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갓 돌이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임신 중이고 최근에 임신 중기에 접어들었다. 내년 봄이면 벌써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 막연하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종종 유튜브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해 본다. 요즘 유튜브에는 육아며 부모교육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이 넘쳐난다. 부모 자식에 관한 영상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고리즘이 ‘자식에게 버림받는 부모의 특징 4가지’ 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숏츠 영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호기심에 냉큼 클릭해서 본 쇼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너 때문에 참고 산다” 라는 말을 하지 마라. 이 말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뜻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이에게는 괜히 태어나서 부모의 짐이 됐다는 각인을 남길 수 있다.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죄책감과 불행한 감정을 심어주는 말이다.
둘째, 내 신세 한탄을 하지 마라. 아이 앞에서 "내 인생은 왜 이럴까", "내가 이렇게 살 줄 몰랐다" 는 식의 하소연은 아이에게 세상은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아이의 정서는 부모의 시각과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자란다.
셋째, 자식 앞에서 배우자를 욕하지 마라. 아이에게 부모는 단순한 어른이 아니라, 자신의 뿌리이며 정체성이다. 한쪽 부모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말은 아이에게 “너의 절반은 틀렸다” 는 메시지로 다가간다. 그 결과 아이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죄책감이나 자기혐오를 품게 될 수 있다.
넷째, 자식에게 과하게 간섭하지 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려 들면, 결국 아이는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다. 늘 부모가 개입하고 방향을 정해줄 경우, 아이는 ‘나는 믿을 수 없는 존재’ 라는 무의식을 갖게 된다. 결국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 채,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없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네 가지 행동을 하면 늙어서 자식에게 버림받는다고 한다. 가만 보니 이 영상에서 말하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모두 내가 어린 시절 모친으로부터 직접 겪었던 것들이다. 넷째의 경우 어릴 때는 방임형이었으나 오히려 성인기에 접어들며 간섭을 하기 시작해서 거부감을 느꼈다. 어쨌거나 그래서 내가 지금 모친과 거리를 두고 지내려고 하는 건가 싶다. 언제부터인가 모친을 대면했을 때 불쾌한 감정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사소한 언행에 화가 나고, 모친에게 매우 불친절해진다. 심지어 무례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 죄책감과 연민 등의 양가감정으로 인해 후회와 고통이 뒤따른다.
모친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죽고 싶은데 너희 때문에 억지로 참고 산다’ 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그땐 그 말을 무기력하게 듣고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 말은 분명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말이었다. 부친에 대한 욕도 자주 들었고, 심지어 부친을 닮았다고 비난을 듣기도 했다. 신세 한탄도 물론 했다. 신세 한탄은 내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됐다. 모친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늘 진이 빠졌다. 모친은 말이 매우 빨랐고, 자신의 힘든 속내를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나는 모친이 불쌍했고, 자식 된 도리에 나라도 들어줘야지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부모의 불행에 나 또한 가해자로서 가담한 것 같다는 생각에 죄의식을 많이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미성년자 때까지지, 성인이 되고 나서는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간섭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의견이 묵살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서로 함께 하는 동안에는 편안하고, 나중에 독립해서 따로 살게 되더라도 만나면 반갑고, 그 대상을 떠올렸을 때 기분 좋은 감정이 들어야 하는 것. 사실 이건 좋은 부모와 자식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인간관계란 결국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쁜 관계란, 만나도 반갑지 않고 불편한 기분이 들고, 떠올렸을 때 불쾌한 기분이 드는 관계겠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런 관계가 되어버린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숏츠 영상을 보고 ‘자식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만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준 것만 기억하고 자식은 부모가 못 해준 것만 기억한다는데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부모는 성인이 되어서 멀어진 자식이 야속할 뿐이고, 자식 된 입장에서는 부모가 자신에게 열 번을 잘해줘도 한번 못 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하는 시간은 짧은 것 같지만, 그 시간 동안 매 순간이 누적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단 한 번의 실수로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고작 저런 것으로 버림을 받는다니 억울하다 싶겠지만, 자식의 정신을 서서히 망가뜨린 벌일지도 모른다. 혹은 필연적인 귀결일 수도 있겠다.
누구든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겠지만,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불행으로 인해 한순간에 가정은 무너질 수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는 본인의 힘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배우자와의 불화, 경제적인 어려움, 심신의 질병, 외부로부터 닥쳐오는 예기치 못한 불운들, 이런 요소들은 가정의 평화를 야금야금 갉아먹거나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기회가 있을 때 노력해야 한다. 어리석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지금 나의 품 안에 있는 이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동안에도 또 내 품을 떠난 후에도, 나를 떠올릴 때 좋은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 절대로 연민이나 부채감 따위로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저 영상에서 말한 금기시되는 것들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잘해주는 것은 그다음 문제고, 일단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보련다.
사실 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선행이 따라야 한다. 우선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하고, 내가 행복해야 하며, 내 인생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배우자 욕을 안 할 수 있고, 억지로 참고 산다느니 신세한탄을 안 할 수 있고, 자식에게 집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란 결국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자식을 위해 우선 나부터 행복해지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