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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 아이

봄에 만난 가을

by 세리


오랜만에 펼쳐 든 책 속에서 마른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봄에 가을이 놀러 와 앉은 듯 반가웠다. 떨어진 낙엽들이 바스락 뭉개지지 않도록 다시 조심히 주워 책 위에 올려놓았다. 이 낙엽들은 언제 주웠던 것일까.



둘째 희서가 4살 무렵이었다. 볕 좋은 가을날이었고, 가을 햇살이 간질이는 오후에 아이들은 응당 밖으로 나가 뛰어놀아야 하던 때였다.


당시 다니던 교회는 서울 상도동 복지관을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 오후에 어른들은 모여 성경 공부를 하고 있었고, 몇몇 선생님들은 놀이터에 나가 놀고 싶어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이끌고 근처 놀이터에 다녀온다고 했다. 가까운 놀이터는 복지관에서 복잡한 사거리를 지나 좌측으로 아찔하게 높이 나 있는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만 찾을 수 있었다. 복지관은 주택 단지와 가깝지 않아서 멀리 떨어진 그 놀이터가 그나마 지척이었다. 지리에 익숙한 큰아이들은 삼삼오오 자기들끼리 갈 수 있었지만, 어린아이들은 부모나 선생님이 동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었다. 날이 좋은 날이면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동행해서 늘 갔던 곳이라서 안심하고 아이를 맡겼고, 주어진 자유에 감사하며 어른들과의 시간을 보냈다.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났고, 하나둘씩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복귀하는 듯 북적이는 소리가 멀리에서부터 들려왔다. 당시 7살이었던 첫째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엄마, 희서가 없어졌어요. 교회에 와 있어요? “

“희서가? 희서가 교회에 혼자 어떻게 와… 같이 놀고 있던 거 아냐?”


헐레벌떡 뒤따라온 선생님 한 분이 얼이 나간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설명했다.


“희서 여기에 없어요? 오늘따라 놀이터에 애들이 진짜 많더라고. 분명 애들을 다 챙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가자고 다 모이게 했더니 희서가 없는 거야. 언제부터 없어졌는지 모르겠어. 분명 중간에 놀고 있는 거 보고 있었는데…. 애들도 자기들끼리 논다고 희서가 없어진 줄도 모르고. 어쩜 좋아… 나는 교회까지 혼자서 왔나 하고 생각했는데. 교회로 안 왔어요?”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앉아있던 어른들이 벌떡 일어났다. 수없이 다녀본 놀이터지만 4살 아이가 혼자 놀이터에서 복지관까지 찾아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로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지 알 수 없는 막막함과 무서움에 손이 먼저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른들은 흩어져서 각자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문제는 아이를 잃어버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둘이 밖으로 나가 놀이터를 중심으로 마트와 교회들을 찾아가 물어보기 시작했다.

“혹시 4살 여자 아이 본 적 있으세요?”

“이 근처에 혼자 있는 여자 아이 본 적 있으세요?”

한 곳을 지나 다른 곳을 갈 때마다 내 안의 불씨들이 사위어갔지만, 끝끝내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붙잡아야만 했다.


사방으로 흩어져 아이를 찾는 어른들에게 수시로 연락을 했지만, 그 어디에도 아이는 없었다. 어디로 꼭꼭 숨었니,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는구나. 유난히 숨바꼭질을 좋아하던 아이였기에 혼자서 모든 어른을 상대로 놀이하고 있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못 찾겠다 꾀꼬리’를 하면 당장이라도 눈웃음을 날리며 나타나야 하는데 이 녀석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확신이 들자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어서 갔던 길을 뛰고 또 뛰면서 아이 이름만 하염없이 불렀다. 함께 찾던 남편은 이런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경찰서에 전화했다.


“경찰서죠? 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근처에 신고 들어온 것이 없나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남편은 112에 전화를 한 듯했고, 아이의 신상을 말했다. 하필 4살 아이에게 전화번호가 새겨져 있던 목걸이도 채워놓지 않았음을 깨닫고 나의 허술함에 가슴을 쳤다.


“저희도 정확히 잃어버린 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 선생님들과 함께 놀이터에 갔다가 아이가 혼자 어디로 가는 것을 못 본 것 같아요. 그때부터는 4시간가량 흘렀습니다. 네 바로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전화를 끊은 남편은 경찰에서 주변 지구대에 확인하고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고 말했다.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자 그때부터 ‘아이를 잃어버렸다’라는 말이 가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심장이 어디에 자리 잡은줄도 모른 채 당연하게 숨을 쉬고 살았는데 그 심장이 땅 밑으로 푹 꺼져버리는 실감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가슴을 내리친다는 고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숨이 쉬어지질 않아서 가슴을 치고 있었고, 가슴을 치는 일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력감이 내 온몸을 휘감으며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옆에서 남편은 내 손을 잡고는 계속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크게 심호흡해, 괜찮아. 찾을 수 있을 거야. 나쁜 생각 하지 말고 기다려 보자.”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났지만, 전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기다릴 수 없어서 놀이터와 반대 방향으로 다시 달려가서 주변을 살폈다. 규칙 없이 복잡하게 자리 잡고 있는 주택단지들 사이를 오가며 샅샅이 뒤졌다. 땅 밑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아이의 흔적은 좀처럼 찾을 수 없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남편의 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아, 진짜요? 거기까지요? 네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은 전화기를 붙잡고 연방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했다.

“희서 찾았데? 어디 있데?”

“장승배기역 근처 지구대에서 데리고 있다나 봐. 이 근처가 아니라 찾느라 좀 걸렸다고. 빨리 가자.”


차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 우리는 서둘러 지구대로 갔다. 도로는 시원하게 뚫리지 않고, 신호마다 걸려 발을 동동거리게 했다. 대체 어디에서 길을 잃어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아이를 찾았다는 말에 안도했지만, 전후 사정이 도무지 그려지지 않아서 멈춰있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며 나를 재촉했다. 지구대에 도착해서 경찰서 문을 열고 “희서야!”를 불렀다.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들은 “아이고, 드디어 엄마가 오셨나 보네요. 아이 저기에 잘 있어요. “ 했다.


아이는 지구대 안쪽 사무실에서 경찰관들 사이에 앉아서 퉁퉁 부은 눈으로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무서워해서 어째야 하나 했는데… 여기 애 키우는 젊은 아빠가 콩순이 보여줄까, 하니까 바로 눈물이 그치더라고. 그때부터 콩순이 보면서 요구르트도 먹고 초코파이도 먹으면서 잘 지냈어요. 애가 똘똘하게 지 이름도 말하고, 엄마 이름이랑 아빠 이름이랑 다 말하는데 전화번호만 몰라서 우리도 기다리고 있었죠.”


콩순이에 빠져있던 아이는 우리가 들어가자 반가운 얼굴로 안도하는 듯하다 다시 울상이 되었다. 아이를 품에 안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매일 안고 비비던 내 아이를 품에 안는 것이 그토록 놀라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아이가 어디 길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신고했나 봐요. 우리 직원이 가기 전까지 할머니가 데리고 있다가 인계를 해줬다네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 동네에 이상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 할머니 연락처는 없을까요? 저희가 감사하다고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연락처는 못 받은 것 같아요. 저희가 감사하다고 했으니깐 걱정 말고 얼른 아이 데리고 돌아가세요. 엄마도 아이도 놀란 것 같은데…”


우리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아이를 안아 차에 태웠다. 카시트에 앉은 아이 옆에 앉아서 자그마한 손을 계속 조물락거리고 볼에 비볐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었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차에 타자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물도 먹고 싶고, 엄마도 보고 싶어서 혼자 교회에 가려고 했거든. 그 마트에서 쭉 내려왔는데 교회가 안 나오고 이상한 길이 나와서 다시 놀이터로 가려고 했는데 또 이상한 데가 나오고… 그래서 할머니가 엄마 어딨냐고 물어서 교회에 있다고 했는데, 그 할머니가 우리 교회 못 찾아서 경찰 아저씨가 왔어. 아저씨가 요구르트도 주고 콩순이도 보여줘서 안 무서웠어. 그래도 엄마 보고 싶었어.” 아이는 상황을 다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얼마 안 가 잠이 들었다.


평생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한 그날은 아마 잊히지 않으리라. 그 기억은 아이도 충격이었는지 10살이 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가끔 말한다. 이제는 무서웠던 기억보다 재미있었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을 생각하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날이 지나 얼마 있지 않아 두 아이와 아파트 단지를 거닐며 가을 낙엽을 주웠다. 아이 인생의 4번째 맞는 가을, 신록이 알록달록 물들었던 그 계절을 함께 간직하고 싶었다. 잃었던 아이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를 드려야 할 이들이 너무도 많았음에도 제대로 인사조차 못 한 것 같은 송구스러움이 밀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저 해맑게 웃고 가을볕을 받으며 뛰노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를 키우는 것이 그저 나 혼자의 노력으로 가능하지 않음을 몸소 깨달았다. 농익은 단풍잎이 저절로 그리될 수 없다. 거기에는 대가 없이 내리쬐는 빛과 바람, 적절한 비, 그리고 생명을 돌보는 이의 은총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와 같은 것임을 절실히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와 함께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고 감사하는 것뿐임을 낙엽을 주우며 마음 깊이 새겼다.


그때의 그 마음을 기억하고자 집에 돌아와 가장 두꺼운 책 깊숙이 주운 낙엽을 정성스레 꽂아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일상을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그 마음을 놓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되찾은 아이와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자고 했던 그날의 다짐을 다시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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