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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 가족 하브루타

by 세리

아이들과 수요일 저녁마다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진다. 유대인 교육법에서 유명한 ‘하브루타’ 시간을 갖는 것이다. 큰아이가 수학학원에 다니기 전에는 수시로 그런 시간을 갖곤 했는데 아이가 학년이 높아지면서 자꾸 이 시간이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적어도 수요일 저녁에는 기필코 그 시간을 사수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신랑 회사에서도 수요일은 ‘가족의 밤’이라고 저녁을 주지 않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라 적절한 요일이라 생각했다.


보통 하브루타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토론 주제를 정해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두 아이와 함께하는 하브루타는 독서 수준이 제각각이니 같은 책을 정하기 쉽지 않다. 우리는 함께 성경을 읽고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더불어 토론할만한 주제 리스트를 정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 스마트 폰 사용을 제한하는 것이 좋을까?’

‘노 키즈존은 과연 필요할까?’

‘놀이공원에서 퀵패스를 적용하는 것은 공평한가, 그렇지 않은가?’

‘학교에서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것은 좋은 일일까?’

‘학습 만화를 읽는 것이 독서 생활에 도움이 될까?’

‘친구에게 하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님 언제나 솔직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들의 주제들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들을 정해서 각자의 생각을 끌어내기도 하고, 두 명씩 찬반을 나눠서 열띤 토론을 나누기도 한다. 찬반을 나눌 때는 자신이 찬성하는 처지가 아닌, 반대 관점에서 나름의 근거를 찾아 논리 있게 토론하는 연습을 해보는 기회를 만들어보기도 한다.


두 아이는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한다. 심지어 너무 몰입해서 상대팀을 맹렬하게 공격하며 중간에 말을 가로채어 비난하는 태도까지 보여서 중간에 제지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특히 아직 스마트폰이 없는 둘째는 ‘스마트폰 사용의 필요성’에 관해서 자신이 왜 필요한지 과도하게 몰입해서 목소리를 높여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기 힘들 정도였다. 아직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근거를 갖고 말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는 나름의 논리로 주장하는 것이 기특하기도, 귀엽기도 하다.


최근에는 주제를 정해서 토론하는 것이 아닌, 각자가 생활 속에 있었던 일 중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두 아이가 올해에 새 학교로 전학을 와서 친구들이나 반에 있었던 여러 일들을 불평하며 나누곤 하는데 그에 관해서 가족이 함께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두 딸은 최근에 친구 문제에 가장 민감하다.


큰아이는 자신과 딱 맞는 찐 친구를 만나는 게 쉽지 않다는 속내를 종종 내비친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와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즐겁다고 해줘서 안도했지만, 막상 친구들과 깊이 친해지다 보니 마음에 안 드는 구석들이 발견됐던 것이다.


“걔는 자기 말만 하고 제가 하는 말은 잘 들어주지 않아요.”


“아니, 걔는 내가 뭘 잘하면 엄청나게 질투를 해요. 내가 무슨 글을 쓰고, 과제를 어떻게 했는지 자꾸 꼬치꼬치 물어보고 자기 거랑 비교하는 게 너무 싫어요. 나는 딱히 걔가 하는 거 관심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 애는 놀 때는 저랑 잘 통하는 것 같은데, 같은 조가 돼서 과제를 하는데 불성실하게 참여하더라고요. 저는 공부할 때는 제대로 하고 싶은데 자꾸 ‘대충 하자’라고 말해서 조모임 할 때는 은근히 그 친구를 피하게 돼요..”


“엄마, 걔는 진짜 다른 친구 뒷담화를 너무 많이 해. 물론 나도 마음에 안 드는 친구가 있지만, 그렇게 나한테 뒷담화 하는 거 듣고 있으면 얘는 다른 친구한테도 내 뒷담화 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큰아이가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고민하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 가족들도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본다. 둘째 아이는 언니의 고민에 깊이 공감하며 같이 화를 내기도, 나름 진지하게 생각해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나와 신랑도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해준다.


자기 말만 계속하고 막상 나의 상황과 고민은 궁금해하지도, 들어주지도 않는 태도에 화가 났던 경우, 나에게 기쁜 일이 있을 때 진정으로 기뻐해 주는 친구는 없는 것 같아서 수없이 낙심했던 경우, 취향과 성격은 비슷한 듯 하나 막상 인생의 가치가 달라서 마음이 어려웠던 경우, 만나기만 하면 다른 사람 뒷담화를 정신없이 해서 귀를 막고 싶은 지경이었던 경우까지. 아이는 지금도 내가 인간관계에서 고민하는 것을 그대로 친구들 사이에서 겪고 있었다.


아이들과 하브루타를 하면 할수록 사실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답이 많지 않다는 것을 더욱 깨달아간다. 설사 답을 준다고 해도 아이가 즉시 적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질적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인생의 정답을 몰라서 날마다 같은 지점에서 헤매고 낙망하는 것이 아니기에 가르치려는 태도는 최대한 지양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힘들고 불편하고, 불만이 가득한 아이들의 고민을 살짝 틀어서 다시 질문할 때 아이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이를테면, 자기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친구에게 불평이 생길 때,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친구의 말에 얼마나 경청을 하고 있을까? “


자신을 질투하는 친구가 거슬린다는 투정에 “네가 부러웠던 친구는 누구야? 네가 누군가를 질투할 때 또 다른 친구가 너를 질투하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면 기분이 어때?”


만나면 늘 다른 친구 뒷담화를 하는 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하는 아이에게 “늘 뒷담화 하는 친구를 보면서 너는 어떻게 친구들을 대해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되는 거지? 그 친구 덕분에 오히려 네가 올바른 태도를 배우는 면도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같은 상황이지만 살짝 시각을 틀어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기. 험난한 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일어나는 갈등, 고민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불평하게 하지만 방향을 틀어 생각하면 그들로 인해서 내가 조금 더 성숙해지고, 올바른 태도를 배워갈 기회라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만나는 사람 중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잘 구분해서 일부러 불가능한 일을 바꾸려고 자처할 필요는 없지만, 내게 주어진 것들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고 함께할 수 있는 법을 찾아가는 아이들로 컸으면 좋겠다.


다행히 아이들은 수요일 저녁 가족 하브루타 시간을 늘 고대하며 기다린다. 그 시간에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미리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모습도 기특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숙명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나의 수준과 태도는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가는, 내가 먼저 성장하는 우리 가족 하브루타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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