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스는 포기 못해!!

2021년을 보내며…

by 세리

친구와 놀이터에서 놀던 둘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우앙!!!!!!!!”하고 한껏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옆에서 함께 놀아주던 아이 친구의 아빠가 전화를 대신 받았다.


“아이가 놀다가 넘어졌어요. 넘어지면서 한쪽 팔로 디뎠는데 그 팔이 너무 아프다고 하네요.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는 온 얼굴로 아픔을 표현하며 다른 팔로 왼쪽 팔꿈치를 움켜 들고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너무 아프다고, 좀처럼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프다고 했다. 옆에서 아이를 지켜봤던 지인은 “심하게 넘어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아프다고 하니 어서 응급실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서둘러 아이 아빠와 함께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코로나로 인해 응급실 안은 보호자 한 명만 동행할 수 있었고, 신랑과 큰아이는 응급실 밖에서 대기하고 아픈 아이만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급실을 떠올릴 때마다 하염없이 방치되어 기다렸던 어두운 기억만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건지, 코로나 덕분에 주말 응급실은 한산해 보였다. 길게 대기하지 않고, 당직 선생님은 아이를 보러 왔고 아이 팔 이곳저곳을 눌러봤다. 아이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또랑또랑하게 잘도 대답했다.


“네, 거기가 너무 아파요.”

“아뇨, 거기는 안 아픈데요”

“네, 정말 아파서 팔을 펼 수가 없어요.”

“그쪽 손은 안 아픈데요. 여기가 너무 아파요.”


흡사 면접을 보는 학생처럼 의사 선생님이 질문하는 것에 자신의 아픔과 의견을 정확히 전달했다. 선생님은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많이 아프구나. 그럼 사진을 찍어보자.” 하셨다.


병원에 오면서 차 안에서 진정된 아이를 보면서 내심 골절은 아니겠거니 했다. 골절이라면 그 아픔의 강도가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경험상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상황은 항상 예측 불가능하니 엑스레이를 찍어보는 것이 옳았다. 그리고 그 결과도 그리 길게 기다리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사진상으로는 골절이나 금이 간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매우 아프다고 하고, 팔꿈치 안쪽은 사진으로 잘 안보이기도 하니 오늘은 붕대로 반깁스를 하고 내일에나 모레쯤 외래 진료를 다시 보러 오는 게 좋겠습니다. 씻을 때 붕대는 풀었다가 어머님이 다시 감아주시면 돼요. 오늘 지나서 아프지 않으면 굳이 안 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렇게 아이는 처치실에 가서 깁스를 했다.

팔꿈치가 아픈 아이는 팔을 ㄴ 모양으로 만든 채 팔뚝 끝부터 손가락 마지막 마디만 남기고 붕대로 감고, 지지대를 얹어 깁스를 했다. 깁스를 다 하고 목에 팔 지지대까지 한 모양새로는 아이 팔이 심하게 다친 것처럼 보였다. 사진을 찍어 걱정하고 있을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다들 그렇게 심각하게 다친 거였냐고 물었다. 보이는 거로 판단하지 말라고 안심하라 했다.



깁스를 한 후,



그렇게 귀가를 하고, 다음날 학교에 가야 했기에 나는 아이에게 “내일은 학교 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고 했다. 펜더믹 시기에 굳이 아픈 팔을 끌고 학교에 갈 당위성은 없었다. 본인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기에 당연히 그러겠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야!! 나 학교 꼭 갈 거야!!”라고 했다. 자신은 학교가 너무 재미있어서 꼭 가야겠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결국, 옆에서 듣던 큰아이가 아이의 가방을 교실까지 들어주겠다고 해서 학교에는 가는 것으로 했다.


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친구들이 자신이 깁스한 것을 보고 모여들어 구경했다며 신나게 말했다. 친구가 급식도 대신 받아주고, 책가방 챙기는 것은 또 다른 친구가 도와줬다면서. 그러면서 여전히 팔이 너무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그런데 씻기 위해 깁스붕대를 잠시 풀고 있는 동안 아이는 멀쩡하게 다친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 팔 아픈 거야? 안 아프면 굳이 붕대 다시 안 감아도 되는데…”


“아냐!! 엄청 아파. 내일도 모레도 계속 붕대하고 갈 거야.. 이번 주 금요일까지는 꼭 깁스하고 갈 거야!”


결국, 아이는 4일 연속으로 아침마다 붕대를 다시 팔에 감으며 깁스 상태를 유지했다. 저녁에 깁스를 풀고 놀 때는 멀쩡해 보이는 팔이 아침만 되면 다시 너무 아프다고 어서 붕대를 감아달라고 했다.


나흘째 날 아침, 아이 언니가 결국 터뜨리고 말았다.

“너 팔 괜찮은 것 같은데, 네가 가방 메고 가! 들어주는 거 힘들거든!!”

아침마다 자신의 가방도 무거운데 동생 가방까지 들고 갔으니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들어준다고 해도 아이는 굳이 언니가 들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언니가 가방을 들고 교실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좋았던 모양이다.


아이가 고집을 꺾지 않아서 결국 언니가 가방을 들어주며 또다시 깁스를 한 채 학교에 갔다. 점심시간이 지나갈 무렵 학교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이 손이 보라색으로 변했어요! 아무래도 피가 안 통하는 것 같은데.. 어쩌죠!!”

“어머, 선생님 어서 붕대 풀어주세요!”

“이거 그냥 풀어도 되나요?”

“네네. 제가 다시 해준 거라 그냥 풀어주셔도 돼요..”


하교하고 집에 온 아이에게 무슨 일이었는지 물었다.


“엄마, 학교에 갔는데 손이 점점 보라색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핸드크림을 막 짜서 계속 바르고 문질렀거든. 그런데도 계속 보라색이라서 보건실에 가서 말했거든.”


“선생님이 뭐라셨어?”


“그게, 병원에서 해준 거는 선생님이 풀 수 없다고 했어.”


“뭐라고? 그거 엄마가 다시 해준 거라고 풀어달라고 하지 그랬어!!”


“아… 그래도 깁스 풀기 싫었단 말이야! “


아침에 아이와 깁스로 실랑이를 벌이며 아프지 않으면 굳이 하고 가지 말랬는데 아이는 꼭 깁스를 다시 하겠다고 우겨서 홧김에 붕대를 너무 세게 감아줬었나 보다. 피가 통하지 않아서 불편했을 텐데 깁스를 풀기 싫어서 핸드크림까지 동원해봤지만,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아이의 설명에 너무 어이가 없어 그저 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깁스를 풀기 싫었어?”


“응, 어떻게 한 건데, 절대 포기할 수 없지!! 나 내일까지 깁스할 거다!! 그리고 난 진짜로 아직도 엄청 아프단 말이야!!”


결국 아이는 꼬박 일주일을 깁스를 제대로 하고 등교했다. 금요일에 학교에 다녀와서는 이제 다 나은 것 같다면서 붕대를 풀고 사방으로 팔을 흔들면서 자유롭게 활보했다. 온 동네가 요란하게 충분히 아파했던 시간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누가 뭐라 해도 충분히 아파하고, 적극적으로 아프다고 표현하는 아이를 보면서 황당하면서도 그 솔직함에 또다시 반하고 말았다.


더 아프다고 하면 나약한 것 같아서, 약한 척한다고 수군거릴 주변을 의식해서 애써 태연한 척하며 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겉으로 다 나은 듯 보여도 쉽사리 붕대를 풀어서는 안 되는 상처가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이 필요한 일에도 너무 서둘리 봉합하고 괜찮다고 해버리는 일에 익숙하다. 어른이라면 응당 그리해야 한다고, 굳이 그렇게 힘들다고 표현하는 것은 성숙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자연스레 배워왔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서둘러 봉합한 상처들이 다시 덧나고 더 크게 아팠던 적이 많다. 무엇보다 그것에 충분히 아파하지 못했다는 것에 훗날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다시 그 상처를 치료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남몰래 혼자 끙끙대던 날이 얼마나 많았던지.


자기가 어디가 아픈지, 얼마만큼 아픈지, 언제까지 아플 것인지까지 정확히 표현하는 아이를 보면서 아픔을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펜더믹으로 모두가 정상으로 살 수 없는 요즘, 어딘가 아프고 괜스레 피로해지는 이 시기를 충분히 애통해하면서 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엄살로 느껴진다고 해도 정말로 힘들었다고, 너무 지친 시간들이었다고 아픔을 토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힘든 시기를 잘 지내왔다고, 그 정도면 충분히 잘 살아왔던 한해였다고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2021년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싶다. 새로운 해의 당찬 계획은 그다음에 세워도 늦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붕대를 감아줄 시간을 갖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싶다. 아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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