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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Apr 07. 2022

글을 쓰고 지우는 일

'발행'을 누를 수 있는 용기

매일같이 무언가를 쓴다. 나에게 쓰는 행위는 반복적으로 화장실에 드나드는 것만큼 당연하고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도무지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는 날도 있지만 일단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으면 손길을 따라 글의 흔적이 남겨지곤 한다. 그리하여 브런치의 작가의 서랍에도, 구글 keep 노트에도, 에버노트에도 끝맺지 못하고 무작정 쓰기 시작해서 우악스럽게 쏟아 놓은 글들이 잔뜩이다.


막상 제대로 된 글을 완성하고 싶어서 그동안 써놓은 글들을 차례로 읽어보면 도무지 글이라고 할 수 없는 메모들의 집합소라는 것을 깨닫곤 절망하는 나날이 반복된다. 좋은 글들을 더 많이 읽을수록 볼품없는 내 글의 모양새에 나는 자꾸 쪼그라든다. 그쯤 되면 지워야 하는 글들인데도  난 내 몸에 솟아난 종기를 쉽게 짜내지 못하듯 쉽사리 지우지 못한다. 이 조악하고 경멸스러운 글들도 제빛을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만의 아집일 것이다. 그러다 문득, 잔뜩 모아놓은 글 모음과 내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참 비슷하구나 싶었다.


집에 홀로 머무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지만, 어느 날 문득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거부할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든다. 그럴 때면 핸드폰 속에 저장된 연락처 이름을 쭉 스크롤 해서 내려본다. 이름만 들어도 추억이 절로 떠오르는 그리운 이들도 있지만 도무지 어떤 인연으로 내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인지 알지 못하는 이름도 많다. 그런 곤란함을 벗어나고자 아이 친구 엄마들 이름 옆에는 아이 이름과 사는 아파트까지 줄줄이 저장해놓곤 했다. 몇백 개의 이름이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있지만, 막상 그 누구에게도 쉽게 당장 만날 수 있느냐고 묻지 못하고 핸드폰을 내려놓곤 한다. 그렇게 나와 살아있는 현재의 관계가 되지 못할 이들이라면 연락처에서 지워도 무방할 인연일 터인데 나는 그 이름을 쉽사리 지우지 못한다. 마치 서랍 속에 꾸역꾸역 저장해놓은 미완성의 글들을 지우지 못하는 것처럼 미련스럽다.


쉽게 쓴다고 했지만 사실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그 행위에 온전히 몰두해야 가능한 것이다. 글쓰기는 그 자체로 거룩하고 완전한 행위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연락처를 공유하는 그 순간에도 난 그 사람과 앞으로의 관계를 온 맘 다해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막상 쓴 글을 읽어보면 부끄럽고 창피하기 일쑤인 것처럼, 수없이 스쳐 지나온 많은 인연 중에 진실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은 몇 되지 않는다. 심지어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편하게 통화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이들은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않는 것을 깨닫곤 내가 그간 잘 살아온 것인지를 자문할 때가 무시로다.


이제는 내가 쓴 글에 미련을 두지 않고 그것이 완성되지 못할 글이라면 단호한 마음으로 지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쓰는 것보다 지우는 일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지우는 용기가 있어야 남겨둔 것을 더 정교하고 세심하게 살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이기에. 연락처를 보며 안부를 건네지 못할, 부유하는 이름들은 단호히 삭제 버튼을 누를 용기를 내보고 싶은 하루다. 더불어 그리운 이들에게는 잘 지내느냐고, 건강하냐고 먼저 묻는 다정한 용기를 내보리라, 지금 이 글을 발행하는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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