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선물
얼마 전 큰아이가 12살 생일을 맞았다. 그맘때 여자애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에 큰 관심이 없는 아이인지라 원하는 생일 선물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나온 답도 역시나 엉뚱했다. 자기는 갖고 싶은 선물은 없고, 그저 할머니와 단둘이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말한 할머니는 나의 엄마, 즉 아이의 외할머니다.
큰아이의 할머니 사랑은 유별나다. 가까이 계시기에 자주 할머니를 만나면서도 아이는 할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서러워하곤 했다. 그러더니 결국 이번에도 생일날 받고 싶은 선물이 할머니와 둘만 보내는 것이라니. 분명 사랑받는 할머니였다. 소식을 들은 친정엄마도 몹시나 반기셨다. 당신이랑 있는 것이 뭐 재밌겠냐고 걱정하면서도 아이가 꼭 할머니랑 있고 싶다고 했다 하니 목소리가 상기되면서 "그리 할머니를 좋아해 주니 그저 고맙지"라고 하셨다.
최근에 읽은 소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가 떠올랐다. 책 제목의 시선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타인의 시선(視線)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심시선. 현재는 죽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녀로부터 뻗어 나온 자손들은 여전히 시선을 추억하며 그리워한다.
시선은 살아있을 때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만한 말들을 수시로 던졌다. 그녀는 ‘말’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살아온 족적들로 인해 이미 한국 사회에서 화제의 인물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그녀를 제외한 가족들이 몰살됐고, 그녀는 하와이로 도주하듯 이주했다. 힘겨운 노동으로 하루씩을 연명해야 했던 그녀는 우연히 유명한 화가를 만나 그저 배울 수 있다는 말에 그를 따라 독일로 갔고, 그곳에서 정신적 가학을 버티다가 다른 남자를 만나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결국 자연스레 흐르는 물처럼 고국으로 돌아와 글 쓰는 작가로 살았다.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던 여류 예술가. 그녀는 당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고, 그녀는 그 시선을 넘어 시대를 앞서가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시선이 주장한 파격적인 말 중에서 가장 컸던 것은 ‘제사를 없애야 한다’라는 것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죽으면서 자식들에게 자신을 위한 제사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10년 동안 어머니의 유언을 받들어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큰딸이 갑작스레 다른 가족들에게 십 주기에는 하와이에서 시선의 제사를 지내겠다고 선언한다.
제사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책, <시선으로부터> p83
큰딸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모두가 반겼고, 그로부터 각자는 시선과 연결된 자신들만의 추억을 반추하며 하와이에서 그녀에게 주고 싶은 특별한 것을 찾기 시작한다.
할머니에게 수시로 애정표현을 하고, 할머니와 단둘이 있고 싶다고 딸을 보면서 소설 속 시선의 손녀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파격적으로 페미니즘의 행보를 걸었다면 걸었다고 할 수 있는 시선은 손녀들에게도 특별한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10년이 지났음에도 손녀들은 각자 생전에 할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거나 할머니가 남긴 책들을 읽으면 여전히 시선이 펼쳐놓은 우산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저마다 할머니에게 드리고 싶은 특별한 물건과 경험을 찾으면서 무거운 현실을 버티고 살아내느라 다치고 곪은 상처들을 치료받는다.
나에게도 그리운 할머니가 있다. 애석하게도 현재 살아계신 외할머니가 아닌, 친할머니가 그립다. 어릴 적 시골에서 함께 살았던 추억이 커서인지도 모르겠다. 막내 고모가 첫 아이를 낳으면서 잠시만 아이를 봐주고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고모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줄줄이 딸을 셋이나 더 낳았었다. 기억 속 할머니는 늘 나보다 작다. 분명 할머니가 나보다 컸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마치 처음부터 할머니는 나보다 작았던 사람으로 기억된다. 이름 석 자 중 앞뒷글자가 같아서 우리는 ‘앞으로도 뒤로도 주월주 할머니’라고 부르곤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그리고 할머니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며 빛바랜 오래된 필름을 뒤로 돌려봤다. 그랬더니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할머니 손과 옷.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했다. 평생 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웠고 한스러웠을 텐데 자식을 여섯이나 낳고 키우면서는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 같다. 할머니는 손녀였던 내가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글을 읽고 쓰자, 그것을 옆에서 보면서 당신도 나를 따라 배우려는 의지를 보이셨다. 나는 할머니에게 공책을 하나 나눠줬고, 그 공책에 ‘가나다라…’를 써주면서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려줬다. 그때 할머니가 연필을 잡았던 손이 떠올랐다. 엄마는 종종 할머니는 시골에 살면서도 밭일을 하지 않아서 손이 얼마나 고왔는지 모른다고 했다. 할머니 손은 농사지을 손이 아니고 펜을 잡아야 하는 손이었나 보다. 할머니는 금세 한글을 익혔고, 한글을 익히자마자 본인 이름과 돌아가신 할아버지 존함, 그리고 할머니로부터 뻗어 나온 자식들과 손주들 이름을 하나씩 적어보기 시작했다. 공책 몇 페이지가 필요한 나름 대작업이었다. 그 작업을 완수한 후에는 할머니가 가장 소망했던, 성경 필사를 시작하셨다.
나의 할머니는 고운 손만큼 고운 옷들도 참 좋아했다. 엄마가 때마다 할머니에게 새 옷을 사서 드렸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당신이 입는 옷의 태와 질감을 세심하게 따지셨기에 엄마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백화점에서 좋은 옷을 골랐다. 할머니가 고모네로 간 후에도 왕왕 놀러 가곤 했다. 할머니는 아이 넷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도 언제나 정갈하게 할머니다움을 잃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다. 무엇보다 교회에 갈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옷을 고르고 골랐다. 우리에게도 교회에 갈 때는 가장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나도 나름 예쁜 손을 갖고 있는데 할머니로부터 뻗어 나온 유전일까. 그리고 확실한 것은 할머니만큼 나도 예쁜 옷을 좋아한다는 거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옷에 대한 애정이 더 컸지만 지금도 퇴색되지 않고 지니고 있다. 옷을 고르는 기준이나 빈도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예쁜 옷을 보는 것도, 입는 것도 좋아한다. 교회에 가기 전날에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면서 가끔 할머니가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 집은 제사를 드리지 않는 집이지만 소설처럼 그런 제사 의식을 치러야 한다면 나는 할머니께 드릴 물건을 바로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펜과 촉감 좋은 스웨터. 이 두 가지라면 할머니가 그곳에서도 무척 반길 것이다.
나의 큰딸은 할머니와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왔다. 역시나 대단히 특별한 것은 하지 않은 것 같지만 할머니와 함께한 온전한 하루는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이 아이는 나중에 할머니가 곁에 없을 때 나보다 더 많이 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살 것 같다. 할머니를 떠올리며 어떤 것을 기억해낼지도 궁금해진다. 그런 추억들이 더 많이 쌓이도록 종종 할머니와 하룻밤 이벤트를 열어주는 것이 좋겠지.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사람’으로 그녀의 자손들은 시선을 추억한다. 참 근사한 수식어다. 현재의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카르페 디엠’을 추구하지만, 이 땅에서 유한한 삶을 살아간 후 과연 어떤 존재로 기억될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지 않을까. 소설 속 시선은 결코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며 살자고 하는 유형의 캐릭터는 아니니 잘못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저 나를 떠올릴 남겨진 이들을 위해 시선처럼 매일 아름다운 것을 발견해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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