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탕과 개밥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by 미류

그저께 포항 친정에서 가지고 온 매운탕거리를 꺼냈다.

어릴 적, 생선이 흔한 고장에서 자란 덕에 생선은 물리도록 먹었다.

하지만 그 당시 난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물에 담근 생선은 비린내가 먼저 떠올라 정말 싫어했다. '아지'라고 불렀던 생선을 엄마는 삶아서 뼈를 추려내고 추어탕처럼 시래기 가득 넣어서 국을 끓였다.

‘구워 먹거나 튀겨먹거나 조려 먹을 일이지 저렇게 비린내 나는 생선을 가지고 왜 국을 끓인담.’


쇠국기 국을 풍족하게 먹지 못했던 우리 집에서 생선은 국에서부터 다져서 튀김까지 못 해 먹는 게 없었다. 그래도 그 아지국은 만드는 과정만 보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엄마의 손맛 때문이었는지......


생선에 얽힌 그 정도의 추억은 그래도 괜찮다. 정말 맡기 싫었던 냄새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마당에서 개를 키우셨다. 아버지는 동물을 참 좋아하셨다. 정성을 다해 이뻐하셨다.

우리 집에서 새끼로 나서 늙어 팔려갈 때까지, 난 그 팔려가는 장면을 딱 한번 보았는데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슬퍼했었다. 가족을 잃은 기분 같다면 이해할라는가.


아버지는 개에게 먹일 음식을 늘 챙기셨다.

소박하게도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장을 도맡아 보셨는데 회 골목에 가셔서 생선 뼈를 손수 거둬 오셔서는 그걸 세숫대야에(개밥 끓이는 상용 세숫대야가 있었다) 넣어 물을 넣고 푹 끓이셨다. 생선의 뼈와 내장과 머리가 섞여서 끓으면 그 냄새는 우리 집을 온통 메워버린다. 난 그 냄새가 너무 싫었다. 그 냄새가 사람이 밥 해 먹는 같은 부엌에서 난다는 자체가 불결해 보였다.

개밥을 끓이고 난 다음 냄새가 사늘하게 식어 없어질 때까지 나는 부엌에 가지 않았다. 그러고도 불만이 남아 아버지한테 자주 투덜거리기도 했다.

나도 키우는 개가 싫지 않았지만 그 먹이 끓이는 냄새는 정말 구질구질하게 느껴져 질색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끓인 개밥을 옥상계단 중턱에 올려놓고 식히곤 하셨다. 그 개밥이 다 식으면 밥그릇에 사람 음식처럼 숟가락으로 떠서 담뿍 담아서는 개에게 건네주신다.

"쪼옹~ 이리 와 먹어라!"

우리 집 쫑이 밥 먹는 모습을 보시면서 아버지는 얼마나 다정한 미소를 짓고 행복해하셨는지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왜 그 당시엔 그 모습이 내 안에 들어오지 못했을까? 아버지의 마음을 왜 헤아려보려 애쓰지 않았을까?


어떤 날은 그 옥상계단 중간에 식으라고 둔 개밥에 우리 집 쫑이 성급하게 냄새를 맡고 올라와서는 입을 대다가 뜨거운 기운에 질색해 '깨갱~'거리고 내려와서는 난리를 피운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수돗물을 가득 틀어서는 쫑에게 들이밀었다. 쫑은 입을 물속에 넣고 퍼벅거리기를 한 참 하다가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개도 그렇게 생활의 된 맛을 보고는 훈육되는 것인가 보다. 그러면서 주인의 따뜻한 사랑과 정을 못 잊어 팔려갈 때 그렇게 눈물을 그렁그렁했나 보다.


매운탕을 요리하면서, 양념이 들어가기 전에 끓이는 그 냄새를 맡다 보니 이렇게 예전에 아버지가 끓였던 개밥이 떠오른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는 우리 집 풍경이라고 묻어두었던 그 기억이 새삼 새록새록 새로운 추억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아버지가 개밥을 주기 위해 보여주셨던 그 하나하나의 일들이 내게 따뜻한 유년기의 기억으로 재발견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릴 적 미성숙했을 때의 싫었던 감각적 경험이 어른이 되고 따뜻한 그리움으로, 아늑한 감정으로 바뀌어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 같은 훈훈함을 전해주니 말이다.


아버지가 떠나 가신지는 오래되었지만, 추억과 기억은 그리움이 되어 이렇게 또 내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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