찌는 냄새와 그 맛이 그립다. 그런데 아무리 맛있다는 옥수수를 사서 집에서 삶아도 좀처럼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그대로 재연되기가 어렵다. 어쩌면 그 여름, 그곳에서 먹던 그 옥수수가 그리운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난 그 추억의 맛을 아로새기며 오늘도 옥수수를 삶았다. 지금부터 옥수수 파티를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