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계획에 없던 첫째 아이가 1년 만에 찾아왔다. 신혼집은 도저히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무리해서 이사를 했다. 새로 이사한 두 번째 집에서 첫 아이를 키웠다. 평촌의 구석진 복도식 아파트 10층에 4호 집이었다. 1004호. 1004호에서 천사 같은 아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낼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이가 백일이 되기도 전에 나는 10층 베란다에 서서 '여기서 떨어지면 죽으려나'를 생각하는 끝없는 우울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이 서른이 되기 전에 아이 엄마가 된 사람은 주변에 아무리 둘러봐도 나 밖에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고 밤 늦게 녹초가 되어 들어오는 신랑이 안쓰럽다가도 혼자만의 시간이 있는 그가 부러웠고 미웠다. 그는 쉴 새 없이 나를 챙기고 아이를 돌보는 것을 도왔지만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계속해서 분노와 우울감이 일었다. 우울하다고, 화가 난다고 하면 내게 모성애는 없는 비정한 엄마가 돼버리는 프레임을 깰 방법을 알지 못해 무기력해져만 갔다. 난 분명 내 아이를 사랑했지만 사라진 내 시간과 자유를 간절히 되찾고 싶었다.
꽃다운 나이의 2년 동안 내 삶의 모든 자유는 아이의 오후 수면 상태에 달려 있었다. 우선 살펴본다, 규칙적인 숨소리, 조용하다. 자는 건가, 왜 오늘은 안 자나, 짜증이 난다. 마침내 잔다, 부서지기 쉬운 시간의 유예, 자동차 클랙슨, 초인종, 층계참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깨어날까 두려워 안절부절못하는 나는 침대 주변의 세상을 목화솜으로 꽉 채우고 싶다.
<얼어붙은 여자> p215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책, <얼어붙은 여자>에서 화자가 고백하는 저 순간에 바로 평촌 아파트에서 홀로 아이와 사투를 벌였던 그 시간들이 소환됐다.
<얼어붙은 여자>를 읽는 것은 마치 모놀로그를 보는 듯했다. 관중은 모조리 심오한 예술가들이고 나만 예술 무식쟁이로 외롭게 관객석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행위 예술을 하듯 드러내는 연극을 찰떡같이 이해하고 싶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관객이 된 듯 무안했다. 그래도 이탈하지 않고, 졸음의 사투와 싸우며 초반부를 지나가자 조금씩 그녀의 의식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 마지막에는 완전히 그녀와 동일시되며 몰입했다.
이 책에서는 성장통을 겪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화자의 삶을 면밀히 지켜보게 된다. 그녀는 여자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이념과 고정관념에 갇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친구가 알려주는 이성을 유혹하는 법은 알고 싶었고, 남자와의 성애는 느끼고 싶은 자기모순에 시달렸다.
“넌 너만 생각하면 된다”, "신경 쓰지 마라, 공부만 해"라고 말해주는 엄마와 집에서 살림을 하는 아빠를 가진 것이 선물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친구들 부모님과 다른 괴리감에 힘겨워하던 사춘기 시절을 겪었다. 친구들이 한심하고 어이없었지만 그들과의 완전한 고립을 선택할 완전한 용기도 그녀에게 없었다. 그것이 인간, 그리고 소녀의 삶.
홀로 마음껏 사유하며 하고 싶었던 공부가 있었지만 결국 그녀도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는 그 통념에 떠밀리듯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과 여자는 둘 다 공부하는 학생이었지만 식사 때가 되면 마트에 가서 무엇을 사고 무슨 요리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오롯이 그녀 차지가 된다. 집을 정갈하게 가꾸고 옷을 반듯하게 다림질하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불합리했다.
"나는 반짝거리는 조용한 부엌에서, 딸기와 밀가루가 있는, 그 이미지 속으로 들어갔고,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죽어간다." (p85)
"내 신조는 스피드였다. 경쾌한 움직임, 애정 어린 걸레질, 토마토를 작은 꽃 모양으로 만드는 일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대신에 종종 헛된 기대로 끝나긴 하지만, 아침나절에 한 시간을 빼낼 요량으로, 가능한 한 하루에 좀 더 긴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돌격하는 걸음걸이로, 질주하듯 집안일을 해치운다."(p215)
왜 결혼을 하면 이 모든 것이 여자가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는 걸까. 그녀는 시간을 쪼개서 그 모든 것을 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살아가기 위해서 급하고 사소한 것들이 우선순위로 매겨지고, 그녀가 진짜 하고 싶었던 공부는 뒷전으로 밀린다. 반면 함께 공부를 해던 신랑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논문을 써내고 학위를 딴다.
"나는 언제나 나의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고 싶다" (p85)고 생각한 여자였다.
그녀는 거기에 예상치 못한 임신까지 하면서 엄마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남녀 관계, 그리고 결혼 생활에서 느끼는 허무함과 자존감 붕괴는 만국의 여성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일까. 이 책은 한 여성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중간중간 내 과거의 어떤 지점에 깊이 맞닿게 된다. 화자는 가만히 자신의 뒤를 따라와 보라고 말한다. 들어가면 위험해 보이는 깊은 숲 속으로 그녀는 거칠게 이끈다.
그곳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 법한 음습하고 으스스한 숲 속이지만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우리도 용기를 갖게 된다. “나도 한 번 들어가 볼까?” 하면서 그녀가 먼저 밟고 간 그 길을 따라 걷게 된다. 걷다 보면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나는 지점들이 있다. 아주 어릴 적 소녀였던 나, 사춘기 시절 친구들과 은밀하게 나눴던 수다들, 첫사랑과의 서툴렀던 연애 시절, 그리고 결혼을 하기로 다짐하면서 수없이 고민하며 행복했던 나날들, 결혼 후 밤마다 잠든 신랑 옆에서 홀로 알 수 없이 밀려드는 외로움과 허무함에 몸부림치던 날들의 기억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수없이 많은 번뇌와 육체의 피곤과 사투를 벌였던 그 시절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의 감정과 갈등을 다 해소하고 해결하고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깊숙한 숲 속에서는 그것들이 온통 뒤엉켜서 제멋대로 뒹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후회와 원망과는 다른 결이다. 살면서 이 시대가, 사회가, 제도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을 맞추며 살아오다 놓쳤던 내 자아에 대한 성찰을 상기시킨다. 내가 했던 행동과 말들, 그리고 선택들에 대한 동기와 원인들을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그리 생각한들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닌데 왜 그것들을 굳이 다시 무의식의 세계에서 끄집어내서 찬찬히 보고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뒤엉킨 감정들을 다시 찬찬히 돌보고 어루만지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크나큰 위로가 있고,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수많은 선택들을 마주했을 때 어떤 태도와 감정으로 그것을 처리할 수 있을지 깨닫게 해 준다.
이제는 나도 작은 세계를 구성하는 주요한 외부 요인이 되었다. 일종의 기성세대가 된 것이다. 나의 두 딸들에겐 내가 프레임을 만들어주고 길의 안내자가 되어주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틀을 만들어주고 있을지 불현듯 두려웠다. 때로는 아이들에게 농담조로 “너희들은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돼.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멋지게 살아” 라고 말하면 이제는 생각이 커진 아이가 되묻는다. “엄마는 결혼해서 싫어요?” 나는 결혼을 해서 싫은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결혼은 매 순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매직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수없이 뒤따라오는 번뇌로부터 나를 지켜줄 든든한 울타리를 만들어 준다. 나는 그 안정감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얻은 남편과 두 딸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이들은 내 삶의 의미가 됐고, 내가 제대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지만 삶의 의미는 누구나 다르게 가꾸어갈 수 있기에 안정감이 아닌 독립심을 가지고 나와 다른 선택을 할 딸들의 삶도 꿈꿔보게 된다. 딸들에게 엄마가 걷는 삶만이 여자가 가야 하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히 해두고 싶다. 산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풀잎들도 얼핏 다 비슷해 보이는 모양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 잎에 아로새겨진 모양과 선들이 다 제 각각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에게 햇빛과 바람과 비는 필요하다. 그 안에서 본연의 개성대로 자신의 기지를 발휘해서 각자만의 최고의 인생을 가꿔가는 법 아니겠는가.
나의 두 딸들에게 '어머니는 힘이자 폭풍인 동시에, 아름다움이자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고, 내게 미래를 열어 보여준 분이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인물'(p21)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