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유치원 졸업식을 했다. 예상치 못한 코로나로 인해 7세 유치원 생활에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지만 험난했던 여정 끝에 아이는 결국 고지에 도달하긴 한 것이다.
졸업식 전날, 나는 꽃집에 가서 크고 화려한 꽃다발을 주문했다. 유치원 졸업식에 이리 큰 지출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일단은 아이가 까탈스럽게 주문한 이유가 컸다.
“엄마, 여러 가지 꽃으로 크고 화려한 꽃다발로 준비해야 해. 꼭 서프라이즈로 갖고 와요.”라면서 자신의 요구를 정확히 말하는 아이였다. 뒤탈이 날까 염려되어 아이의 주문대로 꽃을 사서 몰래 가지고 들어와 베란다에 숨겼다. 아이 몰래 홀로 베란다에 둔 꽃다발을 보러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다. 설사 꽃이 시들까 싶은 염려와 함께 그 꽃다발은 아이를 위한 것이라기보단 이 아이를 졸업시키는데 수고한 나 자신에게 주는 꽃다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유치원 졸업식에 뭐 그리 호들갑이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아이의 7년간 성장 과정을 생각하노라면 그저 감개무량할 뿐이다. 누가 둘째는 거저 키운다고 했는가. 혹자는 아들에 비해 딸 키우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도 한다. 딸만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아들 키우는 고충을 모르는 것은 사실이나, 딸 키우는 것도 절대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한 고집하는 아이인가 보다 했다. 산부인과에 태아다운 모습으로 초음파로 볼 수 있는 시점부터 이 아이는 거꾸로 방을 차지하고 유유자적했다. 담당의 선생님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있다가 또 돌아눕기도 합니다. 고양이 자세 자주 해주면서 아이한테 똑바로 누우라고 말해보세요.”라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유머를 던지셨다. 첫째 아이를 자연분만으로 순산을 했던 훈장을 지닌 경력 맘인데, 역아로 자리를 잡은 둘째로 인해 제왕절개를 한다는 것은 몹시도 억울한 것이었다. 그래서 배 속에 있는 38주 동안 수도 없이 배를 어루만지면서 인제 그만 돌아눕거라…. 고 말했건만 이 아이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똑바로 눕지를 않았다. 결국, 난 수술대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미의 배에 기어코 칼자국을 만들어놓고 세상으로 나오더니 나온 이후는 더 가관이었다.
일찍 결혼해서 단 한 번의 실수(?)로 계획보다 첫 아이를 빨리 낳고,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되어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을 보내고 나름 내공을 쌓은 채, 3년 후에 마주한 둘째였다. 그런데도 나의 내공은 이 아이의 예민함과 까칠함을 응대하기엔 한없이 부족할 뿐이었다. 좀처럼 누워 자지 않고 수시로 울어대는 아이 때문에 근 1년간을 신랑과 밤에 교대로 서서 불침번을 서야 했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고, 사람이 바뀌어도 신생아 주제에 얼마나 빠르게 파악하고 쇠 긁는 소리처럼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로 울어대는지. 걸음마를 하고 겉보기에는 사람 흉내를 내는 듯했던 시기에도 아이의 떼와 신경질은 날마다 그 횟수가 더해갔다.
본격적으로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한 후부터는 우리 집에서 보스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온 집안의 분위기는 이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왔다 갔다 바뀌곤 했다. 성정이 급하고 예민한 탓에 참고 기다리는 것에는 영 타고나질 못한 아이처럼 굴었다. 아무리 타이르고 훈육을 해도 그때뿐, 같은 상황이 쳇바퀴 돌 듯 계속 반복되곤 했다. 감정이 수시로 변화무쌍한데 그 감정을 스스로 표현하는 것도, 통제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그 감정을 읽어주려고 찬찬히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시도하면 그저 팽 돌아서며 “말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마음속에 참을 인을 수천 번을 되새기며 인고한 시간이 몇 갑절이었는지. 그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이제 초등학생이 된다고 하니 감개무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어이 졸업식 날도 일은 터지고 말았다. 규모가 작은 유치원이라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졸업식을 감행했다. 온 가족이 최고로 예쁜 옷으로 쫙 빼입고 아이가 주문한 큰 꽃다발을 들고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서 졸업식에 도착했다. 방역 수칙에 따라 방명록을 적고 인원 제한을 지킨다고 추운데 밖에서 떨다가 들어가서 드디어 졸업식을 참관했다. 아이들이 준비한 졸업사, 각자의 꿈을 발표하고, 졸업증을 받고, 공연도 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준비한 졸업식을 보고 난 눈시울이 붉어지고 마음 깊이 감동과 뿌듯함에 홀로 감상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와서는 “집에 빨리 가자”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날 입으려고 산 코트와 비싼 가방을 메고, 화려한 꽃다발까지 들고 왔거늘. 사진도 안 찍고 바로 가자고?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겨우겨우 달래서 몇 장 찍었는데, 아빠와는 찍기 싫고 선생님과도 안 찍고 그냥 빨리 가겠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짜증만 낼뿐 그저 가자고 재촉을 했다. 그 감동적인 공간에서 나는 그만 자제심을 잃고 말았다. “너 진짜 도대체 뭐가 문제야?!!! 엄마랑 아빠, 언니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준비해서 왔는데 사진도 제대로 안 찍고 그냥 가겠다고?! 그래 그래 가자! 가!! 집으로 가. 점심도 먹지 말고 집에 가?!!”하며 소리를 빽 지르고 씩씩거리며 졸업식장을 빠져나왔다. 화를 내며 흥분하는 엄마를 보고 아이는 또 지레 겁을 먹고 울기부터 시작했다. 정말 환장의 도가니였다. 옆에서 신랑과 큰 아이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누구를 먼저 달래야 할지 눈빛이 심히 불안해 보였다.
이런 졸업식을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나. 그저 축복과 행복의 말들만 오가고 서로가 부둥켜안으며 감동으로 끝맺음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결국, 차를 타고 신랑의 설득으로 식당 앞까지는 왔다. 식당에서 내려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나에게 아이가 다가오더니 살포시 안겼다. “엄마 죄송해요. 흑흑흑. ” 감정이 어찌나 휙휙 빨리 변하는지 아직 마음을 녹일 준비도 안 돼 있는 내게 또 급히 돌진해온 것이다. 네 장단에 맞춰서 하루에도 이 엄마는 널뛰기를 몇 번을 하는지. 졸업식 총연습부터 졸업식까지 치르느라 아이는 지치고 피곤하고 배고팠다고 말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를 넘어서자 짜증 게이지가 올라갔던 것이다. 아직은 여러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그 그릇이 종지 그릇밖에 안 되는 아이임을 내가 또 망각했다. 지금은 그저 더 품어주고받아주고 이해해줄 때인데 말이다. 유치원 졸업을 한다기에, 이제 다 큰 언니처럼 뚝딱 하고 변하길 기대한 것은 아닌지. 이 예민까칠 아이의 초등생활은 어떻게 펼쳐질는지, 이 엄마에는 액션 호러물이 될 것 같은 무서운 예감이지만 그게 또 제일 짜릿한 장르 아니겠는가. 개봉박두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