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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04. 2023

아이를 두고 비교질을 할 줄이야!

처음으로 샀던 스마트폰은 결혼하고 얼마 후였다. 당시 남편과 처음 산 아이폰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 손바닥보다 작은 상자가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이 준 편리함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역시나 작은 상자 안으로 엿볼 수 있는 타인의 세계가 우주만큼 넓어졌다는 것이다. 손 안의 스마트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업데이트되는 이웃의 일상에 곧바로 접속해 준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당시에는 페이스북과 함께 카카오스토리가 인기였다. 육아맘들은 카카오톡과 바로 연동되는 카카오스토리에 육아 일상을 담아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 사진을 어딘가에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 허영을 적당히 채워주는 공간이었다. 나도 카카오스토리에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렸다.


아이를 키우면서 항시 대기조로 아이 옆에 붙어 있는 일상에서 손 안의 핸드폰은 엄마의 무료한 삶에서 곧바로 다른 세계로 이탈하게 해 준다. 문제는 타인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아이는 내 아이보다 훨씬 예쁘고 똘똘하고, 그 아이가 기어 다니는 공간은 우리 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려하고 정갈하다는 것이다.




아이가 기어 다닐 수 있자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아이와의 공식적인 첫 외출이었다.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아이가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겠는가. 진짜로는 엄마인 나에게 공식적인 외출이 필요했다. 아이가 아닌 어른 사람이 만나고 싶었다.


문화센터에서 만난 엄마들과 점차 가까워지면서 SNS를 공유했다. SNS의 세상은 현실의 삶과 분리된 채 존재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상은 늘 같은 루틴으로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하지만, SNS에 기록된 육아 사진은 늘 새롭고 이질적이었다. 가장 반짝이는 순간을 포착해서 올리기도 했고, 그런 순간이 없는 날은 부러 그런 순간을 기획해서 만들어 올리기도 했다. 비단 나만 그렇게 만든 공간이 아닌 것을 알았음에도 SNS 속 옆집 엄마의 육아는 나의 것보다 순도 높은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그들도 연속으로 이어진 삶에서 아주 찰나의 한 페이지만 뽑아서 SNS에 올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납작해져 갔다.





아이가 어릴 때는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이 필요하다.  옹골차고 꼿꼿하게 홀로 아이를 키우기에는 아이와 단둘이 채워야 할 시간이 너무도 길다.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온종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가는 시계를 손목에 채워놓고 있는 듯하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옛 어른들의 말은 틀림없다.


평촌으로 이사를 온 이후부터 몇 번의 이사를 더 했지만, 쭉 신도시에서 살았다. 친구 중에는 결혼조차 한 이가 없었지만, 신도시에는 나보다 더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도 제법 키워놓은 젊은 엄마들이 많았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좌절감에서 버티다가 결국 아이를 잘 키워보겠노라는 가열찬 열정으로 가득한 이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진정한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순간순간 엄습하는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갖가지 정보들을 공유했다.


아이가 생후 6개월이 지난 후부터 다니기 시작한 문화센터를 시작으로 몇 개월에는 어떤 수업이 좋고, 어린이집은 몇 개월부터 다니는 것이 좋은지,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쉽사리 얻을 수 없는 알짜 정보들을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그들과 있으면 손목에 채워진 느리게 가는 시계가 순식간에 가장 빠른 시계로 둔갑하는 마법이 펼쳐지기도 했다.


다만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불쑥 밀려드는 비교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았다. 서로의 집을 오픈하고 초대할 때마다 우리 집보다 훨씬 큰 평수에 사는 이의 경제력이 부러웠고, 대화의 갈래가 뻗어 친정과 시댁 이야기를 나눌 때도 넉넉한 재력으로 지원을 받는다는 말에 기가 죽기도 했다. 아이의 발달 속도와 외모마저도 부러움을 자아내는 순간이 속절없이 밀려들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부모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틈틈이 고민하고 남편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럼에도 육아의 세계로 들어가면 비교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훅 하고 밀려드는 열등감에 고꾸라지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한 비교 의식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발화되고 있었다. 계획과 비전대로 나의 삶은 성취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아이만큼은 누구보다 제대로 키우리라는 잘못된 욕심으로 치닫고 있음을 당시는 깨닫지 못했다.

  


SNS란 세상은 다양하고 넓은 세상으로 이어주는 통로가 돼줄 것 같지만 막상 엄마의 세계에서는 시야를 더욱 좁아지게 한다. 좁아진 세계 안에서는 엄마를 벗어나 나에게 집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저 주어진 하루를 아이와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돌아보면 당시 나와 육아 동지들은 넘치게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불안했다.


아이를 낳으면 그저 사랑만 하며 키울 줄 알았다. 아이를 두고 본격적인 비교질을 할 줄이야. 엄마가 되면 아이를 두고 숙명적으로 내적 투쟁을 치러내야 한다. 아이는 엄마의 소유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매 순간 자각하고 욕심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이와 진짜 치열한 전투를 치러내야 할 때가 오는 법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그저 버티며 동지들과 함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아이는 내 품에서 떠나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데, 엄마는 여전히 아기 띠로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불안함에 종종거리며 살고 있다면 스스로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이제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때가 분명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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