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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Feb 20. 2022

밥을 오래도록 씹어 먹었다.


"으앗, 어떡해!!"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거실 테이블에서  아이가 영어책을 읽고 있었고, 나는  옆에 앉으려고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잠시 주방에  사이였다.  틈에 작은 아이가 커피를 쳐서 바닥으로 떨어졌고, 하필 바닥에는 내가 아끼는 화이트에 가까운 아이보리색 러그가 깔려 있었다.  러그 위로 스타벅스  머그컵에 잔뜩 담아뒀던 검붉은 커피가 쏟아져서 제멋대로의 형상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엄마, 미안해요. 커피가 있는 줄 모르고..."


상황이 어떤지 파악이 되자마자 나는 갑자기 속에서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마그마가 솟구치듯 감정의 화산이 폭발해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으아앙"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뜬금없이 홀로 새벽에 울음이 터져 나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아이들 앞에서 난데없는 울음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도무지 스스로를 달랠 길이 없었고, 철퍼덕 주저앉아 마냥 어린아이처럼 우는 것을 두 아이 앞에서 할 수가 없어서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왔다. 안방 침대에 걸터앉아서도 한참을 그렇게 꺽꺽대며 울어댔다.


도대체 왜, 뭐가 그렇게 서글퍼서 울었을까? 아끼던 새하얀 러그에 커피를 쏟아서? 그거야 과탄산소다를 넣고 푹푹 빨거나  정 안되면 세탁소에 맡기면 되는 일인데?!  덜렁대는 아이에게 매번 같은 잔소리를 하면서 차분히 주변을 보고 다니라고 했는데 그 말을 또 안 들은 게 화가 나서?! 물론 그랬을 수 있다. 아이와 실랑이하는 것도 지쳤고, 늘 정해진 길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다니는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도 지겨웠다. 그래도 그게 그렇게까지 서럽게 울 일이던가?!


한참을 방에서 울고 나가자 아이들은 정자세로 거실에 앉아 자신들의 할 일을 하고 있었고, 신랑은 내 눈치를 보며 집안일을 주섬주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녁때가 되어 밥을 차렸다. 식탁에 밥을 차리고 앉아서 평소와 다르게 조용히 밥을 먹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식탁 머리에서 주로 하는 골고루 먹어라, 흘리지 말고 먹어라 등의 잔소리를 멈추고 내가 먹는 밥에 집중했다. 그리고 밥을 오래도록 씹었다. 씹고 또 씹으면서 대체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를 거슬러 올라가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나란 사람은 단순한 게 울고 끝, 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간 여러 큰일이 겹쳐 있었다. 좋은 일도 겹경사로 치르면 마음도 몸도 피곤해지는 법일 텐데 근래에 치른 일들은 객관적으로 그리 좋은 일들은 아니었다. 둘째 아이가 급작스레 수술하게 됐고, 수술한 후 아이 실밥도 채 풀지 않았는데 이사까지 계획되어 있었다. 이사라 하면 기분 좋게 가는 이사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텐데 엄밀히 말하면 우리는 후자였다. 아이들도 나도 그리고 신랑도 모두가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옮기는 이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중심을 잡아야 했고, 내 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집 평수가 좁아져서 새로 이사할 곳에 맞춰 꽤 많은 가구를 버리고, 책과 옷을 정리했다. 자발적 미니멀리즘이 아닌 타의로 인한, 억지로 참여하는 식이었다. 그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억지로 참여하는 캠페인이 유쾌할 리 없었다. 애정이 깃든 살림들을 하나씩 처분하면서 그냥 버리기는 아까워 혹여 그 쓸모를 필요로 하는 이가 있을까 싶어서 당근 마켓에 일일이 헐값으로 올렸다. 저마다의 물건에 답이 오는 채팅에 응대하고, 시간에 맞춰 물건을 건네주는 일도 꽤나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그렇게 큰 덩어리들을 정리하고 자잘한 물건들을 일일이 다 꺼내서 쓸모를 구분하고 처분할지 보관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나름 큰 고뇌의 과정이었다. 옆에서 아이들과 신랑이 도와준다고 열심히 거들었지만 결국 내가 혼자 결정해야 하는 살림들이 많았다. 그렇게 낑낑대며 살림의 규모를 절반의 절반으로 줄여서 이사를 왔다. 그사이에 벌려 놓은 공부도 마무리해야 했고, 아이 수술 경과를 보러 주에 두 번씩 대학 방원에 방문했다.


힘들다고 말하기 싫었다. 버겁다고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주변에서 사정을 아는 이들이 여러모로 힘들겠다고 위로했지만 그 위로조차 부담스러웠고, 그저 혼자 씩씩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험난해 보이는 산등성이들이었지만 하나씩  힘차게 밟고 딛으며 넘어갔다. 하나의 산을 넘고 또 하나의 산을 넘어서 끝끝내 고지가 눈앞에 보인 순간이었다. 집 정리가 거의 마무리됐고, 거실에 내가 좋아하는 하얀 러그를 까는 것으로 골든벨을 울렸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여유롭게 거실 의자에 앉아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같이 봐주면 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점에 아이가 커피를 러그에 쏟아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괜찮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진 순간이었다. 난 계속 울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고, 그 타이밍을 찾지 못한 채 낑낑대며 산을 하나씩 넘어왔는데 드디어 터뜨릴 공간을 발견해냈던 것이다.


오래도록 밥을 씹었다. 씹고 또 씹으면서, 입안에서 으깨지고 부서지고 또 섞이면서 의도된 맛이 아닌 본디 날것의 맛이 느껴지도록. 지금은 이 씹는 거룩한 행위에 다른 어떤 불순물도 섞이면 안 된다는 결연한 마음마저 들었다.


생각이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 밥을 오래도록 씹어먹는 것부터 하게 된다. 위아래 이를 쉬지 않고 움직이며 입 속에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짓이기면서 나는 복잡한 상념들을 하나씩 깨부수었다. 울음을 터뜨린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해야만 했던 순간이었고, 그 기회를 놓쳤으면 더 큰 일 날 뻔했던 걸 아이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또 밥을 씹었다. 그러자 허기졌던 마음에 오래 씹은 밥으로 점점 포만감이 채워졌다.


내 곁에는 오래도록 밥을 먹는 나를 그저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여섯 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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