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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Jan 24. 2022

아빠에게 건네었던 책, 거기서 발견한 것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친정에 갈 때마다 결혼 전에 사뒀던 책들을 한 번씩 쭉 보게 된다. 신혼집이 작았던 지라 내가 갖고 있던 책들은 대부분 친정 책장에 그대로 두고 갔어야 했다. 그 뒤로도 모조리 옮기진 못했고, 틈틈이 끌리는 책들만 몇 권씩 집어 갖고 오곤 한다. 지난번에 갔을 때 그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던 책 하나가 초점에 잡혔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언제 이런 책을 샀었던가 싶었다. 그날따라 용기를 주는 한마디가 무엇인지 궁금했는지 두터운 책을 들고 와서 무심코 거실 책상에 그대로 꽂아두었다. 그리고 한참을 그 존재를 잊고 살았다. 여러 북클럽에서 읽어야 하는 책, 매일 읽는 원서, 그리고 개인 취향으로 틈틈이 읽는 책들까지 이미 하루에 읽어야 할 책 분량이 분에 넘쳤다.



그러다 오늘, 책장에 먼지를 닦다가 지난번 친정에서 집어온 책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대체 이 책에 왜 이리도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이상하다 싶어서 책을 꺼내 책 안쪽을 처음부터 쭉 훑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꽂혀 있던 뭔가가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화상품권 봉투에 낯익은 필체. 바로 아빠가 쓴 글이었다. 아빠 필체를 보는 순간 이 책이 바로 내가 아빠에게 건네었던 책이란 것이 기억이 났다. 아빠가 늘 누워 있었던 그 시절에 아빠 옆에 늘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바로 그 책이어서 그토록 낯이 익었던 거였다.



아마 그날도 아빠에게 악다구니를 된통 쏟아낸 날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혼자 밖으로 나와서 하염없이 걷다가 눈에 보이는 서점에 들어갔고, 당시 베스트셀러 자리에 있었던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박혔다.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진짜 용기가 되어주는 한마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고, 그런 한마디가 있다면 세상에 힘들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하는 반발심마저 들게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책이 사고 싶었다. 책을 사들고 나와서 느지막하게 집에 들어가서 아빠 방에 슬그머니 놓고 왔었다. 아무 말도 없이 그 어둠의 방에 버리듯 던져놓았었다. 내 입으로 할 수 없던 말을 이 두꺼운 책이 대신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려나.



그 뒤로 아빠는 편의점에 갈 때도 이 책을 들고 갔고, 집에서 누워있을 때도 옆에 늘 이 책을 두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가게를 보면서 책을 읽으며 그 안의 내용 중에 일부분을 문화상품권 봉투에 필사하셨던 것 같다.



책 안에서 툭 떨어진 봉투에 적힌 내용은 터키인들이 커피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아빠가 커피를 좋아하셨던가. 생각해 보니 편의점에  때마다 즉석에서 물을 부어 먹을  있는 드립 커피를 종류대로 먹어보고 그중 하나가 제일 맛있다고 추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편의점을 지키면서  입맛에 맞는 커피나 쿠키를 발견하고선 먹을  아주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꼈던 것도 기억이 났다. 또 그리움에 젖는다.


당시  아빠가 용기를 얻은 한 마디를 이 책에서 찾아내셨을지는 모르겠다. 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커피에 관해 터키인들이 정의 내린 그 문구가 가장 마음에 드셨을지도.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돌아온 이 책. 억지스러운 제목을 지니고 있는 이 책에 여전히 반발심이 나지막하게 남아 있지만 아빠의 손길로 얼룩져있는 이 책에 애정이 생겼다. 아빠가 다시 내게 건네어준 것은 아닌지. 커피 한 잔과 함께 읽어볼 참이다. 혹시나 나에게는 용기가 되는 보물 같은 한 마디가 이 안에 숨겨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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