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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05. 2023

블로그에 엄마표 기록 시작

역행자로 살아보기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엄마의 핸드폰은 아이의 순간을 영원히 담아두는 공간이 된다. 이제 13살, 10살이 된 두 딸은 저장해 둔 어릴 때 사진과 동영상을 자주 들여다보며 추억 놀이에 빠진다. 종종 언니 사진과 동영상이 더 많다고 시샘을 부리는 둘째로 곤욕을 치르는 날도 있지만, 어르고 달래면서 함께 그 시간으로 추억여행을 떠나곤 한다.


사진을 찍는 수고를 더해 육아 일기를 작성해 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셔터를 누르기만 하는 사진 찍기는 수시로 가능하지만, 하루 일상을 기록하는 육아 일기는 아이가 어릴 때는 차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쭉 육아 일기를 꾸준히 쓰는 이들이 있으니 존경스러운 일이다.     



둘째를 낳고 전공과 경력을 살리겠다는 각오로 대학원에서 테솔 공부를 시작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들어가자마자 시작했으니 어지간히 몸이 근질거리긴 했던 것 같다. 수요일 오후와 토요일 온종일을 꼬박 서울로 오가며 테솔 공부를 마쳤고, 과정을 졸업하자마자 학원에 취업해서 영어를 가르쳤다.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아슬아슬 워킹맘으로 지내온 지 3년쯤 지났을 때, 하루는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당시 7살 둘째가 물었다.

 

“엄마, 하나님이 진짜 내 기도를 들어주셔?”

“그럼. 당연하지.”

“에잇, 거짓말이야. 하나님은 내 기도 안 들어주셨어.”

“진짜? 무슨 기도를 했는데?”

“유치원 끝나고 할머니 오지 말고, 엄마가 계속 집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내일 또 할머니가 오지?"   


아이의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먹먹했다. 그 말 하나로 당장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지만 오래도록 아이의 말이 주변을 맴돌았고, 결국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시기에 맞춰 쉬어가기로 했다.      


일을 그만두고 두 딸과 함께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 아이들의 영어를 스스로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이후로도 쭉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지만, 막상 내 아이들 영어는 방치하고 있었다. 학원을 보낼 수도 있었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대한민국 영어 학원의 최종 목적지는 '입시 영어'에 맞춰있었고, 그것은 내가 대학에서 느낀 현실 영어와 간극이 큼을 알았기에 내 아이들만큼은 올바른 방향으로 영어를 접했으면 했다.


학원에서 가르칠 때는 잘 알지 못했지만, 당시에 이미 ‘엄마표 영어’가 영어 교육의 큰 흐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도 학원에서 만난 학부모를 통해 ‘엄마표 영어’에 관한 책과 방법을 듣게 됐다. 영어를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는 방향은 확고했지만, 학원에서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는 시간만으로는 영어 인풋(노출시간)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절감하던 중이었다. 엄마표 영어는 영어 원서를 읽고 자막 없이 영어 애니메이션을 보게 함으로써 영어 노출 환경을 집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 기본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전업맘이 되자마자 두 딸이 좋아하는 만화를 찾아 자막 없이 영상을 보여주고, 원서를 읽는 엄마표 영어를 시작했다. 마침 일을 그만두고 얼마 있지 않아 코로나19가 발발했다. 집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했고, 나는 아이 둘과 집안에 갇혀 지내는 꼴이 돼버렸다. 처음에는 도무지 그 상황이 적응되지 않았지만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아이들과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 하루를 보내게 됐다. 그리고 엄마표 영어만큼은 기록을 해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시작했던 것이 바로 블로그다.  


이전부터 육아 기록을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 블로그라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종종 듣곤 했다. 나도 육아하면서 떠오르는 궁금증과 불안감을 인터넷 초록창에 검색했고, 그 결과가 아이를 키우는 또 다른 엄마의 블로그로 열결되어 정보를 얻고 때로는 위로를 받기도 했다.  아이마다 상황이 다르고 절대적인 답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기록해 둔 블로그는 엄마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는 나무와도 같았다.


엄마표 영어를 시작하고 좋은 엄마가 돼보겠다는 집념으로 블로그에 기록을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른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의 성공담을 듣는 일은 짜릿하다. 특히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업에 성공하고, 그 영역에서 인생 선배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의 스토리를 쓴 자기 계발서들이 노골적이라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이 하나같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을 찾아서 내 삶으로 연결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된다.


최근에 인상 깊게 본 자기 계발서 중에 자청의 <역행자>가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히키코모리로 집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던 그가 현재는 많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성공한 유명인이 됐다. 그의 히스토리를 알지 못한 채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허무맹랑한 소리나 늘어놓는 사기꾼인가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역행자>를 다 읽고 나서도 바로 들었던 마음은 이미 꿈을 이룬 사람의 과도한 자기 확신서에 불과한 것 아닌가였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바로 이런 생각이 보통 사람이 지닌,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스스로 제한하고 한계를 긋는 ‘순행자’의 사고회로라고 말한다.


우리는 현실에 안주하고 질서를 바꾸고 싶지 않은 강력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것, 성취를 바라지만 성취는 특별한 몇몇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 몇몇에 자신은 속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순행자의 본성이다.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루고 성취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바로 이 본성을 거스르는 ‘역행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자청은 구체적으로 그 본성에 거스르는 역행자로 살기 위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 본인이 직접 실행하고 그 효과를 입증한 것으로 반드시 해볼 것을 강력하게 권유한다. 복잡하거나 해야 할 리스트가 많다면 기억하기 힘들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은 딱 두 가지다.  바로 독서와 글쓰기다. 어떤 책도 괜찮고 어떤 내용의 글쓰기도 상관없다. 무조건 하루에 2시간씩 독서를 하고 2시간씩 글쓰기를 해보라고 권한다.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친절하게 권하는 방법이 바로 ‘블로그 쓰기’이다.      


한때 많은 사람이 검색 방법으로 네이버를 절대적으로 의지할 때가 있었다. 점점 다양한 검색 경로가 생기면서 네이버를 의존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블로그의 인기도 시들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네이버의 위력은 대단하고, 검색했을 때 많은 사람이 신뢰하는 콘텐츠는 블로그다. 자청은 이 이야기를 하면서 여전히 블로그는 블루 오션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블로그는 최종적인 성공 목적지가 아닌, 그것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써 활용하기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말한다. 저청의 이야기를 읽기 훨씬 전에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았다.  


   


 

두 딸의 엄마표 영어 기록을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성장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기록의 역할만 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나둘씩 올릴 때마다 블로그 방문자 수가 늘고, 이웃을 신청해 주는 이들이 많아졌다.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영어 강사가 두 아이와 엄마표 영어를 진행하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썼다. 영어가 서툴렀던 아이들의 모습과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올렸을 때 돌아오는 피드백이 컸고, 많은 이들이 댓글로 궁금하거나 도움받고 싶은 것들을 물었다. 내 블로그가 아니어도 엄마표 영어에 관한 콘텐츠 정보는 수없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내가 올린 포스팅을 누군가 읽어주고 관심을 갖아주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렇게 내 글을 읽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글을 올리는 것이 점점 더 즐거웠다. 누군가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고 내가 가진 정보를 나누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마침 블로그에서는 ‘100일 챌린지’와 같은 이벤트가 있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포스트를 올리면 포인트를 선물로 주거나 추첨으로 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이벤트였다. 포인트와 선물에 마음이 뺏기기보다 100일 동안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는 것으로 좋은 기회였다. 공개적으로 블로그 챌린지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하고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날마다 글을 쓰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써야 할지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블로그의 주제를 엄마표 영어로 했지만 날마다 아이들이 하는 공부는 비슷했고, 성장하는 모습이 하루마다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기에 그 주제로 매일 쓸 글감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매일 글을 쓰기로 다짐하자 나의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내가 매일 듣고 보는 것들을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됐다.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 하는 모든 일들이 글감 찾기의 후보가 됐고, 오늘이 어제와 다른 특별한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길 바라게 됐다. 팬데믹의 답답한 상황 중에도 나 홀로 짜릿한 일상이 이어지는 듯했다.


하루는 내가 읽는 책을 예쁘게 찍어 소개하는 글을 올렸고, 아이들과 종종 함께 만드는 요리 레시피를 올려보기도 했다. 아이들이 잘 보는 원서와 책 목록을 소개하기도 했고, 영어 공부에 도움을 받은 유튜브 채널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꼭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자 삶의 곳곳에서 불쑥 이야기 재료들이 튀어나왔다.    

  

재빠르게 포착하지 않으면 떠오른 글감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블로그는 포착해서 잠시 보관해 두는 용도로도 괜찮은 공간이 된다. 아이들과 대화에서, 살림하다가, 책을 읽다가 갑자기 떠오른 글감들을 나중으로 미뤄두지 않고 곧바로 블로그 앱을 켜서 포스트에 메모 형식으로 적어둔다. 블로그에는 바로 발행하지 않고, 글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한 자리에서 발행까지 한번에 갈 수 있다며 가장 좋겠지만 보통은 몇 번의 수정을 거치게 된다. 그때 사용하는 기능이 바로 ‘글 저장’이다. 포획한 글감이 사라지기 전에 저장해 두고, 이후에 본격적으로 그것으로 제대로 요리해서 글을 쓰면 된다.      


블로그에 적는 글은 굳이 전문적으로 어렵게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긴 글 쓰는 것을 지양해야 하는 곳이다. 정보를 검색해서 들어오는 공간이기에 최대한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말하고 싶은 주제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문보다 만연체에 익숙한 나에게는 오히려 어려울 때도 있었다. 글을 쓰다 보면 장황해지고, 쓸데없이 설명이 길어졌다. 빠르게 정보만 채집해서 떠날 마음으로 방문한 이들에게는 거추장스럽고 불필요한 글인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블로그는 내가 만들어 가는 공간이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방향을 잡지 못해 블로그 강의를 들어본 적도 있다. 하루에 방문자가 수만명인 파워 블로거가 되기 위한 강의는 분명 큰 도움이 됐다. 자신만의 확실한 콘셉트가 필요하고, 포스팅할 때는 키워드를 분명하게 잡고 키워드 중심의 글을 반복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했을 때 네이버에 상위 노출이 되고 자연스레 방문자 수도 많아지고 파워블로그가 될 수 있다. 강의를 듣고 난 후 배운 것을 적용해서 글을 써보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그것에 너무 연연하기 시작하면 나의 색깔을 잃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블로그를 수익화해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공식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블로그란 아이들과의 일상을 기록하고 날마다 즐겁게 글을 쓸 수 있는 곳이길 원했다. 그 목적이 우선이 된 후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을 더하기로 했다. 그러자 매일 꾸준히 100명 이상의 사람이 내 블로그를 방문했다. 그리고 블로그에서 진심으로 소통하는 이웃을 만나 진솔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블로그는 나에게 글을 쓰는 재미를 다시 찾도록 해준 공간이었다. 엄마로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는 일단 블로그에 아이들과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가 재미있는 글 놀이터 공간이 펼쳐질 것이다.


덩달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나는 분명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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