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농림축산부에서 연구직 공무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지금은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당시 동생한테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그 부서에서도 여러 부류로 일이 나뉠 텐데, 동생은 주로 닭을 관리하는 일을 맡을 때였다. 말단 공무원으로 들어가서 전국 곳곳에 있는 양계장을 돌아다니며 닭이 어떤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지방 산악 지방에 있는 부서로 발령받아 직접 닭을 키우며 연구도 했다. 덕분에 엄마와 나는 연구용 닭이 낳은 귀한 초란을 꽤 자주 받아서 먹는 혜택도 누렸다. 허나 본인은 깊은 산골에서 노상 닭만 보고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이 지친다고 투덜대곤 했다. 무엇보다 전국적으로 조류 독감이 발병하기라도 하면 발병 난 지역의 닭들을 살아있는채로 처분해야 하는 끔찍한 일을 보는 것도 힘들다 했다.
우리나라 양계장의 실태를 보면 조류독감이 한 번 걸리면 그 양계장은 무조건 폐쇄 조치를 할 수밖에 없단다. 수많은 닭이 좁은 양계장에 갇혀 오직 달걀을 낳는 용도로 서로 밀접하게 붙어있기 때문에 전염병이 발병되면 전염 속도가 순식간이라는 이유이다.
직접 보지 못했어도 양계장에 갇혀서 달걀 낳는 머신으로 전락한 닭들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동물 복지 실태에 관해 종종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닭만 그런 것이 아님을 안다. 인간의 욕심으로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소비재를 생산하기 위해서 방목해서 자유롭게 자라야 할 젖소, 돼지, 소 등이 우리에 갇혀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갇혀 지낸다.
시골에서 자랄 때 친구네 집에는 닭들이 마당에서 뛰놀고 있었다. 닭은 날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짓궂게 쫓아가면 푸드덕 공중으로 살짝 날면서 도망가는 모습에 깔깔대며 웃곤 했다. 개구쟁이들 덕분에 닭들이 애를 좀 먹었겠지만, 마당에서 종종거리며 활개 치고 다녔던 닭을 떠올리면 양계장에 갇혀 지내야 하는 닭들의 운명이 더 안쓰럽다.
존스 홉킨스 소아정신과에 있는 지나영 교수님은 아이들도 드넓은 들판에서 자라는 소들처럼 방목해서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소처럼 성적만 잘 나오면 되고, 그 성적이 아이의 가치와 등급을 결정한다고 꼬집는다. 한국 학생들이 외국 아이들보다 더 스마트폰에 집착하고 중독 현상이 심각한 것도 우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온종일 학원과 집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잠시 쉬는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스마트폰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붙어 있는 첫 번째 이유는 하루 종일 공부만 해서 완전히 연소되어서 그렇다. 두 번째 이유는 밖에 나가서 놀아본 적이 없고 우리에 갇혀 살아와서 그렇다. 안타깝게도 다른 흥미와 취미를 가질 겨를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지나영,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본질 육아> p.206
아이가 약속한 대로 스마트폰을 조절하지 못하고 더 하고 싶어 집착하고 심지어 몰래 하는 모습에 걱정하는 부모에게 지나영 교수는 반문한다.
"그럼 아이가 스마트폰을 줄이고 뭘 했으면 좋겠나요?"
아마 엄마들은 아이가 쉬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건설적인 취미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큰아이가 초등 5학년이 되면서 공부량이 늘기 시작하니 책 보는 것을 점점 멀리했다. 분명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책으로 손이 먼저 가지 않았다. 밥 먹고 간식 먹을 때도 책 보는 것을 멈추지 않아서 잔소리했던 아이였는데 말이다. 요즘은 왜 책을 안 읽냐고 묻는 말에,
"공부를 한 후에는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책도 글자로 되어 있으니 아무리 재미있었던 책도 읽기 싫어져요."
나도 아이들과 엄마표로 이런저런 과제들을 하고, 밀린 집안일을 잔뜩 끝내 놓은 후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는 선뜻 책으로 손이 가지 않았으니 아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어른도 할 수 없는 것을 아이에게 요구하고 있었던 꼴이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어 점점 입시 준비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면 국영수 주요 과목 학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여유 시간은 없다. 설사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해도 평범한 가정에서는 아이의 취미 활동까지 경제적으로 지원해주기란 녹록지 않다. 그래서 어릴 때 좋아했던 미술과 음악, 체육 활동도 점점 줄이고 아이들은 더욱 공부에만 정진하는 상황으로 자연스레 내몰린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한다고 해도 분명 잠깐의 자유 시간을 누릴 수는 있을 터인데 아이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그전에 다 못하게 했으니 결국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자유 놀이는 게임과 유튜브, TV 시청만 남게 되는 것이다. 공부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환경을 부모가 만들어줬으면서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이 아닌 다른 활동을 하라고 하면 아이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모두가 다 그렇게 감수하고 공부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어느새 그 생각에 길들여져 큰아이를 그렇게 키우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던 중이었다. 길어야 8년 정도만 다른 것은 조금 참고 공부에만 집중한다면 그 이후에는 하고 싶은 취미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아이와 타협점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8년 동안 진짜 아이들이 우리 안에 갇혀 오직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만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이 인생에 진짜 좋은 것일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입시를 위한 주요 과목만 집중해서 공부하고 자신의 미래를 맞이하는 것이 아이에게 진짜 좋은 것인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