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손에 그 요물스러운 것이 자리 잡은 것이 언제였을까. 손가락에 아주 작은 상처에도 요란을 떨며 아파하는 아이였기에 그 작은 것이 손바닥에 처음 정체를 드러냈을 때도 분명 아이는 내게 말했었다.
나는 아이 손바닥 위에 수포처럼 올라온 그것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얼굴에 불청객으로 찾아든 뾰루지를 반기지 않고 그대로 둬야만 제풀에 꺾여 스스로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이 손바닥에 생긴 것도 그러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뾰루지처럼 쉽사리 자신의 영역을 뺏기지 않았고 점점 더 흉물스럽게 자신의 범위를 확대해갔다. 엄마가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자 아이도 그렇게 여기고자 했지만기어코 그것은 아이에게 불편한 이물감을 안겨줬고, 불현듯 스치면 ‘윽’ 할 정도의 고통마저 안겨줬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동네 피부과에 가서 여드름을 짜듯 시원하게 제거하자 싶었다.
“음.. 이건 제가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요. 어서 대학병원 성형외과로 가서 정밀 검사를 받고 제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네 피부과 의사는 아이 손에 올라온 종기를 한참 동안 기계로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피부과에 거창하게 자리 잡고 있는 레이저 기계 중 하나로 제거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니. 요즘 피부과나 성형외과는 그저 미용 시술에만 열을 올린다더니 이 병원도 귀찮은 시술은 하고 싶지 않아 미루는 것인가 보다 했다. 그럼에도 의사의 한 마디는 사람의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강력한 효과가 있었고, 서둘러 세브란스 성형외과에 예약했다.
둘째 아이와 대학병원 나들이는 익숙했다. 작년 초에 아이는 중이염으로 내내 고생을 하다가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튜브(환기관) 삽입술을 권해서 대학병원에 와서 정밀 검사를 했었고, 결국 전신 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을 한 적이 있다. 흔한 감기도 잘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커 줬던 큰아이에게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지만 전신 마취를 하고 홀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는 것은 부모로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씩씩하게 잘 해냈고, 이후로도 경과를 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학 병원에 오고 있었다. 그 병원을 다시 또 갔던 것이다. 이번에는 성형외과로.
“일단 초음파를 찍고 필요하다면 MRI를 찍어봐야겠지만 제거를 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종양이기에 어떤 종류인지는 제거를 하고 조직 검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고요. 외관으로 볼 때는 악성으로 보이지 않지만 아주 드물게 악성 종양으로 나오면 추가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어려서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해야 하고요. 수술은 간단히 20분 내로 끝나니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대학병원에서도 여드름을 제거하듯 아이 손에 찾아온 불청객을 쉽사리 짜서 없앨 수는 없다고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또 수술대에 올라서 제거를 해야 하는 수술이라니. 아이 손바닥을 보고 또 봐도 그렇게 심각해 보이지 않는 작은 혹 하나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단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대학병원에서 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검사를 필요로 한다. 피검사, 소변 검사, 엑스레이 촬영, 마취 교육, 그리고 코로나 검사까지. 귀 수술을 할 때도 경험해봤지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논스톱으로 하루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친절하지 않은 대학병원에서는 그렇게 환자를 배려해서 하루에 다 할 수 있게 예약을 잡아주지도 않았고, 그 많은 검사를 아이가 한 번에 소화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수술 전에 4번은 더 방문해야 했고, 구정이 지나서 수술하기로 날짜를 잡았다. 모든 스케줄을 간호사 선생님과 결정하고, 드디어 2층 진료실에서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외래 진료와 초음파 검사로 그날만 해도 1층과 2층을 에스컬레이터로 몇 차례 오고 간 후였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았음에도 병원만 오면 쉽사리 지치는 이상한 기류에 휩싸여 나는 진이 빠졌고, 서둘러 커피 수혈이 필요했기에 아이 손을 잡고 1층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아이와 2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카페로 향하는 중이었다.
“엄마, 여기 꼭 공항 같지 않아?”
“공항?”
“응. 잘 봐봐. 에스컬레이터 타고 내려가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 앉아있는 의자도 자세히 보면 공항 의자랑 똑같아. 엄마가 커피 마시는 카페도 공항에도 있는 거잖아. 왠지 신난다. 꼭 비행기 타러 가는 것 같아.”
아이 말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1층 병원 풍광을 다시 봤다. 깨끗하고 하얀 실내에 곳곳에 대기할 수 있도록 설치된 의자, 예약과 수납을 위해 직원들이 일렬로 쭉 앉아서 환자들을 맞이하고 있는 원무과, 코로나로 인해 Qr 인증을 위해 설치된 기계들, 그곳을 통과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안내하는 직원들, 곳곳에 오랜 대기를 위해 앉아서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자연스레 위치한 스타벅스와 그 옆으로 환자들을 위한 쉼터 공간. 진짜 얼핏 보면 딱 공항의 모습과 같았다.
아이가 어릴 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낯선 경험이라 생각해서 여행을 자주 다니려고 노력한다. 차를 타고 가까운 곳으로도 왕왕 다니지만, 코로나 전에는 해외여행도 일 년에 한 번은 꼭 가려고 했고, 코로나 이후에는 목적지를 제주로 바꿔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을 아이들과 누렸다. 그것은 아이들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일 년 중 가장 설레는 이벤트가 됐다.
익숙한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미지의 낯선 공간으로 넘어가는 그 설렘을 가장 먼저 느끼게 해주는 곳이 공항 아니던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 공항에 가면 어쩔 수 없이 긴 수속 과정과 지루한 기다림이 기다리고 있지만, 아이들은 그마저도 즐거워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가 통 크게 사주는 스타벅스 음료와 간식을 먹으면서 야무지게 자기만의 가방에 싸 들고 온 책과 그림 그리기 도구를 꺼내 공항 의자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내는 지혜를 알기도 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공항이 대학병원에서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희서는 수술하는 거 무섭지 않아?”
“당연히 무섭지. 그래도 걱정은 안 돼. 수술하러 들어갈 때 간호사 언니가 만화도 보여줬고 계속 손도 잡아줬어. 그리고 수술 끝나면 엄마 아빠랑 우리끼리만 맛있는 거 먹기도 했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지? 아빠가 나 수술하는 날 휴가 낼 수 있을까?”
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씩씩하게 앞으로 일어날 자신의 수술 일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받아들이고 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 일어날 일을 도리어 설렘으로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여행을 떠나 설렘의 최대치를 안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어느 곳보다 정갈하고 모던하게 꾸며진 병원이지만 그래 봤자 병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음습하고 피로한 공간. 병원에 들어선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다 어둡고, 예약을 하고 왔음에도 만성적으로 늘어지는 진료에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짜증과 고단함이 역력하다. 무엇보다 병원 내에서 일어날 일을 알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뿜어지는 두려움들이 있다. 그 두려움은 죽음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생과 죽음은 한 선으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게 중심을 한쪽에만 일방적으로 두고 살아가지 않던가. 그러다 비로소 큰 병원에 들어설 때 우리 삶과 본디 연결되어 있던 ‘죽음’을 깨닫게 된다. 나와 상관없는 귀찮은 것으로 치부해 저 멀리 던져 놓았던 것이 의뭉스럽게 내 옆에 딱 붙어서 그동안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찰거머리처럼 눌어붙어있는 그 죽음은 아무리 떼 보려고 발버둥 쳐도 좀처럼 뗄 수 없는 삶의 또 다른 한 면이라는 것을 병원에 와서야 깨닫는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병원이 아이에게는 공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공간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직 죽음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순진한 천성 덕택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병원이라는 곳이 진정 공항처럼 다른 세계로 연결해주는 중간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병원에서 새로운 삶을 덤으로 얻는 기쁨을 누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모두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문을 여는 것이 두려울 수 있지만, 그저 공항을 통과하듯 가뿐하게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일 테지.
아이의 수술도 비행기를 타면서 하늘을 날아가며 잠든 순간에 순식간에 끝날 것이다. 비행기에 내려 우리가 기대했던 멋진 그곳에 도착하겠지. 공항에서는 지난한 수속 과정도 설레는 여행의 일부로 바뀌는 것처럼, 나는 병원에서 저 너머의 세계를 기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