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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바다

by 세리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선뜻 평일에 여행을 감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유달리 학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는 학교를 빠지고 가족 여행을 가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둘째보다 다소 빡빡한 하루의 공부를 소화해야 하는 큰아이도 그 루틴을 잠시 탈출하는 묘미를 반기는 듯하면서도 다시 돌아왔을 때 빈 구멍을 다시 메꿔야 하는 수고를 알기에 주저한다. 결국 주말을 이용하는 여행뿐이지만 일요일은 교회를 가야 하는 우리네 정체성을 지켜야 하기에 온전한 1박 2일도 사실 쉽지 않다. 그럼에도 따스한 봄빛이 우리의 마음을 일렁이고, 흐드러져 피어 꽃비를 날려주는 벚꽃의 부드러운 유혹을 뿌리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일찍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우리, 가보자!


짧은 1박 2일 일정에 걸맞지 않게 편도 3시간이 넘게 걸려야 도착하는 강원도 고성이 우리의 여행지였다. 한두 시간 거리의 여행지를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마음이 동하질 않았다. 봄에 피는 꽃은 동네에서도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지만 봄 바다는 지금 아니고는 볼 수 없다고 우기며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매번 새로운 맛집을 찾아가거나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새로운 동네를 탐색하길 좋아하는 남편과 달리 나는 매일 먹던 음식이 좋고, 늘 가던 곳이 좋은 사람이다. 여행지의 맛집과 놀거리는 늘 남편이 알아서 계획하고 알아보는 편이지만 이번만큼은 가봤던 곳 중에 또 가고 싶은 곳을 가자고 청했다.


지난가을쯤에 속초 여행을 왔다가 카페를 찾아 잠시 들렀던 아야진 해변이 두고두고 마음을 들뜨게 했다. 모래가 펼쳐진 바다이면 다 비슷하다고들 하지만 분명 동쪽과 남쪽 바다가 다르고, 서쪽 바다의 느낌은 더더욱 다르다는 것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봄날의 불청객인 미세먼지가 그나마 도달하기 어려운 동쪽 바다는 하늘의 쪽빛이 그대로 바다 깊이 투영되어 그만의 온전한 빛깔을 뿜어낸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 그리고 구름의 모양과 농도에 따라 바다 빛깔은 어제와는 또 다른 오늘의 색을 만들어낸다. 가을에 만났던 아야진은 서늘한 바람과 애잔한 파도, 그리고 주변의 물들어가는 가을빛 채색에 보조를 맞춰 딱 알맞은 푸르름을 머금고 있었다. 한더위가 물러간 때라서 아이들은 물속에 들어가지 못함을 아쉬워했지만,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떠밀려오는 파도를 함께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을 누렸다. 과연 봄날의 바다는 어떨지 궁금했다.


봄날의 아야진은 나그네의 외투를 서로 벗기려고 사투를 벌이는 해와 바람의 싸움 한복판과 흡사했다. 강렬한 봄빛과 앙칼지게 시샘하는 바람의 싸움판에서 나그네는 괴로웠을지 몰라도 우리는 흥겨운 춤판을 벌이고 싶은 지경이었다. 그 전주에 때 이른 더위가 덮쳤지만, 다시 꽃샘추위가 한차례 지나간다는 예보에 아이들 옷을 두툼히 입혀 왔다. 아이들 앞에서 앙칼진 바람은 맥을 추지 못했다. 완벽한 태양의 승리였다. 아이들은 껴입은 외투를 하나둘 벗어젖히고 바짓단을 몇 단으로 접어 무릎 위로 야무지게 추켜 올렸다.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 던진 채로 모래사장으로 냅다 뛰어갔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래사장을 주 무대 삼아 배경에 우리는 그늘막 텐트를 설치했다. 여유 있게 품어주는 아야진 해변은 관광객들에게 너그럽게 그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열어두었다. 그 넉넉함에 다시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던 이유도 컸다. 우리만의 아지트를 설치하고 아이들이 앉을 수 있는 캠핑 의자를 놔준 후에 본격적으로 봄 바다를 감상했다.









봄을 유순하다고 얕보면 큰일이다. 김유정의 <동백꽃>에 등장하는 점순이처럼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앙칼지게 공격하는 것이 바로 봄의 매력 아니겠는가. 봄날의 바다를 바라보며 소설 <동백꽃>에서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소년에게 얄궂게 몰아세우는 점순이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당최 왜 그리도 점순이가 자기네 닭을 괴롭히고 자신을 못살게 구는지 모르는 소년은 결국 점순네 닭을 때려죽이고 겁이 나 울어버린다. 그때 점순이가 등장해서 소년을 달래주다가 어깨를 짚고 쓰러져 둘은 동백꽃 속에 파묻힌다. 고등학교 시절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스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혼자 세상을 다 알고 있는 어른인 척했지만 얼마나 순진하고 철없던 시절이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동백꽃은 나무에서 피어나는 것인데 동백꽃 속에 파묻힐 정도면 동백꽃이 만개한 후 우수수 떨어질, 딱 이맘때의 봄이 아니었을까 싶다.


청량한 봄 바다 위로 윤슬이 반짝이는데 이상스레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쳐도 내쳐도 또다시 밀려오는 저 깊은 곳의 거친 파도가 꽃잎처럼 밀려왔다. 살아도 살아도 또 살아내야 하는 하루는 지쳐있음에도 어김없이 다시 찾아온다. 잘 살아내야 한다는, 아이들을 잘 키워내야 한다는, 그리고 뭔가를 이루고 싶다는 나의 갈망은 밀려오는 무기력과 게으름에 부딪혀 수없이 쓰러지곤 한다. 그런데 결국 나를 살아내게 하는 것은 그렇게 꾸역꾸역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있을 때이다. 그것을 맞서려고 할 때는 도무지 힘이 없어 고꾸라지지만, 그것과 같은 방향으로 서서 맞이하노라면 어느새 그 속에 잠잠히 유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무런 근심 없이 봄빛의 호위를 받으며 그저 웃고 뛰노는 두 아이를 바라보며 그 안에서 받는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저 값없이 누리고 있는 이 봄날의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뿐이다.


동백꽃이 뭉게뭉게 떠다니는 봄날의 바다에 잠겨 그 부력에 두둥실 떠다녔다. 어찌 이 하루에 감사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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