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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일출

by 세리

해변에서 노는 것 이외의 다른 계획은 쓸모가 없었다. 이른 점심을 먹고 해변에 도착해서 해가 질 때까지 아이들은 다른 곳으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계획이 없어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지 않는 여행이라면 이미 그 의미를 넘어선 것이리라.




해변에서 봄 바다를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통일 전망대를 올라가 보거나 가까이 있는 유명한 카페를 가보려는 계획을 느슨하게 지니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빽빽한 계획표를 작성해 놓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기쁨이 되질 못함을 알았다. 그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상비약을 챙겨가지만, 그것을 쓰지 않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해와 바람의 싸움은 여전한 듯 보였지만 바다 위에서 작렬했던 태양은 그 기세가 조금씩 기울고, 점점 맹렬하게 불어대는 바람의 공격이 거세졌다. 싸움판 구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리멸렬해지는 법. 슬그머니 아이들과 조용히 물러나 숙소로 이동했다.


프런트에서 방을 배정받고 밀려오는 노곤함을 짊어지고 각자의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문구를 발견한 것은 아이가 먼저였다.


‘삼포해변의 장관, 일출을 감상해보세요’


“엄마, 우리 내일 일출봐요!”

“일출이 뭐야?!“

한 번도 일출을 본 적이 없는 둘째가 언니의 제안에 되물었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아이들과 줄곧 챙겨봤던 것은 일몰의 장관이었다. 일몰은 기후의 변덕에 영향을 받지 않고 비교적 쉽게 누리는 호사다. 부러 서울의 대학로 어딘가에 일몰을 보러 간다고 큰아이와 둘이 주말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던 남편이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일출 시간표를 보더니 경악하는 표정을 먼저 지었다. 4월의 일출을 보려면 적어도 5시 20분까지는 해변으로 가야 했다. 아침잠이 많고 특히나 여행지에서는 아침의 게으름을 즐기는 것이 낙인 사람에게 5시는 도전하기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두 딸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을까. 남편이 선선히 함께 가보자 했다.


의지와 마음을 모아 새벽에 일어나면 일출을 볼 수 있을거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편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어렵지 않은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일출을 보려고 늘 시도하곤 했다. 어릴 때 부모님과 갔던 여행에서, 그리고 수능이 끝나고 친한 친구와 단둘이 정동진으로 떠났던 여행에서도.




친구와 인생의 마지막 시험이라 믿고 싶었던 수능을 끝내고 떠난 여행지에서 우리는 일출을 보기로 했다. 수능 가채점 결과를 이미 알고 난 뒤라서 우리의 미래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 막막함에 함께 우울해하고 있던 터였다. 새날을 열어줄 태양이 떠오르는 일출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도 그렇게 빛날 것이라 억지 믿음이라도 챙기고 싶었다. 어른도 학생도 아닌 그 경계 어디쯤 서 있던 우리 둘은 호기롭게 새벽 알람을 맞췄다. 그러나 밤새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알람은 필요 없었다.


밤새 수다를 떠느라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12월의 심연 속 두텁고 새까만 겨울 바다에 보슬비까지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 말고도 일출을 보러 몇몇 사람들이 해변에 몰려들었지만 결국 뜨는 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비가 내려도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련만 태양은 그 존재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날씨도, 매일 뜨는 태양마저도 우리의 기대를 철저하게 내친다면서 빗속에 서서 그저 짙은 한숨과 서툰 욕지거리만 내뱉고 돌아왔었다.


의지만 있으면, 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들 말한다. 근사한 성공을 이룬 인플루언서들이 그렇게 말해주면 더욱 신망이 생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 또한 아이들에게 의지와 성실함을 부추길 수 있는 동기부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그것의 쓸모를 누구보다 알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성과가 오롯이 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달성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출을 보려는 간절한 의지와 애씀이 있었지만, 그저 속수무책으로 끝난 것처럼 우리의 기대가 허탈한 결론에 닿는 경우가 실상 더 많지 않은가.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은 그저 나의 의지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닐 텐데 그 결과의 책임을 오롯이 나의 부족이라고 여기면서 자책하고 낙심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던가.




일출을 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큰아이는 알람 소리보다 먼저 눈을 뜨고 우리를 깨웠다. 부디 아이의 기대가 실망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며 창밖을 내다봤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짙은 안개나 미세먼지만 방해하지 않는다면 일출을 감상할 수 있을 터였다.


우리보다 더 간절하고 부지런한 이들이 해변에서 삼각대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평선 너머로 태양의 화려한 등장을 예고하는 신호로 주홍빛 띠가 선명하게 둘려 있었다. 그 앞에 놓인 큰 바위들이 장엄한 순간을 가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조용히 그 순간을 기다렸다. 우리들의 밤이 자신들의 놀이터가 되었을 별들은 놀다 지쳐 제집으로 돌아갔는지 반대편 하늘에는 흐릿한 그믐달만 슬며시 놓여 있었다.


일출에는 처음부터 큰 관심도, 기대도 없었던 둘째는 희뿌연 해변에 군데군데 박혀있는 조개껍데기들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내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최고의 놀거리를 발견하는 아이의 능력은 볼 때마가 경탄스럽다.


한참을 새벽바람을 맞으며 기다렸다. 정성을 다한 공연일수록 기다림의 시간이 더 설레는 법. 드디어 저 멀리서 축포가 터졌다. 사방으로 퍼졌다 잠시 뒤 사라지는 인공의 불꽃놀이와는 차원이 다른 것. 태초에 조물주의 손을 빌려 빚어진, 그 경이로움을 온전히 담고 있는 빛이었다. 소리 없는 빛의 아우성은 새벽의 광활한 무대를 빈틈없이 채울 완벽한 주인공이었다. 음향을 맡은 파도 소리는 그 등장을 더욱 웅장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카메라 성능이 좋아졌다 한들 그 빛깔과 번지는 빛무리는 작은 핸드폰에 담길 수 없었다. 조개껍데기를 줍는 데 열중했던 아이는 어느새 제 아빠 품속에서 화려한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기대가 텄던 큰아이는 맑은 얼굴로 솟는 해를 감상하고 있었다.


분명한 속도로 자신의 길로 걸어 나오듯 태양은 떠올랐고, 내 아이를 품었다. 이제는 내 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진 아이는 빛 속에 쏙 안겼다. 제아무리 몸을 부풀리고 거창하게 만들어본들 태양 앞에서는 그저 어린 아가에 불과한 우리. 나의 의지와 노력을 몇 곱절 크게 키운다 해도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 내일이 온다면 그저 허망에 다다르는 것을 일출 앞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떠오르는 태양 앞에 간절한 마음을 모았다. 내일도 부디 우리에게 그 빛을 내어달라고, 그 빛을 받아 또 하루를 살아가게 해달라고 말이다.


4월의 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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