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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똑 닮은 아이!

MBTI도 똑같다.

by 세리

큰아이는 학교에서 첫 MBTI 검사를 한 후, 집에 와서 연신 신기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성격을 너무 정확하게 진단해서 나온 것이 놀랍다면서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고 또 봤다. 아이의 MBTI 검사 결과는 INFJ였다.

INFJ, 보통 인프제라고도 부른다. 지구상에 흔하지 않은 성격으로 전체 2%밖에 없다고 하는데 맞는 정보인지는 모르겠다. MBTI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아이에게 '심리학자 카를 융의 성격 이론을 바탕으로 이사벨 마이어스와 캐서린 브릭스라는 모녀 심리학자가 개발한 성격 유형'이라고 정보를 찾아서 알려줬다.


출처: 책, <우리들의 MBTI >


최근에 나도 오랜만에 MBTI를 다시 검사했다. 모든 항목에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편하고 좋았던 것, 진짜 나다운 것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동안 이런 부류의 검사를 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이상형의 모습에 근접한 답을 선택할 때가 있었다. 거짓이었다기보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고자 늘 고군분투하며 살았기에 그 가면이 실제의 나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가면을 벗고 수조 속의 물고기의 움직임을 관찰하듯, 나를 제삼자로 객관화해서 진짜 내 모습을 답으로 했다.


나의 결과도 아이와 같이 INFJ였다. 그동안은 늘 ENFJ가 나왔고, 나 자신도 I보다는 E형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I와 E를 구분하는데 결정적인 것은 내 에너지의 공이 튀어가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살펴보는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이었고, 리더 역할을 주로 맡으면서 나 스스로를 외향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에너지를 얻는 방향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집중할 때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선호하는 편임을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이 마흔이 다돼서야 제대로 나를 알아가고 있는가 보다.





큰아이를 찬찬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 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그런데 역시 아이는 MBTI 결과가 알려주듯이 나와 아주 똑 닮은 아이였다. 나와 닮은 아이를 보는 것은 오묘하고 신비스러우면서도 잔인한 일이기도 했다.


똘똘한 것 같으나 결정적일 때 당당하지 못하고 소심 해지는 것.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인정에 목말라 있는 것. 타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순간에도 비난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것. 모두에게 친절하려고 애쓰는 것. 한 가지에 집중해서 몰입하는 것보단 다양하게 관심이 있지만 제대로 잘하는 것은 없는 것 같은 모습이 내 단점과 같았다.


내가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내 모습을 아이가 보일 때면 미처 방어할 수 없는 미움이 냅다 쳐들어왔다. 나를 닮은 아이를 보는 것은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정면으로 마주 봐야 하는 불편함에 몸서리치게 했다. 결국, 나는 아이의 못난 모습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내 아이를 순수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MBTI를 하고 받은 결과지에는 아이의 성격 유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INFJ는 섬세하고 생각 많은 상상력 대장 유형이에요. 사람들에게 참 따뜻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친구에게 숨겨진 좋은 면, 가능성이나 잠재력을 알아볼 줄 알아요. 때로는 '이런 것도 생각했어?'싶을 정도로 생각이 깊어 어른스럽다는 느낌도 주고는 해요. 또한 조용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해서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는 데 집중해요.


자신의 의견을 단호하게 밀어붙이거나 친구들 요구를 거절하는 것을 어려워해요. 생각이 풍부하고 다양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때가 있어요."



큰아이는 조용하고 확실히 내향적인 아이로 보인다. 여러 친구와 있을 때 먼저 주도해서 말을 하기보다는 친구들 말을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편이다. 집에서 혼자 독서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또한, 사람들을 깊이 관찰하고, 각 사람의 특징을 찾아내는 능력이 놀라울 때가 있다.


그런데 4학년이 됐을 때, 첫 임원 선거를 하는데 자신이 도전하고 싶다고 먼저 손을 들었다고 한다. 집에 와서 자기가 회장 선거에 나갈 거라고 하길래, 친구들 앞에서 공약 발표도 하려면 쑥스러울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떨리지만 연습해서 해볼 거라고 의지를 다잡았다. 그리고 그날 공약으로 내세울 것을 고민하고 스케치북에 자신의 소개할 내용을 적기까지 하면서 몇 번을 연습했다. 그리고 선거 당일날, 10명이 넘게 후보자가 나왔지만 자신처럼 준비해서 온 친구는 하나도 없었고 결국 아이는 거의 몰표를 받으며 회장이 됐다.


회장이 된 후에도 아이는 조용한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은 집에 오더니

"엄마, 친구들이 나 진짜 웃기데요."

"네가 웃기다고? "

"네, 제가 처음에 친구들과 사귀는데 오래 걸리지만, 막상 친해지면 엄청 웃겨요. 애들이 날 그냥 조용하고 모범생으로만 보지만 정말 깬다고 그랬어요. 제가 얼마나 웃긴데요..."라고 했다.


그러다 또 하루는,

"엄마 난 친구들하고 함께 노는 것도 즐겁지만 막상 애들하고 놀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역시 혼자 있는 게 좋아'라는 생각도 들어요."라고 했다. 아이는 내향성과 외향성의 스펙트럼을 수시로 오가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찾아가고 있는 듯 말했다.




MBTI는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한다. 그러나 프리즘을 통과한 빛보다 더 다양한 성격을 무 자르듯이 16개로 정확히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외향성과 내향성, 감각형과 직관형, 사고형과 감정형, 계획성과 즉흥성이 복잡하게 혼재되어 각자 고유의 성격을 만들어 간다.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조화롭게 발현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또 다른 누군가를 투사 시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때가 있다. 그것이 나의 모습일 때도 있고, 신랑, 시댁 어른들, 비호감 지인들, 어릴 적 상처를 줬던 친구들 등 다양한 인물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렇게 투사시켜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보일 때, 그것을 고치는 선생님이나 의사 역할을 자처하려고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인정해주는 것. 그리고 믿어주는 것. 그것이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임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도 자꾸 선을 넘으려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특히나 나와 똑 닮은 아이를 볼 때는 더욱더 강렬하게 부족해 보이는 점을 수리해주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나 스스로도 '이상적인 나'에 도달하지 못해 수없이 좌절하면서도 아이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어리석은 엄마가 되지 않으리라 글을 쓰며 다짐해본다.



아이와 나


다시 아이를 찬찬히 바라봤다. 그 누구도 아이 안에 투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보려고 노력했다. 아이는 분명 나를 똑 닮았지만, 자신만의 분명한 그림을 새하얀 도화지에 선명하게 그려가고 있었다. 이제 막 돋아나는 날개를 열심히 키우며 가파른 절벽 아래로 용기 있게 날아갈 준비를 스스로 하고 있었다.


아이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온전히 믿고 사랑해주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싶다. 먼저는 아이가 날 보듯이, 나도 나 자신을 더욱더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리라.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이토록 많은 나 자신을 조금 더 토닥이고 사랑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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