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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by 세리

"엄마는 내가 좋아, 언니가 좋아?"

둘째 아이가 매일 한 번씩은 꼭 물어오는 질문이다.

"당연히 둘 다 똑같이 좋지.."라고 답했다.


그러면 아이는 "아니, 둘 중에 딱 한 명만 골라야 해."라고 되받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질문에 귓속말로 "나는 이 우주에서 네가 제일 좋아"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언니를 흘깃 보고는 안도하며 제 할 일에 다시 열중했다.


그랬던 아이가 이제 또 생각 주머니가 어느 만큼 자란 건지 본인이 제일 좋다는 나의 귓속말에 다시 내 귀에 대고는 "엄마, 언니 한데도 그렇게 몰래 말해주는 거 다 알아!!" 하는 거 아니겠는가. 아이고야, 둘째의 질투에는 도무지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자신의 감정을 참아내고 늘 의젓하게 말하는 첫째 아이와 다르게 매사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솔직한 둘째를 보고 있노라면 어이가 없다가도 그 투명한 속내에 매료되고 만다. 나도 첫째로 자라서 그런지, 아님 타고난 성정이 그런 건지 진짜 속마음과 감정을 잘 숨기고 타인 앞에서 몇 개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데 아주 능숙하다. 그래서 거칠 것 없이 자신의 시기와 질투를 그대로 보여주는 둘째 아이의 솔직함이 부러워질 때도 있다.




며칠 전, 둘째 아이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둘이 한참을 신나게 놀더니 그 친구는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자연스레 의자에 앉아 능숙하게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제 겨우 8살인 아이는 얼핏 듣기에도 수준급의 실력을 뽐냈다. 나는 자동반사로 "우와!! 너무 잘 친다!! 이모 진짜 깜짝 놀랐어, 정말 멋진걸!!" 이라며 무한 칭찬을 쏟아냈다.


순간 옆에서 레이저급 눈빛으로 날 쏘아보는 둘째 아이를 발견한 순간 '아차'싶었다. 후환이 두려웠다. 둘째 아이 앞에서 다른 사람을 칭찬한 이후에 아이에게 얼마나 심하게 시달렸는지 남편과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하곤 했는데 잠시 넋이 나간 것이었다. 아이의 표정은 급 어두워졌지만 일단은 친구와 놀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친구가 집에 돌아가자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엄마, 내가 피아노 칠 때는 그렇게 칭찬도 안 해주더니 어떻게 서후가 피아노를 치니깐 그렇게 칭찬을 해? 내가 칠 때는 맨날 영혼 없이 어, 잘 친다! 이래 놓고선!!" 하면서 질투심에 악에 바친 포효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친구는 피아노를 일찍부터 배워서 잘 치는 게 당연하고, 피아노 연주를 해준 친구에게 잘했다고 해주는 것은 당연한 예의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토라진 아이는 쉽사리 풀어지지 않았다. 결국 둘째를 달랜 것은 제 언니였다.


"희서야, 서후가 친 곡 너도 치고 싶어? 그거 별로 안 어려워. 언니가 가르쳐줄 테니까 연습해볼래?"라고 말했다. 아이는 언니 옆에 찰싹 붙어서 못 이기는 척 배우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난 그 친구가 무슨 곡을 쳤는지도 몰랐는데 <고양이 춤>이란 곡이라고 했다. 이제 겨우 바이엘에서 양손 연습에 들어간 둘째 아이가 치기에는 무리일 듯한 곡이었는데 언니가 자신도 충분히 칠 수 있다고 말해주니 마음이 풀어지며 해보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돋은 것이다.


결국 아이는 일주일 동안 매일 조금씩 언니가 시범을 보이면 유심히 보고는 혼자서 계속 연습을 했다. 평소 끈기와 성실함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기에 금세 포기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잘 안된다고 갖은 짜증은 부릴지언정 결코 안친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결국 일주일 만에 그 곡을 다 외우고 칠 수 있게 됐다. 아이는 아빠, 엄마, 언니를 다 불러 모아 놓고선 당당하게 피아노 연주회를 시작했다. 중간중간 틀리기도 했지만 아이는 끝까지 <고양이 춤>을 다 연주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를 그동안 성장시켰던 동력의 팔 할은 질투심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보다 뭐든 잘하는 언니가 존재했으니 늘 질투와 시기심이 장착되어 있던 아이였다. 본인 앞에서 조금이라도 언니를 칭찬하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악다구니를 쏟아내며 '나를 더 사랑해주세요'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던 아이. 그런데 아이는 어느새 자신의 질투심을 성장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보다 영어를 잘하는 언니를 향한 질투심이 한글도 떼기 전에 영어책을 먼저 보게 만들었다. 무슨 글자인지 알지도 못하는 영어책을 듣고 또 들으면서 스스로 파닉스를 터득했고 영어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영어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능숙하게 표현할 줄 아는 만큼 영어 실력이 성장했다. 발레를 시작한 것도 순전히 친구를 향한 질투심 때문이었다. 발레복을 입고 다리가 쫙 찢어지는 친구를 보고는 발레에 좀처럼 관심이 없던 아이는 자기도 발레 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본디 유연성이 부족했던 아이는 발레를 배우고 올 때마다 어렵고 아프다며 울면서 힘들어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만큼 성장할지 기대된다.



질투는 삶의 지도가 된다.


타인에게 큰 관심을 안 두는 척 태연하게 페르소나 가면을 두르곤 하지만 나도 수시로 질투를 느낀다. 질투를 느끼는 나 자신이 너무 치졸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질투심은 나 자신을 순식간에 우주에서 가장 가소롭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질투의 어두운 터널을 잘 통과하면 그것은 내가 성장하는데 가장 큰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질투심을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둘째 아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이다. 질투를 느끼는 상대가 생기면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에 질투를 느꼈는지 더 면밀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감정을 무시하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해 본 것이다. 질투란 감정이 나 자신을 무참히 침몰시키지 않게 하려면 그것을 더욱 꽉 붙잡고 내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질투심을 친구로 삼게 되면 놀랍게도 이 아이는 나에게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라고 아주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준다. 구체적으로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노력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더 나아가 그 질투를 느끼는 상대보다 더 긍정적인 자산이 나에게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걔가 한 것이면, 나도 할 수 있어!!"라는 결론에 다다르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한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 작가는 질투가 생길 때 독사에게 물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즉시 해독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해독제는 바로 질투심의 지도를 세 부분으로 정리해보는 것이다. 세 부분의 첫 칸에는 질투하는 사람의 이름을 쓴다. 그 옆에는 질투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어본다. 그리고 마지막 칸에는 그 질투심에서 벗어나서 창조적인 모험에 뛰어들기 위한 행동 한 가지를 적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둘째 아이가 한 것처럼 말이다.



"질투의 사나운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하는 법을 익히면,
질투는 푸른 미래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

<아티스트 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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