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믿어주는 마음
큰아이가 첫걸음마를 떼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모든 부모에게 아이가 혼자 서서 걷는 그 순간은 잊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런 감동보다는 안도의 마음이 컸던 까닭이었다.
3.2킬로. 예정일보다 10일가량 빨리 태어났던 큰아이의 첫 몸무게였다. 여아 신생아의 평균 몸무게였다. 그런데 몸무게 증가 속도는 놀라우리만큼 빨랐다. 조리원에 들어가서 매일같이 수유실에 들락거리며 함께 젖을 먹이던 엄마들에게도 우리 아이의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도드라졌다. “엄마가 젊어서 모유가 좋은 건가. 어쩜 하루가 다르게 토실토실 살이 오른데…”라고들 했으나 실상은 매일같이 아이와 젖 먹이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모유양이 적지는 않았으나 한줄기로 곱게 흐르지 않고 사방으로 뿜어대는 통에 아이는 계속 컥컥거리며 울어댔다. 나는 아이가 배고프다고 할 때마다 초반에 뿜어대는 모유를 먼저 짜내느라 우는 아이를 달래며 젖을 짜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결국에는 사정없이 뿜어대는 젖에 아이는 컥컥거리면서도 배가 고프니 숨을 헐떡이며 빠르게 받아먹곤 했다. 빨리 살이 오르는 이유는 모유의 질이 아니라 속도 때문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밥을 빨리 먹으면 살이 찌는 이치와 맞닿아 있던 건지, 원래 튼실하게 클 아이였는지 아이는 상당한 속도로 살아 올랐다. 백일이 됐을 때, 백일의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몸무게의 기적은 2배가 아닌 3배로 찾아왔다. 보통 백일에는 태어날 때의 몸무게의 두 배가 되면 잘 자라고 있는 거라고 했는데 아이는 세 배의 몸무게를 기록했다. 터질듯한 볼, 올록볼록 미쉐린 팔을 지닌 아이를 보며 양가 부모님들은 잘 키웠다고들 했지만 나는 9킬로가 다 되어가는 백일 아이를 날마다 안고 업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날마다 생각했다. ‘대체 언제 혼자 걸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안기에 무거웠던 아이가 내 품에서 벗어나 혼자 걸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이는 신생아 초반에 밤낮이 바뀌어 고생을 시킨 며칠을 제외하고는 꽤 순한 편이었다. 잘 먹고, 잘 자고, 눕거나 뒤집어서 적당히 혼자 놀기도 해주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나는 걷지 못하는 아이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아줘야 했다. 범보 의자, 보행기, 흔들 침대, 점핑 놀이터 등 아이를 안아주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갖가지 육아 용품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드시 안아줘야 했다. 맨 손으로 안을 수는 없어서 아기띠와 슬링의 도움을 받았지만 아이가 10킬로가 넘어갔을 때부터는 잠시만 안아줘도 어깨와 허리에 고통이 심했다. 힘겨워하는 나를 보며 친정 엄마는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걸어..”라고 말씀하셨다.
아이 친구들 중에는 9개월부터 조금씩 걷기를 시도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를 보고 희망을 품고 내 아이를 보면 아이는 여전히 기어 다니는 것 이외는 할 생각이 없음에 또 좌절하곤 했다. 돌이 지나자 아이는 차츰 지지대를 잡고 일어서기를 시도했다. 일어서기만 하면 걷는 것은 금방이라고 했다. 이제 곧 우리 아이도 걸으려나 하는 희망을 품기 수개월, 아이는 서는 것에서 또 진전되지 않았다. 15개월이 넘어갈 무렵에는 진지하게 대학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가 아파서 소아과를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면 늘 성의 없이 똑같은 답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때 되면 다 걸으니깐 걱정 마세요.” 휴, 대체 그때가 언제 오냐는 말이냐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입을 꾹 다물고 아이를 안고 나올 뿐이었다.
16개월을 지나 17개월로 들어설 무렵(이때는 아이들 1개월 차이가 얼마나 크던지…), 아이가 갑자기 걷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혼자서 열심히 걷기를 시도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무슨 결심이 서기라도 한 것인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그렇게 수없이 연습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우리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며칠 후에 터벅터벅 흔들림 없이 걸었다. 드디어 내 아이도 직립할 수 있는 인간이 됐다는 감격도 컸지만, 이제 더 이상 안아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마음이 더 컸다. 물론 그 뒤로도 안아줄 일은 즐비했지만, 이제는 아이가 두 발에 자신의 작은 몸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한 단계 성장한 것은 분명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암담했던 그 시간이 결국은 왔고, 그 감격은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언제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해소되자 그다음부터 밀어닥친 걱정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직립하는 인간이 되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이제 호모 사피엔스로 키우기 위한 본격적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 지혜로운 인간, 그래서 남보다 더 뛰어난 인간으로 키우고 싶은 부모의 욕망이 아이가 걷기 시작하자 움트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이제 12살이 됐다. 체질은 변하지 않는 건지, 아이는 지금도 같은 양을 먹은 동생보다 살찌는 속도가 더 빨라서 걱정한다. 그리고 곧 생리가 시작할 것으로 예상하여 그전에 키가 더 자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아이가 더 지혜롭고 뛰어난 아이가 되길 바라는 욕망과 사투 중이다. 본디 순하고 차분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는 그동안 엄마의 기대보다 훨씬 잘 따라와 줬다. 순한 본성에 더해 잘하고 싶은 욕심도 겸비하고 있어서 학습적으로도 꽤나 근사한 아웃풋으로 엄마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해 준 순간들도 많다. 기대만큼 잘 따라와 주는 아이가 고맙고 기특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뭘 더 해줘야 하는 것인지 또 다른 걱정이 곧바로 밀려온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 이것을 단순히 부모의 욕망으로 치환할 수는 없다. 부모의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시키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위이다. 하지만 아이가 하나의 올바른 인격체로 자립할 수 있도록 잘 키우고 싶은 마음과 욕심의 경계는 늘 모호한 법이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입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며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는 선배 맘들의 말에 나는 흔들림 없이 키울 수 있을 거라 자만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이 나라를 벗어나 다른 대안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우리 아이도 겪어야 할 이 입시의 세계는 훨씬 더 체계적이고 공고하고 단단하다. 그 앞에서 나는 수시로 무력해진다. 분명 두 발로 똑바로 자신이 내디뎌야 할 땅을 당당하게 걷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도 나는 마치 아이가 내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인 양 마음을 동동거리고 있는 꼴이다.
앞으로도 난 계속 양가의 마음으로 양쪽을 기웃거리며 경계에서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성경에도 차던지, 덥던지 한 가지만 하라고 하는데 여전히 미적지근한 태도로 양쪽 발을 각각 담그고 저울질하는 내 꼴이 한심할 때도 있지만 아이를 향한 내 눈길만큼은 흔들리지 않으리라. 언제쯤 두 발로 걸을지 종종거리며 걱정했지만 아이는 결국 수없이 넘어지기를 반복하고 일어서며 걷게 됐다. 이번에도 아이를 믿어주리라. 앞으로 아이 앞에 펼쳐질 여정이 만만치 않겠지만, 아이는 분명 두 발로 똑바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