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를 살리는 말, 배우다

by 귀여운영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에 편입학했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육아휴직 중 집에 머무르며 공부에 대한 갈망이 커졌지만, 무엇을 배워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맸다. 처음에는 실용적인 것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이 어려울 것 같아 추후 재취업에 도움이 되거나 배워두면 뭔가 쓸모가 있는 그런 실용성을 가진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자격증 공부라도 해보려고 여러 가지를 알아봤지만, 도무지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지 못했다.


공무원 시험도 고려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도전해 봤지만, 곧 흥미를 잃었다. 실용성이라 하면 역시 언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몬학습으로 일본어 공부도 해보고, 문제집을 사서 토익 공부도 해봤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이 없었던 탓에 오래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공부가 수월하게 잘 진행될 때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만 어렵고 막혀도 이 힘든걸 굳이 왜 해야 하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 의문에 뚜렷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일상만 영위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봤다. 육아는 생각보다 지루한 싸움이다. 말도 못 하고 소리만 빽빽 질러대는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식사, 배변, 목욕, 그리고 수면까지, 뭐 하나 손이 가지 않는 부분이 없다 보니, 하루 종일 붙어있다 보면 지겹고 고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이는 원래 그런 존재인데, 엄마인 내가 감히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지. 결국 그런 생각들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며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그저 아이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다 보니, 내가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루하루 뭔가 이룬 것 없이, 그저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지루하고 따분하며,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물론 아이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인생을 마냥 소모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다. 내 인생 없이 오로지 아이에게만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아이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게 되고, 나중에 이 아이를 독립시키는데 어려움을 느낄 것 같다.


역시 공부를 해야겠다. 하지만 도대체 뭘 공부해야 할까. 독서가 좋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책이라도 열심히 읽어봤다. 책을 읽다 보니 나도 창작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글쓰기를 해봤다. 글을 쓰는 건 재밌는데 내 능력치가 글쓰기를 지속하게 하는 데 한계에 부딪히게 한다. 문득 그 한계를 넘기 위해 이 쪽 분야에 대해서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주 오래전에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내 바람은 늘 막연했다. 그냥 멋있어 보였다. 근데 여길 나오면 진로가 너무 불투명한 것 아닌가. 결국 실용적인 학과에 진학했고, 결과적으로 그 전공은 졸업 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현재 완전히 버린 지 오래다.


공부가 꼭 실용적이어야 할까. 취업을 위한 공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애초에 내가 취업을 하고 싶은 건가. 솔직히 아니지 않나. 물론 취업을 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건 맞지만, 애초에 거기에 매몰돼 있으니 답을 찾기가 어렵다. 내 적성이 뭘까, 적성을 찾고 싶다, 적성, 적성, 수없이 되뇌지만, 결국에는 이 사회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쓰일 수 있을지, 쓰이기 위해서는 어떤 도구를 장착하고 있어야 할지, 그 실용성만 따지고 있으니 도무지 적성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계속 고민하면서 아무것도 못 할 바에 차라리 그냥 진짜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는 게 낫겠다. 나는 결국 문예창작을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독학은 지금까지 수차례 겪어왔듯이 중도포기의 위험이 크므로, 이번에는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학교 진학을 고려해 봤다.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학교를 찾아보니 많지 않다. 이 나이에 오프라인 대학에 진학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뱃속에 또 다른 아이까지 있다. 공부는 집에서 해도 된다.


찾아보니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대학원에 문예창작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곧바로 대학원에 입학 지원을 하기에는 기초 학력이 부족해서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전국에서 몇 명 뽑지 않는다고 하니 합격부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대학교에서 기초학문인 국어국문학을 배운 후, 확장하여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는 것이다.


어쨌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결국 나는 방통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는 길을 택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이 선택 또한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 적어도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내가 열심히 배운 무언가가 이 사회에서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지 못하더라도, 내 인생에서 어떻게든 그 쓸모를 찾으면 된다.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그 감각이 내 일상에 숨을 불어넣어 주고 나를 살아있게 만들어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배운다.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일단 시작하는 느낌이 좋다.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이번에는 왠지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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