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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없는 1주일

네가 만들어가는 온전한 하루

by 세리

코로나로 인해 요일별로 등교시간이 달라서 큰 아이는 수요일에 10시 반까지 등교를 한다. 수요일 오전에 아이는 나른한 햇빛을 받으며 한가로이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영어책 집중 듣기를 미리 좀 하고 가면 좋지 않겠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일단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을 삼켰다.


아이와 진지한 대화 끝에 이 엄마가 한 주동안 그 어떤 잔소리도 하지 않을 테니 혼자서 계획을 세워서 1주일을 살아보기로 한지 사흘째 날이었다. 아이는 학습에 관해서는 학원에 가지 않고 영어는 엄마와, 수학은 아빠와 정해진 분량만큼 매일 공부를 하고 있다. 매일 비슷한 루틴 안에 해야 할 공부량도 늘 비슷함에도 온종일 나는 아이를 재촉하며 그다음에 할 공부를 들이밀곤 했다. 그리고 수시로 오늘 해야 할 to-do 리스트를 아이에게 확인했다.


"은서야 집중 듣기 다 했어?"


"그럼 이제 뭐해야 해?"


"빨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 물음들이 계속 반복되는 식이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한 약속을 결코 어기는 아이는 아니다. 그 누구보다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본인이 하고 있는 공부에 자부심과 열심을 가지고 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난 끊임없이 아이를 확인했고, 계획이 틀어질까 불안해하며 아이를 잡아끌었다.



하루는 밤 9시까지 아이가 오늘 해야 할 분량을 다 끝내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었다. 불쑥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 앞에서 이성을 잃고 내 안의 성난 것을 통제하지 못할 것 같아서 신랑 손을 끌고 야밤의 산책을 나갔다. 아이들에게는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라고 한 후, 잠시 나온 산책이었다. 차마 아이에게 퍼붓지 못한 화를 신랑에게 퍼부었다.


"아니, 내가 매일 똑같이 말하고 또 말하는데.. 왜 달라지는 게 없지? 본인이 오늘 해야 할 일이 뭔지 알면 빨리 끝내 놓고 책을 보거나 놀면 얼마나 좋냐고... 아주 느긋하게 하는데 옆에서 내 진을 나 빼고 있어. 나 언제까지 애 옆에서 이렇게 진도 체크하면서 고문받아야 해? 그냥 학원 보내버릴까 봐."


잠자고 듣던 신랑은 "그렇구나. 은서처럼 열심히 하는 아이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기대에 못 미치나 보네. 그럼 아이 한데 다음에 뭐 해야지..라고 아예 말을 하지 말고 그냥 은서가 스스로 생각해서 하게 해 보는 건 어때? 서도 엄마가 계속 시키는 걸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은데... 자기가 일주일간 잔소리 안 하고 공부하라고 안 해도 스스로 잘 해내면 은서도 더 뿌듯해하며 신나서 스스로 더 잘할 것 같은데. 아이 한데 한번 기회를 줘봐."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가 자기 주도 학습이 안된다고 불평하고 있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준 적이 없었다. 하루 계획표도 함께 세워보곤 하지만 늘 내가 정해준 순서대로 고분고분하게 따라서 계획표를 만들게 했을 뿐이다. 아이가 다 큰 성인처럼 스스로 행동해주길 바라면서도 아이 한데 그런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 그래, 한번 아이에게 기회를 줘보자 싶었다.


엄마의 제안에 아이는 기대 이상으로 무척 기뻐했다.


"엄마! 너무 좋아요! 제가 계획 세워서 혼자 해볼게요."


그렇게 아이는 주말 내내 혼자 계획표를 만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 수업을 듣기 전에 엄마표 영어로 진행하는 원서 집중 듣기를 먼저 하곤 했는데 그 순서를 바꿔서 수학을 오전에 먼저 해보겠다고 했다.

"엄마, 영어를 다 끝내 놓고 수학을 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요. 저는 아침에 집중력이 더 좋으니 수학을 아침에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이는 벌써부터 본인에게 집중이 더 잘되는 시간이 언제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저 엄마가 아침에 영어를 먼저 하라고 해서 따랐던 것. 혼자서 계획표를 짤 때는 본인의 신체리듬을 고려해서 덜 즐거운 수학을 먼저 아침에 하겠다고 하는 것이 그저 기특했다. 엄마 한데 굳이 브리핑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이는 신이 나서 자신이 세운 계획을 말해주고 말끔하게 계획표를 만들어서 모두가 보이는 곳에 붙여놓았다.




이제 겨우 4학년인 아이가 매일 계획표에 갇힌 생활을 하면 답답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아이의 집중력뿐만 아니라 창의성도 어느 정도 정해진 규칙적인 루틴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트 마크먼 교수가 그의 저서 <스마트 싱킹:앞서가는 사람들의 두뇌습관(smart thinking)>에 썼던 글을 기억한다.


"창조적인 행동습관을 키우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일상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자기 파괴적인 삶에서 영감을 얻지 않는다. 그들은 규칙적인 삶을 산다. 반복되는 일상을 유지하고 그런 일상에서 창의성이 나온다.



이제 아이도 스스로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할 수 있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먼저 앞서서 끌어주지 않아도 아이는 충분히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해서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난 한 주동안 난 아이에게 학습에 관한 잔소리를 하지 않았고, 아이는 자기 스스로 한 약속을 멋지게 지켜냈다. 그 누구보다 하루를 마치면서 자신이 세운 계획에 따라 최선을 다해 끝낸 것에 본인이 가장 기뻐했고, 흡족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덕분에 나도 아이 옆에서 마음껏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


아이가 만들어가는 이 작은 습관들에 경의를 표하며 앞으로도 부디 그저 입은 다물고 아이 뒤에서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주는 엄마로 살아갈 수 있길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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