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3.2kg의 여아 표준 몸무게로 지극히 평범하게 태어났다. 그런데 아이가 몸무게 증가 속도가 무섭게 빨랐다. 걱정하는 초보 엄마의 속은 모르고 주변에서는 젊은 엄마라 모유가 실하다는 둥, 참젖이라는 둥 애먼 소리만 늘어놓곤 했다.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아이가 참 예쁘네요.”라는 말은 하지 않고 말이다. 아기일 때는 무조건 잘 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가도 ‘평균’이라는 기준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벗어날 때 무조건 두려움이 생기게 마련이다. 아이의 몸무게는 계속 평균을 벗어났고, 급기야 상위 1%를 찍었다. 백일이 조금 넘었을 때 태어난 몸무게 두 배가 보통이라더니 이 아이는 세 배치인 거의 9kg에 육박했고, 돌이 됐을 때는 14kg이 넘었다. 조리원 동기 여아 친구들의 앙증맞은 체구 옆에 있으면 우리 아이의 비현실적인 미셸린 체구가 더 비교되곤 했다. 거기에 아이는 좀처럼 걸을 생각을 하지 않는, 엉덩이가 무거운 아이였다. 그 튼실한 아이를 16개월까지 계속 안고, 업고 다녀야 했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이의 식단 관리에 들어갔다. 최대한 달지 않은 음식 재료로 적당량만 먹이려고 노력했다. 식욕이 왕성한 아이에게 간식도 많이 주지 않으려고, 배고프다고 칭얼댈 때마다 그 텀을 조금씩 늘리기 위해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몸무게는 가속도 붙은 탈것에 올라탄 것처럼 계속 늘었다. 항상 또래 여아들보다 3kg 이상은 더 나갔다. 이 수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나 스스로도 참 노력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성인이 돼서도 평생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한국 여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알기 때문에 이 아이만큼은 그 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다. 나 홀로 속으로는 걱정하며 수면 아래에서 수없이 발장구를 치듯 아이에게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아이 앞에서는 절대 몸무게 때문에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으리라 수도 없이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건강하고 그저 해맑게만 자랐다.
그 아이가 이제 10대에 접어들었다. 올해로 11살이 된 것이다. 10대의 소녀가 되자 아이는 자신의 몸을 객관화해서 보는 눈이 생기고야 말았다. 마른 친구들과 비교해서 통통한 자신의 몸이 보이면서 조금씩 걱정하는 내색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나는 허벅지가 많이 두껍죠? 내 친구는 몸무게가 아직 30kg도 안 나간 데. 나는 너무 많이 나가는 것 같아요.”라면서 몸과 외모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냐, 우리 은서 지금도 얼마나 예쁜데! 그 친구들이 마른 거지 은서는 평균이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주면서 걱정을 무마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내 속마음은 아이보다 더 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딸을 키우는 엄마들 사이에서 40kg이 생리 시작의 마지노선이란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내 몸무게보다 아이의 몸무게가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키울 때 ‘성조숙증’이란 말은 아셨을까. 요즘 딸 엄마들 사이에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말이 ‘성조숙증’이다. ‘옆집 누구는 2학년 때 생리를 시작했네’, ‘어떤 아이는 학교에서 생리대를 못 갈아서 엄마가 쉬는 시간마다 가서 대기하고 있다네’…. 등등 온갖 공포를 조장하는 생리 이야기들. ‘성조숙증’이 두려운 것은 단순히 생리를 빨리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더는 아이의 키가 자라지 않는다는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랴.
교육인적자원부의 여아 발육 곡선에 근거하면,
생리를 시작하여 평균 키의 여아가 최종 키까지 평균 15cm 정도 자란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 또한 생리에 대한 실체 없는 두려움을 갖고 아이의 몸무게 증가 추이를 계속 마음 졸이면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또래 평균 몸무게보다 3kg 정도 많이 나가는 정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초에 병원 예약을 하고 성조숙증 검사를 하기로 다짐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한 후에 걱정하는 것이 맞지 싶었다.
성조숙증 검사를 예약하는데 이리도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예약 시점부터 향후 6개월은 다 예약 마감이라고 해서 6개월을 넘게 기다렸다가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아동 병원에 도착해서 대기실에 대기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여아들이었다. 검사는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엑스레이로 아이의 뼈 성장 정도를 살피고, 진성 2차 성징인지 알기 위해 방사선 촬영과 혈액을 추출하여 골연령을 측정하고 호르몬 검사를 실시하게 된다.
병원을 가기 전부터 아이는 주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기저에 깔린 채, 자신이 성조숙증으로 결과를 받을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이만큼 나도 두려웠다. 그래도 담담한 척, 아이에게 별일 아니라고, 검사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의사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만 하면 다 괜찮을 거라고 안심을 시켰다. 결과는 다행히 본인 나이보다 뼈 나이가 6개월 정도 빠른 것으로 나왔다. 6개월 정도면 굳이 2차 성징을 늦추는 주사를 맞힐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하셨다. 다만 예상키가 엄마 키보다는 적게 나오는데 키를 더 키우고 싶으면 매일 호르몬 주사를 맞힐 수는 있다고 하셨다.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내 키는 166cm이고, 신랑 키가 173cm인데 아이 키는 158~160cm로 예상키가 나온 것이다. 그동안 살면서 키 때문에 고민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앞으로 아이 인생에 키가 얼마나 중요할지 함부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괜스레 평균 키를 깎아 먹은 신랑이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의사 선생님은 오롯이 엄마와 아이의 선택이니 잘 고민해보고 결정하라고 키에 관해서는 철저히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마음속으로 비용 대비 아이의 인생을 걸고 기회비용을 따지느라 나는 너무 복잡한데 아이는 오히려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직은 자신의 인생에 ‘키’가 차지할 운명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해서 내리는 단순한 결정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아이의 생각은 단호했다.
엄마와 아빠가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라고 했잖아요. 억지로 키를 키우려고 주사를 맞는 것은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키가 클 수 있는 좋은 음식도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할게요.
라면서 평소의 우유부단한 성격과 다르게 단호함을 보였다. 그동안 나는 속으로 아이의 외모와 키에 대해 다른 아이들과 홀로 끊임없이 비교하며 걱정했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아이에게 자존감을 키워주려고 해 줬던 말을 아이는 순수하게 다 받아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아이에 비해 나는 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지 못하고 혹여나 외모나 다른 조건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를 욕심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아이가 커 갈수록 엄마의 겉과 속이 다른 것에 속지 않을 것인데, 겉과 속이 일치되는 엄마로 살아봐야겠다. 몸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