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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겐빵 Jul 05. 2023

하루하루가 치열한,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며

도시와 시골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여러 의견이 오가겠지만 표면적으로 보이는 차이는 인구가 아닐까 싶다. 도시 속에서 사람들의 삶은 시골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 속에서 살기, 아니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시골과 달리 끊임없는 발전과 경쟁을 거듭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번 글은 사실 교양수업에 단편소설 하나를 읽고 기말과제로 제출했던 에세이이다. 그럼에도 이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브런치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사람들이 '살아남고' 있는 이 공동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하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생존신고는 덤이다!


현대 자본주의 체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근무를 통해 이익을 얻으며 노동의 가치를 실현한다. 일부는 자영업이나 프리랜서 등의 활동을 통해 스스로 많은 것을 해결하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대개 처음에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실무를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즉, 일반적인 회사원은 직장에서 본인이 맡은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에 따른 대가를 노동력을 제공한 회사로부터 받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직장 중 상당수는 여전히 회사에서 얻는 대가가 경제적 지원에 치중된 경향이 있으며, 이에 따라 경제적 성과를 내기 위해 압박이 가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압박의 과정에서 직장인은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게 된다.


업무 스트레스를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중 상당히 많은 경우가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이다. 실제로 직장인 2,258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만족도 현황’에서 현재 직장에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인원은 전체의 43.6%에 달했으며, 현재 직무에 만족하지 않는 이유로 ‘대인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18.2%)가 상당수를 차지하였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직장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전체의 86.7%를 차지했으며, 주요 원인으로 ‘상사 및 동료와의 인간관계’(25.2%)가 지적되었다. 이렇듯 다양한 업무 스트레스 중에서도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퇴사를 꿈꾸며 일탈을 계획하는 등 나름의 해결책을 수립하고 감행하기도 한다.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 한 직장인들의 일탈은 꿈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때로는 이를 감수하고 본인의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존재한다. 장류진의 단편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직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도, 기쁨을 좇기 위한 과정조차 자유롭지 않은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현대 직장인과 직장문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2가지의 주된 갈등이 묘사된다. 하나는 ‘우동마켓’이라는 이름의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스타트업 회사의 사원 안나가 직장 구성원들에게 내면으로 느끼는 갈등이다. 작중에서 그녀는 스타트업에서 매일 진행하는 스크럼 시간에 회의를 느끼고, 직함이나 본명 대신 영어 이름을 쓰는 사내 문화에서도 위계가 느껴지는 모순점을 찾는 등 회사에 잔존하는 비합리적 요소에 불만을 갖는다. 또 다른 갈등은 우동마켓의 열혈 사용자인 ‘거북이알’이 자신의 직장 유비카드사 회장에게 허락받지 않고 루보프 스미르노바 내한 공지를 올린 것을 발단으로 회장이 거북이알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가하면서 일어난 표면적 갈등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회장은 거북이알을 탐탁지 않게 보며, 그녀의 부서를 공연 담당에서 다른 부서로 옮기고 월급을 사내 복지 포인트로 지급하는 등의 제약을 건다.


이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갈등에 처하지만, 안나의 초기 대응, 거북이알의 대응, 그리고 거북이알과 만난 후 안나의 대응에서 나오는 각자의 대처 방식은 모두 다르다. 스크럼 시간에서의 안나는 어뷰징 유저에 대한 의견을 소신껏 밝히기는 하지만, 스크럼의 진행 자체에 대한 불만은 마음속으로 삭인다. 거북이알은 유비카드사 회장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한 쪽에 가깝지만, 자신이 애정을 갖던 공연 담당 부서에서 카드 제휴 업무로 이동할 때도 ‘카드사 본연의 역할’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였고, 더 나아가 월급을 복지포인트로만 받으라는 강한 제약조차 이겨낸다. 이런 모습은 거북이알의 긍정적인 면모를 볼 수 있게 한다. 거북이알과의 만남 이후의 안나는 같은 회사의 사원 케빈과 대화하며 그의 고충을 이해하려 하고, 사내에 바라는 점을 상급자에게 피력하며 초기에 비하면 내부에서 해결책을 이루고자 하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자신의 취미 생활을 위한 시간을 할애하는 등 본인과 조직 모두를 적극적으로 챙기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세 가지의 대처 방식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거북이알의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해결방식과 이를 본 안나의 대응 변화이다. 거북이알의 갈등은 회장이 그녀에게 월급 대신 포인트가 들어오는 등의 불이익을 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일방적인 양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예정되었던 월급날 다음 날의 일상이 의외로 포인트만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모습을 보며 ‘모든 것을 한결 편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에 이른다. 그런데도 현금이 필요할 때도 ‘현금도 포인트의 일종일 뿐, 복지포인트를 돈으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며 직원가로 싸게 물건을 사고, 이것을 근무 시간 내에서 중고 거래를 하며 삶과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지혜롭게 문제를 해결한다. 우동마켓의 열혈 사용자 거북이알의 깊은 사정을 알게 된 안나는 이후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려 있는 ‘ㅁ’자 모양새의 사옥을 보며 용, 새 떼, 열기구, 헬리콥터 등 자기 직장이 위치한 판교에서 보기 쉽지 않은 것들이 사이를 지나가는 상상을 한다.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에도 일어났을 때 재밌을 법한 이벤트들을 상상하는 장면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현실이 되지 않더라도 그것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있는 일임을 깨우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케빈에게 레고를 선물하는 모습과 대표에게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을 위한 건의 사항을 말하는 장면은 또 한 번 안나의 심경 변화를 반영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모두에게 가장 편한 방법은 퇴사하고 자신이 원하는 회사로 들어가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편한 방법 대신 직접 발품을 팔며 원하는 것을 찾는 모습, 혹은 취미를 이용해 스트레스를 풀며 이른바 ‘워라밸’을 지키려는 모습은 회사에서 나오기 어려운 또 다른 현실적 제약과 맞물린다. ‘사무실 나서는 순간부터는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딱 코드’를 뽑는 안나와 거북이알의 모습은 속으로는 회사에서 기대하는 것이 크지 않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회사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거북이알이 키우는 거북이 세 마리의 이름과 ‘월급날이니까 괜찮은’ 홍콩 여행 계획과 같은 요소를 볼 때, 직장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에 받는 급여의 안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다 적극적인 일탈을 막고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는 원인이라는 점에서 직장인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위와 같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서도 계속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점에서는 직장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다른 직장인들에게 공감되는 요소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그 상황을 바꾸며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변화를 꿈꾸고 이를 해내는 등장인물은 읽는 독자들에게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겪을 사람에 대한 위로를 던진다.


개인의 능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은 필요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도 다른 순간보다 그들의 핸드폰에 월급 알림이 동시에 떴을 때 소설 중 처음으로 ‘웃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듯,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것이 연봉의 액수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연봉을 넘어 상사지지와 동료지지 또한 직무 스트레스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친다. 거북이알이 사내에서 겪은 불이익에도 남들과 다르지 않은 회사생활을 하며 위로를 받은 것과 그 이야기를 들은 안나의 심경 변화에서 볼 수 있듯, <일의 기쁨과 슬픔>은 결국 회사생활 속 일이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은 현재 처한 상황 속에서 서로 간의 공감과 위로, 그리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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