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유난히 퍼즐 맞추기를 좋아한다. 500피스가 넘어가는 퍼즐은 혼자 맞추기 버거우니, 늘 아빠와 함께하자고 졸라댄다. 아이가 퍼즐을 좋아하는 성향은 분명 아빠한테서 온 것이 분명할 만큼 다행스럽게 신랑도 퍼즐 맞추기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고서는 그저 아이와 놀아주는 심정으로는 절대 못 하는 게 퍼즐 맞추기인 듯하다. 애초에 퍼즐을 못 하거니와 좋아하지도 않는 엄마에게는 부탁조차 하지 않아서 고맙기까지 하다.
퍼즐을 좋아하는 신랑인데도 요즘은 웬일인지 아이와 퍼즐을 맞추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색이다. 벌써 수십 번을 맞춘 퍼즐이라 지겨워진 건가. 똑같은 것을 몇 번을 해도 물리지 않는 사람이 웬일인가 싶었다.
“아빠, 퍼즐 같이 하자..”
“음… 퍼즐 말고 다른 거 하는 건 어때? 원카드나 보드 게임할까?”
“싫어!! 퍼즐 할 거야. 아빠 퍼즐 맞추기 싫어?”
“아니, 네가 퍼즐 몇 개 잃어버려서 다 맞춰도 완성이 안되니깐 하기가 싫잖아… 잃어버린 퍼즐들 못 찾았어?”
부녀의 대화를 듣다 보니 신랑이 퍼즐을 맞추기 꺼렸던 이유는 아이가 퍼즐 몇 조각들을 잃어버린 이유였다. 힘써 다 맞췄는데 중간이 빠진 이처럼 비어있는 완성작을 본 이후로는 맞추고 싶은 의욕이 싹 사라졌던 것이다. 아이만큼 퍼즐 맞추기를 좋아한다 해도 열심히 애쓴 후에 완벽하게 그림이 완성되지 못한다면 도전하고픈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 그의 심정이었으리라.
신랑의 말을 듣고 있자니 요즘 내 마음도 그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싶었다. 분명 인생이란 퍼즐을 맞춰가는 중인 것 같은데 여전히 수많은 조각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채 듬성듬성 비어있는 것이 딱 구멍 뚫린 퍼즐 같다고 여겨졌다. 아이가 맞추는 퍼즐은 최종 완성작을 미리 보고 가늠이라도 할 수 있는데 내 생에 주어진 퍼즐은 도무지 어떤 그림일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더 답답했다.
퍼즐의 그림은 단순하지 않다.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퍼즐 맞추기를 좋아했다. 꼼꼼하고 신중했던 첫째는 퍼즐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집중력이 좋지 않다고 여긴 둘째가 퍼즐에 흥미를 보였다. 4피스짜리 쉬운 퍼즐을 시작으로 조금씩 피스를 늘리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이제는 혼자서 500피스까지 맞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수학 문제를 풀거나 책을 볼 때는 엉덩이가 들썩거리며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는 녀석이 퍼즐을 할 때만큼은 눈빛이 반짝이고 엉덩이에도 힘이 묵직하게 들어간다. 아이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퍼즐 맞추는 방법을 터득해갔다. 먼저 색깔과 그림 모양이 비슷한 퍼즐 조각들을 종류대로 모은다. 각각의 퍼즐이 어디에서, 어떻게 연결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색깔과 그림이 비슷한 것들을 먼저 맞추면 다른 그림과 연결점들이 보인단다. 조각조각 나누어진 그림대로 먼저 맞추고 최종적으로 서로 연결고리를 찾아 하나씩 이어 붙이면서 점증적으로 완성해간다. 보이지 않던 미로들을 헤매다가 뜻밖에 지점에서 출입문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비슷할까. 아이는 퍼즐 맞추는 데 시간과 힘이 꽤 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조금씩 완성해가는 기쁨을 즐겼다.
지금 내 인생의 퍼즐도 고작 귀퉁이 어느 한구석만 완성된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 것 같은 내 삶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들 때가 무시로지만 그럼에도 나의 하루하루가 켜켜이 모아져 최종적으로 근사한 작품을 완성하는 중이라 믿고 싶다. 인생의 조각이 맞춰져서 근사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과 시점에 되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인생은 우리에게 완성품을 턱 하니 안겨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날마다 피스 하나씩을 완성할 뿐이다.
최종적으로 그것을 근사하게 맞추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내 삶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엉성한 모습이라고 좌절하고 있다면, 내 삶의 작품을 만들 피스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한동안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했던 글쓰기를 하지 못했다. 단순히 몸이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한 것이라 핑계 댈 수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아침에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쓰지만, 그것이 내 삶의 한 조각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아무 의미 없는 글쓰기처럼 느껴져서 지쳤고, 굳이 피곤한 몸을 아침 일찍 일으켜 글을 써야 할 당위성이 사라지자 점점 의지도, 의욕도 사그라들고 만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날마다 쓰는 글이 결코 버려지는 퍼즐 조각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지점이 있었다. 가끔 오래전에 올린 브런치 글을 읽고 지나가는 분들이 무심코 달아준 댓글이 있었다. “와, 글이 너무 좋네요. 잘 읽고 갑니다.” 이 민망한 칭찬이 내가 매일 쓰는 글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근사한 작품을 완성하고 싶어서 애쓰던 중에 좌절하다가 작은 공모전에 낸 어설픈 글이 당선됐다는 기쁜 소식도 듣게 됐다.
내가 의지를 다지고 하는 모든 일들이 무로 돌아가는 허망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아침에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고작 한 시간 더 앞당겨서 일어나는 것인데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지속하기 힘든 것이 나란 사람임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끄적이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퍼즐 조각 하나를 빚는 과정임을 이제는 의심하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