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순종>이란 영화를 봤다.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였다. 레바논과 우간다에서 선교사로 계시는 두 가정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고 김종성 목사님은 무작정 우간다로 가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았다. 오래된 내전의 상흔으로 그 곳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곳이었다.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분이 그곳에서 피부색도,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결심에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 뭔가 운명처럼 다가와서 거부할 수 없는 느낌으로 시작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고 의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대상이 항상 사랑스럽고 어여뻐서 감정이 충만한 채로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사랑이 차고 넘쳐흘러서 강같이 흘러 상대에게 자연스레 흘러갔으면 좋겠지만 내 안의 샘도 넉넉하지 못하다. 끊임없이 펌프질을 해줘야 겨우 샘이 솟아난다. 그래, 그 펌프질을 해야 하는 것. 그것은 나의 의지이고 결심이다.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레 모성애가 샘솟는 것인 줄 알았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끔찍이도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잔혹하게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엄마들이 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를 낳았어도 나는 여전히 나로만 존재했다. 새롭고 낯선 생명이 내 손에 주어졌을 때 나는 감격했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부디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사랑이 날마다 샘솟길 바랬다. 그러나 아이가 제때 자주지 않고, 잘 먹지 않고 이유 없이 징징대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미움들이 뻗어 나왔다. 그러한 감정에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며 피하려고 할 뿐,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안에 커진 마음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책임감이라 부를 수 있는 감정이었다. ‘내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을 육아의 목표로 삼고, 장착된 성실함을 무기로 열심히 키워보려 발버둥 쳤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밤마다 나와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를 키우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들의 고민을 읽고 또 읽으면서 내 아이와 대입하고 비교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비교의 뚜렷한 실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보고 싶지 않아도 남의 집 아이들은 어떻게 크는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이전보다 더 확실하고 수많은 정보가 입력되는데도 나는 여전히 불안했다.
도대체 엄마를 불안하게 만드는 그것은 무엇일까.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매일마다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이 충만함이 아니기에 오는 자책도 있다. 혹여나 나의 무지와 사랑의 결손으로 아이가 잘 자라지 못할까 봐 엄마는 두렵다. 분명 최선의 사랑을 주었음에도 더 주지 못했음을 후회한다. 사람은 각자 다르게 생긴 것처럼 각기 다른 모양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주게 된다. 늘 온화하고 따뜻하고 품격 있는 우아한 사랑을 주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생겨먹지 못한 엄마에게 그 목표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내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그것을 아이에게 주지 못하고 있다고 좌절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실상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손에 잡히지 않음에도 그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은 스스로 보지도 만지지도 못해본 값비싼 보물을 주겠노라고 다짐하는 꼴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는 부족한 엄마라고 자책하며 힘들어한다.
내 모습이 그러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랑은 보이지 않는 허상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은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는 것이다. 상대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그리고 내 관심이 상대에게 향하고, 그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두 번 째이다. 그리고 그 필요에 내가 줄 수 있는 것으로 채워주는 것이다. 착각하면 안 된다. 사랑은 내가 원하고 목표하는 이상을 추구하며 도달하는 경주가 아닌 것이다. 누가 먼저 그 목표점에 도달하는지를 경쟁하는 것도 더구나 아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시선이 가 있어야 하고, 그 필요를 알기 위해 눈과 귀를 열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영화 <순종 > 출처: 네이버 이미지
엄마의 사랑도 이와 같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의 시선은 아이들에게 향해 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걱정하고 불안해하지만 우리는 그 시선을 아이들에게서 떼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그 아이를 향한 올바른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아이를 사랑하겠노라 결심했다면 엄마로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생긴 모양인지 아이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우리 안에는 원래 날마다 사랑이 샘솟지 않는다.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에 휘둘려서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서 무엇이든 애쓰고 있다면, 그 작은 샘에서 물이 솟아나길 계속 펌프질하고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자.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