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고향은 지금은 물속에 잠겼다. 오롯이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이다. 댐을 만들기 위해 수몰 지역으로 지정되었던 만큼 아주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그 산골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보냈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동네였다. 있어야 할 것만 딱 하나씩 있는 그런 곳. 당연히 초등학교도 하나뿐이었고, 각 학년에는 한 반씩만 존재했다. 당시 내가 학교가 끝나고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기억을 떠올려봤다.
그 시골에도 학원은 있었다. 피아노 학원과 주산 학원. 번듯한 외관을 갖춘 곳은 아니고 가정집에서 공부방 형식으로 있던 곳들이다. 자연스레 나는 그 두 학원에 다녔다. 그 시골에서 나름 학구열이 있던 엄마는 내가 3학년 때부터 시외버스를 태우고 금산 시내까지 미술학원을 보내기도 하셨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가량을 가야 했는데도 나는 가지 않겠다는 떼 한번 쓰지 않고 꿋꿋이 홀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렇게 학원에 다녔던 기억은 있지만 나의 유년 시절은 온통 나의 마을을 들쑤시며 친구들과 활개 치고 놀았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성실하게 썼던 일기장이 아직도 우리 집 창고에 보관되어있다. 그 시절의 일기장을 들춰보면 집에서 숙제하고 문제집을 풀었다는 기록도 있지만 대부분은 친구 누구누구와 놀았다는 내용이다.
시골에서 자란 나는 나의 드넓은 여백을 산과 들로 누비며 놀이로 채우곤 했다. 병설 유치원부터 늘 같은 반으로 묶일 숙명을 지닌 동네 친구들과 싸우고 토라지고 다시 화해하고 놀면서, 그렇게 나만의 시간을 그득히 채워나갔다. 아마 지금 나에게 있는 상당의 감성과 생태적 감수성은 그때 돋우며 키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신도시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아이의 여백이 불안했다.
아침에 함께 눈을 뜨면서부터 아이가 뭔가 의미 있는 행위로 자신의 시간을 채워가길 바랐다. 물론 그 의미란 엄마인 내가 부여한 '의미'였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채워나가고자 했다. 소위 책 육아였다. 책 읽기야말로 최고의 육아법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독서도 여러 종류의 독서가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자발적 독서가 아닌 엄마의 목적과 의지가 농축된 독서 행위와 아이가 진짜로 좋아서 하는 독서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은 그 둘이 섞인 채 뒤죽박죽 진행되곤 한다. 모로 가든 서울로 가면 된다는 마음으로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도록 만들었고 진짜로 아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됐다.
아이가 초등 5학년이 되자 주변에서 슬슬 이사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 10년 가까이 된 신도시지만 교육 인프라는 그보다 훨씬 뒤늦게 만들어지니 학원이나 아이들 교육 수준이 학군지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처음에 그런 소리가 주위에서 들려오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 치부했다. 노골적으로 학군지에 가서 공부시키는 엄마가 아니라고 자위하고 싶었지만, 진짜 속내는 우리 아이는 어디에 있든 잘할 수 있다는 은근한 우월감이었다.
불안감을 일으킨 것은 아이 친구들이 여백을 보내는 방법을 확인한 후였다.
아이가 저학년 때는 빈 시간에 독서와 놀이, 엄마표 영어로 채우고 있었다면 고학년이 되면서 그 시간은 점점 공부하는 시간으로 바뀌고 있었다. 일단 학원에 다니면서 압도적으로 숙제량이 많아졌다. 이왕 학원에 가야 한다면 제대로 공부시키는 학원으로 보내자 했고, 다행히 이곳에도 대치동 대형 학원 브랜치들이 꽤 많이 생겼다. 선행 심화로 수학 진도를 무섭게 빼는 대형학원 시스템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이가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 이상으로 집에서 숙제해야 했다. 그러나 주변 모든 친구가 그런 학원에 다니지는 않는다. 아이 친구들 대부분은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고 했고, 남는 시간은 스마트폰을 하거나 TV를 보는 것으로 때운다고 했다.
점점 친구와의 관계가 중요해지고 깊이 공유하는 것이 많아지던 아이는 뭔가 자신만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왜 자신만 이토록 많은 시간 동안 공부해야 하는 것인지,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것이 맞을 텐데 왜 다른 친구들은 공부를 안 하는 것인지, 나는 스마트폰 사용을 규제받고 있는데 왜 다른 친구들은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는지 아이는 혼란스러워했다. 바로 이 질문을 피하고 싶어서 몇몇 엄마들이 지역 탓을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모두가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스마트폰을 제한하는 동네에서는 아이도 그것이 당연한 줄 알고 공부만 할 텐데 이곳에는 주변에 혼란을 일으키는 친구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공부를 안 시키는 부모들도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공백을 스마트폰이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자유롭게 놀기라도 했으나 요즘 아이들은 핸드폰 세상에서 유영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엄마들도 스마트폰 사용에 있어서는 정확한 답을 모르겠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그러나 분명 아이들 성장에 스마트폰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한 번 빠진 스마트폰 세상은 스스로 통제하기란 쉽지 않다.
난 아이가 그 가상의 세계로 빠지게 두고 싶지 않았고, 결국 남은 방법은 공백을 공부로 채우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이가 공부에 재능이 있었고, 공부하면서 얻는 성취감에 뿌듯함을 느꼈다. 학원에서 매시간 보는 시험에서 백 점을 받아 다른 친구들과 경쟁에서 이기는 짜릿함도 나름 즐기고 있었다.
아이의 공백이 공부하는 것으로 채워지자 나는 잘 가고 있다고 안도했다. 아이 안에 여러 질문들이 솟아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저 그것이 네 삶에 좋은 것이라고 지속해서 말해주며 격려하고 칭찬하고 인정해줬다.
진짜 중요한 무엇이 빠졌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