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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Dec 22. 2021

집 냄새의 실체

그 사람의 향을 그리워하며…

아침에 눈을 떴음에도 희뿌연 시야로 덮이며 다가올 하루가 벅차게 느껴지면 아이 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이불을 다 걷어내고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아이 곁에 살포시 눕는다. 그리고 아이의 웃옷을 슬며시 올려 그 오목한 배 위에 내 코를 묻는다. 근육이란 한 줌도 없는 듯 폭신하게 꺼지는 부드러운 살결은 아이의 내음을 순전히 뿜어낸다. 콩콩 거리며 뛰는 작은 심장소리와 함께 아이의 살 내음을 맡고 있으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살아낼 수 있을 거란 용기가 내 깊은 곳에서 불쑥 솟아난다. 그 내음이 좋아 아침마다 몰래 아이 옆으로 기어들어간다. 그 냄새, 아이에게서 풍기는 그 향은 대체 어느 샘에서 길어 흘러나오는 것일까.




친구네 집에 가면 바로 콧속으로 훅 들어오는 냄새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친구네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각기 집에서 풍기는 그 향이 달랐다. 어떤 집은 바로 직전 식사에서 먹은 메뉴에 따라 음식의 강력함이 집의 구석구석을 뒤엎은 듯 풍겨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청국장류의 강렬한 음식이 아니라면 곧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그 집의 본연의 냄새가 그 레이어를 뚫고 나왔다. 그렇게 친구네 집 냄새를 잔뜩 맡고 거리를 돌아 집으로 오면서 우리 집 냄새가 간절히 그리웠는데, 막상 우리 집으로 들어오면 그 어떤 향도 맡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 집에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무색무취의 개성 없는 집이라 생각되어 그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냄새가 났던  친구네 집은 반지하였다. 분명 친구네 집으로 들어갈 때는 1층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들어가서 보면 반대편 창문 위로 길이 올라서 있었고,  길로 다니는 각색의 사람들 다리만 적나라하게 보였다.  친구네 집에 들어서면 바로 빨래 건조대가 보였다. 다세대 주택 반지하에 살기도 했고, 당시에 빨래를   있는 베란다나 마당이 없었으니 빨래 건조대는 거실에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친구네는 딸만 셋인  부잣집이었으니 매일 쏟아지는 빨래 양이 어마 무시했을 . 처음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을 때는 현관문을 열기 전에 잠시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 잠시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뭔가 후다닥 치운 흔적이 보였고,  첫날에만 빨래 건조대를   없었다. 이후 무시로 친구네 집에  때는 친구도  이상 빨래 건조대를 안방에 욱여넣는 수고를 하지 않았고, 나는 날것 그대로의 친구네를 수시로 감상했다. 그저 그곳에 빨래 건조대가 있는 것이 당연했을 뿐이다.



우리 집이 무취를 지닌 집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 원인이 거실에 두지 않은 빨래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널따란 베란다가 있어 빨래를 밖에 널 수 있었음에도 굳이 건조대를 거실 안으로 들고 들어왔다. 잠시 빨래 향이 풍기는 듯했지만, 외출했다 다시 돌아와도 우리 집 냄새는 아무런 향도 덧입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엄마가 빨래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당시 빨래는 세탁기가 하는 것만 알았지, 엄마가 빨래를 할 때 그 안에 무엇을 넣는지는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은 무심한 여고생이었다. 엄마는 빨래를 할 때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넣는 거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세제와 섬유 유연제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추적했다. 그래, 섬유 유연제의 냄새가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한테 너네 집에서 쓰는 섬유 유연제가 무엇인지 창피함을 불구하고 물어봤다.(그때는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 왠지 창피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자기네 집은 섬유 유연제를 쓰지 않는다고 했단다. 이럴 수가. 그럼 대체 너희 집에서 나는 그 매혹적인 향은 어디에서 풍기는 것이란 말이냐.  




그렇게 냄새의 출처를 찾던 나는 미궁에 빠진 채 또 다른 것에 관심을 뺏겨 한참을 보냈다. 그리고 그 후 언젠가, 다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친구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와, 너네 집에서 네 냄새가 난다”라고 했다. 그 친구 말에 나는 다시 ‘냄새’에 꽂히고 말았다. 친구는 우리 집 냄새가 있다고 했고, 그 냄새는 나한테서 나는 향과 같고, 심지어 좋기까지 하다고 말해줬다. 생각해 보니 향이 좋았던 친구네 집 냄새도 먼저는 그 친구한테서 맡았던 향이었다. “진짜? 우리 집에도 냄새가 나? 난 우리 집에 냄새가 안 나는 것 같았거든.” 그러자 친구는 “원래 자기 집 냄새는 못 맡지 않아? 네가 그 냄새 안에 있으니 집 냄새가 그 집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안 나는 듯.”  


그때 알았다. 그 집에서 풍기는 고유의 냄새는 빨래에서 풍기는 섬유 유연제에서 나는 것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향이라는 것을.




난 그 친구네 집에서 풍기는 그 향이 몹시도 좋아서 친구가 둘째 언니와 함께 쓰는 방에 들어가면 이불이나 옷가지 주변에서 킁킁거리곤 했다. 맏이였던 나와 다르게 그녀는 딸만 셋인 집의 막내딸이었다. 막내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리고 간다는 옛말에 그 친구를 보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쓸데없이 진지하고 우중충했던 기운이 가득했던 나와 달리 그녀의 주변은 총천연색의 무지갯빛이 늘 영롱하게 피어났다. 그녀의 긍정 에너지는 나의 무거움을 중화시켜줬고, 나는 해바라기처럼 그녀 주변을 늘 맴돌곤 했다.


대학생 언니 둘을 지켜보면서 그녀는 수험생 막바지에 “나는 대학에 가지 않을 거야”라고 선언했다. 대학에 가지 않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무척 놀랐고, 그녀의 대범함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왜 대학에 가지 않겠냐고 묻는 질문에 “언니들 보니깐 대학 가면 돈만 많이 들고, 좋은 대학 아니면 취업할 때 도움도 안 되는 것 같더라. 나도 어차피 좋은 대학 가긴 글렀고… 그냥 바로 취업해서 돈 벌다가 다른 길을 찾아봐야지.”라고 했다. 그녀는 나와 수능을 함께 봤지만, 진짜로 대학에 지원서도 내지 않은 채, 당시 유명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다가 몇 년 후에 정식 직원이 됐다. 그 친구 덕분에 패밀리 레스토랑을 처음 가봤다. 그곳에서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손님들에게 그녀의 무지갯빛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어디에 있든 그녀의 향기는 주변 사람들에게 퍼졌고, 그 향에 취한 사람들은 그녀 덕분에 행복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신랑한테서 나는 살 냄새가 시댁에서도 풍기는 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신랑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내 살에도 냄새가 있어?”

“응, 있지.”

“그 냄새 어때?”

“좋지.”


무슨 향인지 자세하게 설명해달라고 해도 신랑의 제한적인 언어로 설명하기론 그저 “그냥 좋은 냄새야.”라고만 할 뿐이었다. 한동안 내 몸에서 나는 향에 집착해서 비싼 향수를 사서 모은 적도 있다. 그 향수를 계속 뿌리면 그 향이 내 살 냄새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같은 바디클렌저로 샤워를 해도  본가의 냄새가 흘러나왔던 신랑처럼 결국 나도 나의 냄새를 풍길 것임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나는 자주 아이들 몸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다. 내 몸에서 나온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덧입혀준 고유의 향이 묻어있기에 자주 킁킁거려본다. 신랑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아이의 뽈록한 뱃속에 코를 박고 맡는 향은 ‘그저 좋다’는 문장 하나로 묘사될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이 우리 집에서 고유의 방식으로 흐르다 어딘가에 머물러 향기를 머금고 그곳에 머무는 이들에게 알맞은 농도의 향을 만들어 입혀주는 것일까.


지금도 나는 다른 집을 방문할 때마다 그 집에서 나는 냄새에 먼저 매료된다. 이 향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만들어졌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에게 그 향긋한 향을 알게 해 준 친구를 떠올린다. 지금도 자신의 향을 그 어떤 매혹적인 향수보다 강력하게 풍기고 있을 그녀가 그립다. 더불어 우리 집에 오는 이들이 맡는 냄새가 좋은 향이기를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 이 집에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따뜻하고 매력 있는 향이 풍겨지기를. 그렇게 우리만의 향기가 널리 퍼져 누군가에게 그리움과 사랑으로 기억될 수 있기를.


내 사랑, 두 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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