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층에 살 때는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이제는 23층으로 이사를 왔는데도 여전하다.
대체 왜 이리도 변기는 자주 막히는 것일까.
수압이나 변기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 집에서 유독 한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면 막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제일 조그만 녀석이 먹는 것도 무섭게 먹는데 그나마 그 몸을 유지하는 것은 밖으로 배출하는 양도 엄청난 것이 분명하다. 변기가 막혔다고 할 때마다 난데없이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이의 배설물을 봐야 한다는 두려움의 이상 징후일까, 아니면 또 같은 상황을 마주한 짜증 스트레스 지수가 폭발해서 기인한 현상일까. 아무튼 좋은 느낌은 아니다.
비위가 약한 나와 남편은 아이가 “변기가 막혔다!”라고 외치면 서로의 눈빛을 외면한다. 누군가는 해결사로 나서야 하는데 일단은 뒤로 물러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한다. 공중 화장실에서 변기 뚜껑을 열었을 때 예고 없이 강력한 스매싱을 맞는 듯한 충격을 경험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막혔다는 변기 뚜껑을 열어보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변기를 막히게 한 범인은 기저귀를 찰 때도 남달랐다. 큰아이도 기저귀를 찬 시기가 있었고 똥기저귀를 간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을 텐데 둘째의 기저귀는 두려울 때가 많았다. 일명 똥 테러를 참 많이도 당했다.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지, 먹던 분유나 이유식이 이상했던 것인지 참 고민도 많았다. 바지를 벗기면서 풍겨 나오는 강력한 냄새, 기저귀를 벗기지도 않았는데 이음새 주변으로 노랗게 스며든 자국을 보면 본경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넉다운당한 느낌이었다. 그럴 때는 남편과 내가 동시에 아이의 머리와 다리를 들고 화장실로 직행하곤 했다. 재빨리 기저귀를 벗겨 큰 공격을 막아내고 샤워기를 틀어 남은 잔여물을 처리하는 식이었다.
기저귀를 떼고 스스로 용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기특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숙명은 종종 아이의 배설물 상태를 체크해야 하는 것을 벗어날 수 없었다. 보통 어린아이의 건강 상태는 그것으로 체크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말로 자기 배출물의 형태와 질감을 설명하기 전까지는 일을 보고 난 후 그것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 시기가 이제는 지나도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이 아이는 종종 우리에게 자신의 날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니 참 난감하다.
남편이 부재중일 때는 고스란히 내가 그 해결사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재난 상태를 대비해 남편은 특수 뚫어뻥을 구비했다. 일반 뚫어뻥으로는 머리카락이 젖도록 몸을 움직여 뚫어보려 해도 당해낼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수 장비를 챙겨 용맹하게 화장실로 들어간다. 흡사 전투장에 입장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뚜껑을 열어 특수 장비를 장착해 재빨리 해결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많다. 흡사 17대 1로 싸워 이긴 심정으로 겨우 막힌 변기를 뚫고 나면 그제야 어딘가에 숨어있던 범인이 나타나 혀를 쑥 내민다.
“엄마, 미안… ”
막힌 변기를 뚫을 때마다 나의 아버지가 생각난다.
고향에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아빠도 그곳에서 일하며 지낼 때는 아빠와의 추억이 참 많다. 이후 대전으로 이사를 오고 엄마와 아빠가 주말부부를 하던 시기가 꽤 길었다. 이상하게 그때를 생각하면 아빠와 좋은 기억이 거의 없다. 매서운 사춘기의 폭풍을 지나던 시기였고, 아빠도 당시 직장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이 바로 변기의 추억이다.
유난히 깔끔하던 분이었다. 이발하는 주기, 목욕탕을 가는 횟수까지 정확했던 아빠는 늘 우리가 화장실을 쓰고 나온 후에 잔소리가 심했다. 당시 긴 머리를 목숨처럼 지키던 시기였으니 여자 셋이 살던 집의 목욕탕 배수구가 어땠을지는 짐작이 된다. 아빠는 샤워하거나 머리를 감으면 뒤처리하고 물기까지 닦고 나오라고 했다. 주말 부부였으니 아빠가 있었던 주말에는 아빠의 잔소리에 못 이겨 얼추 뒤처리 하는 흉내를 냈으나 주중이 되면 다시 도루묵이었다. 그러다 주말에 아빠가 왔을 때도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샤워만 하고 나오면 그렇게 뒤에 대고 잔소리하셨다. 그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악을 쓰며 대들다가 호되게 맞았다. 맞으면서도 얼마나 억울했던지. 대체 왜 화장실을 쓰고 물기를 닦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다음 사람이 샤워하면 또 물기가 생기는 데 하는 마음이 악에 바쳐 차올랐고, 때리는 아빠를 독하게 째려봤었다. 그러고는 더욱 아빠와 대화가 사라지며 아빠가 오는 주말이 오는 것이 싫어질 지경이었다.
그런 시기에 아빠와 단둘이 있는데 변기가 막힌 것이다. 일을 보고 물을 내리는데 물이 내려가지 않고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다소곳하게 변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 폭포수처럼 부풀어 오르며 말 그대로 대참사가 벌어졌다. 혼자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어 “으악‘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왔다. 거실에 있던 아빠는 무슨 일이냐며 화장실로 다가왔고, 나는 그 상태를 아빠에게 보이는 것은 죽기보다 못할 일이라며 아빠를 막았다. 그럼에도 대책은 없었으니 결국 뒤로 물러났고 아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빠는 화장실 밖에 뻘쭘하게 서 있는 나에게 봉지를 하나 달라고 하셨다. 봉지를 내밀었더니 아빠는 맨손으로 화장실에 난자하게 퍼진 배설물을 손으로 주워 담았다. 아무 말 없이 그저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는 표정으로 말이다. 그렇게 막힌 변기를 뚫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락스를 풀어가면 싹 청소하고 나오는 아빠를 계속 지켜봤다. 그때 그 모습과 느꼈던 마음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내 아이가 쓰고 막힌 변기를 뚫을 때마다 그때 아빠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엄마가 됐음에도 차마 맨손으로는 그것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당시 아빠의 맨손을 떠올린다. 내 아이처럼 혀를 빼꼼하고 “아빠 미안…”이라고도 왜 말하지 못했을까.
막힌 변기를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만 참 이상도 하지. 변기가 막혀서 누군가를 이렇게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내 아이도 언젠가 제 손으로 자신의 아이 때문에 막힌 변기를 뚫을 때면 나의 뒷모습을 생각해 주려나.
그전까지는 열심히 뚫어봐야지, 뭐 별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