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도 코로나 걸리고 싶어

by 세리


우리 집에도 올 것이 왔다. 큰아이가 열을 동반한 인후통을 호소했다. 예감은 빗나가지 않고 일요일 아침에 한 신속 항원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청정지역을 자부하며 온 가족이 무사히 이 펜더믹 시기를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자만했던 걸까.


아파하는 아이를 보는 것은 함께 아픈 일이었지만 이상하게 너무도 무감했다. 3년 가까이 지나오면서 이 시기가 나에게 준 것은 덜 염려하고 덜 아파할 수 있는 면역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과 못된 장난을 하다가 선생님께 딱 걸려서 복도에 줄 서서 한 명씩 딱밤 맞을 것을 기다리다 보면 끄트머리에 서 있는 이들은 앞 친구들의 상황을 지켜보며 ‘에잇, 별거 아니네 뭐!’ 하고 점점 무감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안 맞는 것이 최선이다. 모두가 맞아야지 끝나야 하는 형국이라면 까짓것 맞아줘야 하나 싶다가도 당장 화재 경보처럼 더 큰 일이 발생해서 내 앞 줄에서 딱밤 순서가 딱 끝나길 바라는 마음도 양가로 존재했다.


결국, 피하지 못하고 큰아이를 시작으로 둘째와 나까지 그 차례가 와버렸다. 가장 끝에 서 있는 신랑은 자꾸 뒷걸음치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곧 강력한 꿀밤 한 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앞줄에 서 있는 우리가 그의 손을 꼭 붙들고 있다.




큰아이가 확진을 받았을 때 덜 걱정했던 것은 아이가 많이 커서이기도 하고, 평소 차분한 아이인지라 요란스럽게 호들갑 떨며 아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이 40도를 넘나들며 온몸이 쑤시고 힘이 없다고 호소했지만 그뿐이었고, 아이는 홀로 방에서 조용히 신음하며 자기 차례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그 모습이 더 안쓰러워 수시로 괜찮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정말 아플 때는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입맛이 없다 하여 한 그릇 음식들로 간단히 차려서 따로 방으로 넣어주고 수시로 좋아하는 간식도 챙겨서 방에 넣어줬다. 아이에게 건네는 내 말투에는 평소보다 촉촉한 온기가 머금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2층 침대에서 함께 방을 쓰던 둘째는 홀로 잠을 자야 했다.(물론 수시로 안방을 들락거렸지만…) 심심할 때 선뜻 놀아주지 않고 책을 건네는 엄마와는 다르게 아양을 부리면 선심 쓰듯 놀아주는 언니가 곁에 없으니 둘째는 점점 더 언니를 그리워했다. 물론 그 그리움의 재량은 순전히 아이의 표현을 보고 듣는 것으로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언니를 꼭 안고 싶어”


큰아이의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횟수보다 둘째의 “언니가 보고 싶어”의 표현 횟수가 현저히 높았다. 언니를 괴롭히지 말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시로 방에 있는 언니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언니 많이 아파? 보고 싶어”를 물어댔다. 아픈 언니에 대한 염려보다 언니의 부재로 자신의 그리움이 천정부지로 솟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읍소하기 위함이었다.



둘째의 언니를 향한 그리움의 감정은 다른 감정으로 이양되기 시작했다.


“나도 방에서 엄마한테 간식받아서 먹고 싶어”

“언니만 잘해주는 건 불공평해. 나도 언니 없어서 힘든데”


점점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식사를 하지 못해 간식류로 겨우 끼니를 때우고 있는 언니를 부러워하기에 이르렀다. 평소 밥보다 간식을 더 좋아하고, 방에서는 절대 간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규칙을 따라야 하는 아이에게 언니의 자기 방 격리는 그저 부러운 일상이었던 것이다. 언니가 밥을 못 먹으면 자기도 먹지 않겠다고 하고(순전히 먹기 싫은 마음으로), 언니가 간식을 먹을 때는 자기도 꼭 방에서 먹겠다고 우겼다. 철없이 구는 아이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지금 언니는 코로나 걸려서 힘들어서 혼자 있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냐고 이해를 해보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러더니 결국 하는 소리가 “나도 코로나 걸리고 싶어”였다.


은근슬쩍 언니만 이용해야 하는 화장실도 몰래 사용하고, 언니 방으로 숨어 들어가서 언니 곁에서 꼼지락거리더니 결국 소원대로 코로나에 걸렸다. 아이는 결과를 듣자마자 ‘앗싸!’를 외치며 언니 방으로 가서 꼭 붙어 누웠다. 자기도 이제 코로나 환자이니 방에서 언니와 함께 모든 것을 하겠다면서.




“너무 아파, 엉엉, 못 참겠어.”


확진을 받고 얼마 안 있어 열이 오르기 시작하더니 열이 40도 가까이 찍혔다. 그리고 통증이 동반된 모양이었다. 수술대에 두 번이나 오른, 우리 가족 중 수술 전력이 가장 많은 아이였지만 코로나는 아이에게 또 다른 고통으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스펀지처럼 폭신하기만 한 살로 뒤덮인 아이에게 일생일대의 첫 공격, 근육통이 찾아온 것이다. 아이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몸을 뒤틀며 경험하지 못한 생경한 고통을 결국 울음으로 치환했다. 누워있다가도 갑자기 울고, 앉아있다가도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아파, 너무 아프다고!!”


아프다고 방방 뛰는 아이를 보는 나머지 가족들은 안쓰러우면서 우스워 죽겠는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어떤 순간에도 자신의 즉각적인 본능과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는 마치 코로나에게 대들듯 ‘너 왜 자꾸 나를 아프게 해!’를 외치는 것만 같았다. 며칠 조용히 아픔을 홀로 감내하며 표현하지 않았던 첫째는 그런 동생을 보면서 알지 못할 표정으로 바라봤다가, 곧 괜찮아질 거라며 안아주기를 반복했다. 반면, 둘째가 확진을 받으며 동시에 내 몸에도 침투한 코로나의 맹렬한 공격을 받으며 아이의 수시로 터지는 울음이 살짝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결국, 아이에게 모진 소리를 건네고야 만 것. “그러니까 왜 코로나 걸리고 싶다고 해! 걸려서 아프니깐 알겠지?


“엄마 너무해!! 난 이제 겨우 9살이잖아. 내가 알았겠어? 그리고 9살이 아프다고 하는 건 당연하지!”


조목조목 맞는 소리만 하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대꾸는 없었다. 거기에 곧 있으면 아이 나이가 거꾸로 줄어 7살이 된다고 하니 울애기는 진짜 아가가 되고 있었다. 심지어 내 나이도 앞자리 숫자가 바뀐다고 하니 나도 엄살 좀 더 부리고 넘어가도 될는지.


“아프네요, 아파!”

(글도 쓰는 걸 보면 실제로는 안 아픈 것 같기도요^^)







커버사진: https://pixabay.com/users/Prawn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대체 언제 걷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