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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은 통한다니깐

by 세리

연말은 연말인가 보다.


인스타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의 책 어워즈를 뽑는 챌린지를 하고, 속해있는 단체에서는 한 해 동안 감사했던 일들을 고백한다. 내가 읽은 책이 나의 우주를 형성했고, 나를 거쳐간 모든 일들이 나를 성장케 했던 한해였으리라.


아이들도 각각 학교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마지막 갈무리를 하고 있다.


각각 ‘꿈끼 발표회’란 이름으로 각자의 재능을 뽐내는 것으로 한 해의 마감을 시작했더랬다. 큰아이는 친구들과 유명 아이돌 곡을 개사해서 친구들과 직접 노래도 부르고, 가사에 맞춰 직접 영상을 찍었다. 그렇게 모아 온 수많은 영상과 노래를 하나의 작품으로 편집하는 과정은 옆에서 보기에도 녹록지 않은 힘든 작업이었음에도 아이는 홀로 즐겁게 묵묵히 했다.


옆에서 보는 엄마는 애가 탄 적이 여러 번이다. 친구들은 그저 노래하고 영상 찍는 일만 할 뿐, 막상 힘든 작업은 딸아이가 혼자 몇주 간 붙잡고 있었으니 속이 탈법도 했다. 주변 정리는 전혀 못 하는 녀석이 또 자기 작품에 대한 완성도는 집착이라고 할 정도로 높아서 하루에 몇 시간씩 영상 편집에만 힘을 쏟았다.


이번 일뿐만 아니었다. 5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는 조활동으로 함께 하는 과제가 꽤 많았다. 조과제를 할 때마다 아이는 다른 친구들의 두세 배 이상의 몫을 자처했다. 본인이 즐거워서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혹여 아이가 친구들에게 ‘호구’처럼 이용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조언이랍시고 이런저런 쓴소리를 한 적도 있다. 과제 분배를 할 때는 각자 해야 할 분량과 시간을 생각해보고 적당히 나눠야 한다고,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려는 마음을 버리라고 말이다. 그러나 아이는 친구들이 잘할 자신이 없다고 소심하게 말하면 ‘그럼 내가 할게’란 소리를 입에 달고 산 모양이다.


1학기 때는 선생님이 모든 학생에게 역할을 맡도록 하셨다. 청소도우미, 수학 도우미, 꾸밈 도우미 등 각자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아서 자율적으로 서로 도우라는 취지인 듯했다. 그때 아이는 ‘도서 소개 도우미’를 맡았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소개하는 역할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추천하셨고, 아이는 흔쾌히 그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좋은 역할을 맡았다고 격려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누구도 아이에게 요구하지 않았으나 아이는 매주 2권씩 책을 선정해서 스스로 게시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터넷 사용이 서툴러서 내가 도와줘야 했다. 책 표지 사진을 찾고, 그것을 편집툴로 예쁘게 꾸몄다. 책 소개 글을 쓰고, 책을 추천하는 이유 3가지를 짧은 문구로 만들어서 대미를 장식했다. 분명 아이한테도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나 점점 책을 읽는 시간보다 책 소개 게시판을 만든다고 공들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더 큰 문제는 처음에는 아이들이 게시판에 관심을 보이고 열심히 읽어줬으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심드렁해졌다는 것이다. 아이가 온종일 열심히 준비해서 학급 게시판에 게시하면 선생님과 몇몇 아이만 고생했다고 칭찬해줄 뿐, 막상 아이들은 책에 관심을 갖고 보는 것 같지 않다고 홀로 속상해했다.


2학기 때는 학급 부회장을 맡으면서 학급에서 자잘한 일들을 더 많이 맡아서 했다. 수학 기초가 부족해서 방과 후에 남는 친구 몇몇을 돕는 역할도 했다.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고 수학을 좋아해서 자신이 자처했다고 했지만 막상 본인이 공부할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에 나는 홀로 속앓이하기도 했다.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돕는 것을 가정의 우선 가치로 세우고 아이들과 지키기로 했으나 막상 아이가 그렇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늘 칭찬만 하기 어렵다는 이기적 마음에 나도 생각이 깊어졌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학급과 친구들을 위해 여러모로 애썼지만 아이는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점점 자신의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았다. 자신이 들이는 노력에 비해 친구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자신과 친해지고 싶은 친구는 점점 줄어든다고 생각하면서 급기야 자신은 성격도 모나고 재미도 없는 이상한 아이로 자신을 규정하는 데에 이르렀다. 친구 문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비하하며 자존감이 추락한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네가 한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일인지 말해줬지만, 엄마 말이 아이 귀에 제대로 와닿지 않는 것 같아서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진 게 몇 번이다.


아이는 1년 동안 스스로 많은 일을 겪으며 내적 갈등과 성장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의 첫 시작인 친구 문제로 겪는 갈등은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지만 스스로 어느 정도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다.


방학을 앞두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한 해 동안 우리 반에서 가장 고마웠거나 본받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써주기로 합시다”


선생님의 제안에 친구들 모두 큰 호응으로 따랐고, 그렇게 편지를 써서 학급 게시판에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압도적인 수로 대부분의 아이가 고맙고 본받고 싶은 친구로 큰아이를 택했고, 각자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냈단다. 그 편지를 읽는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뭉클해진다. ‘친구들도 선생님의 마음과 같았구나’라며 짧은 메모와 선생님이 준비한 선물을 아이는 내 앞에 내밀었다. 흥분하지 않고 잠잠히 건네는 쪽지와 선물을 받고 아이보다 내가 더 감동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와, 결국 네 진심이 통했구나! 친구들도 다 알고 있었던 거야. 네가 얼마나 수고하고 애썼다는 것을…. “


“그러게요. 모르는 줄 알았더니 애들도 알고 있었네요.


역시 나는 멋져!”


일 년 내내 스스로 자신감을 잘 비추지 않았던 아이 입에서 ‘역시 나는 멋져’라는 말이 나왔다.


아마 아이는 앞으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 이상을 더 하겠다고 늘 자처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주변에서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말을 듣지 못할 때가 더 많을 수도 있다. 5학년 친구들에게는 결국 진심이 통한 듯 하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진심이 통하기란 어렵다는 것을 인생 선배로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가 한 일에 누구보다 스스로 후하게 칭찬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진짜 멋져!”라고 말이다.


1년 동안 더 멋져진 아이를 꼭 안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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