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균형을 이루며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아이의 감정을 알아주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올바르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잘 키우고 있다고 자만했다.
어릴 때부터 학업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5학년이 되기 전까지 예체능을 제외한 학원은 보내지 않았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한 이유도 그저 입시 공부만을 위한 영어 공부는 시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것이다. 대신 아이가 충분히 책을 좋아하고 사유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했다. 규칙적으로 가족이 함께 모여 하브루타로 책을 읽고 토론하기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성실하게 엄마와 하기로 한 약속을 집에서 충실히 지켜나갔다. 아이의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5학년이 되면서 슬슬 주요 과목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와 연락을 위해 핸드폰이 필요했고 처음에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 2G 폰을 사용하도록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 소통을 위해서는 카톡이 필요하다면서 카톡만 할 테니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부탁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아이와 정하고 서로 약속한 후에 스마트폰을 사줬다. 물론 잠금장치 앱을 깔아서 아이 스스로 통제가 어려운 부분을 도왔다.
수학학원을 보내면서 아이의 학업 성취도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똘똘했고, 본인이 노력하고 애쓴 만큼의 결과가 따라왔다. 공부를 하는 만큼 주변의 인정도 받았으니 자신은 공부를 잘하는 모범적인 아이라는 정체성이 만들어졌다. 주어진 임무를 끝내는 속도가 빨라지니 나는 그 이상을 더 얹어줬다. 조금 더 빨리 끝내면 그것이 아이의 실력이 될 것임은 자명했다. 아이는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더 얹어진 만큼 노력했다. 또래보다 학원을 늦게 갔지만 성실함과 명석함으로 대형학원의 커리큘럼을 빠르게 따라잡았고, 학원 선생님들도 온갖 칭찬으로 아이를 부추겼다. 지금보다 조금 더 빨리, 더 많이, 더 깊은 공부를 한다면 앞으로 탄탄대로가 열릴 것이라 했다.
수학을 잘하니 국어에도 욕심이 생겼다. 레벨테스트로 국어 실력을 측정할 수 있는 학원이 있다고 해서 친구들과 함께 시험을 봤다. 중학교 3학년 수준의 레벨이 나왔다. 그러면 그간 책을 보고 생각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것임에도 학원에서는 틀린 몇 문제를 지적하며 이것만 잡으면 수능 언어 1등급도 금방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바로 보내지 않았지만 나도 아이도 미련이 생겼다. 학원에 등록한 다른 친구 이야기를 하며 내가 불안함을 보이자 아이도 그 학원에 가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 보내달라고 했다. 아이는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시험을 볼 때마다 백점을 맞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줘도 시험에서 틀리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나는 그저 경쟁에서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여기며 안타까이 바라볼 뿐이었다.
점점 공부량이 늘어가면서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아이가 책을 읽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다. 평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무조건 좋아하는 책을 찾아 읽었던 아이가 이제는 여유 시간이 생겨도 책을 찾기보다는 동영상만 보기를 원했다. 아이가 보는 동영상이라고 해야 엄마표 영어로 습관이 된 영어 콘텐츠들인지라 허락했다. 공부 시간이 많아지니 그 외의 것에는 잔소리하고 싶지 않아서 어느 정도 타협하기 시작했다. 카톡도 하루에 1시간 이상은 하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있었기에 그것으로 문제가 생길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하루는 아이의 핸드폰 사용 시간을 보게 됐다. 잠금장치와 사용 시간을 남편 핸드폰에 설정해뒀지만 매일 그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날은 들어가서 보게 됐는데 아이가 그 전 주부터 카톡을 하루에 3-4시간을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뭔가 오류가 있는 것인가 아무리 살펴봐도 오류가 아니었다. 아이의 하루 스케줄을 살펴봤을 때 결코 4시간씩 핸드폰을 사용할 틈이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이야기인즉, 아빠 핸드폰을 가지고 가서 제한 시간 잠금을 풀었고, 10시에 잔다고 들어가서 새벽까지 혼자 핸드폰을 했다는 것이다.
몰래 핸드폰을 사용했다는 것보다 우리를 속이고 지속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이제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라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워낙 성실하고 순한 아이였던지라 더 충격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아이는 자신이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한 것은 바로 엄마인 내가 그런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사랑한다고, 네 존재가 귀하다고 말해주곤 했지만 아이는 엄마가 진짜 품고 있는 속내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단다.’라고 느끼고 있었다. 겉으로 그럴싸한 말로 포장하며 아이에게 건넸지만 그 포장을 벗겨낸 진짜 알맹이는 다른 것임을 아이는 누구보다 알았다. 정직하게 남을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그럴듯한 껍데기 말보다 공부를 잘하고 인정받을 때 가장 좋아했던 엄마의 표정과 반응에 아이는 자신의 가치를 그것으로 가늠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이에게 주고 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아이를 통해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던 허울이 벗겨지던 순간이었다. 엄마를 동경하고 존경한다고 말해주는 아이에게 나는 어떤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었던가. 결국 나도 아이에게 공부를 잘해서 실력을 쌓고 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그럴듯한 직업을 갖는 것이 멋진 삶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의 빈 여백에 학업 성취도로 오는 만족감을 채우고자 했고, 아이가 꿈꾸는 세상에는 성공해서 큰 보상을 받는 것이 최고라는 것을 심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너를 헷갈리게 만든 것, 네 가치를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 매기려고 했던 것, 엄마의 욕심을 네게 투영하여 그것이 마치 네가 원하는 것인 양 포장하려고 했던 것들에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결국 다시 풀어서 끼워야 한다. 아이를 향한 내 메시지가 잘못되었기에 아이는 계속 어긋난 단추를 끼우는데 온갖 노력과 애씀을 다하고 있었다. 그 마지막은 볼품없는 완성품이 될 것임을 스스로 모른 채 그저 주어진 것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엄마의 기대와 기쁨을 채워주고 싶었기에. 엄마의 메시지를 들으면 자기 삶도 좋아질 것을 맹목적으로 믿으면서. 나는 그렇게 아이를 조종하고 있었다. 나의 사랑과 기대를 갈구하는 아이에게 그것을 볼모로 잡고 이 엄마가 원하는 것을 채워주면 줄 수 있다고 무언의 협박을 쏟아붓고 있었다.
극장에 들어가서 근사한 영화를 볼 것을 기대했는데 앞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서기 시작했다. 도무지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일어서니 나도 일어서야 할 것 같았다. 혼자만 고고하게 앉아서 영화를 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나도 일어서서 누구보다 그 영화를 잘 보겠노라고 기를 쓰며 사나운 욕심을 부리고 있었다. 소위 대한민국 사교육 현상을 극장 효과라고 부른다.
많은 이들이 당연하다고 선택하는 넓은 길을 두고 좁은 길로 가겠다고 유유히 걸어갈 배짱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잘하니 자꾸 욕심이 생겼다. 거슬러 올라가 내 마음과 내가 향하는 최종 목적지가 무엇인지 면밀히 살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잘 키우고자 하는 마음이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알고 아이도 알았다.
아이에게 앞으로는 절대로 "공부를 잘하는 것이 최고로 중요한 것이야. 원래 인생은 힘들기에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야."라는 말과 제스처를 표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극장에서 혼자 앉을 용기가 없다면 아예 그 극장에서 나오는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잘못된 것을 알고 비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비난에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아직은 혼돈의 아노미 상태이지만 아이와 다시 첫 단추를 끼워보려고 한다.
아이가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존귀한지 깨닫고 그 안에 내재하여 있는 잠재력을 발견해서 세상에 홀로 당당하게 자립할 수 있는 길을 택해보려고 한다. 이 글이 첫 기록이다. 앞으로 아이와 걸어갈 그 걸음을 하나씩 기록해보겠노라.
"비전은 꿈과 같아서 우리가 뭔가 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다." -사이먼 시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