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라는 건 2순위라는 것
살아가며 가끔씩 나는 내가 영원히 둘째일 거라는 것을 느낀다
언니가 먼저라서
동생이 먼저라서
저 친구가 먼저라서
어떠한 이유에서든
사람들과 맺는 모든 관계 속에서 나는 1순위가 아닌 2순위인 것이다
언니에 대한 엄마의 불평과 짜증을 들어주는 것도 나
엄마와 함께 울고 고민하는 것도 나
철없는 언니를 두어 언니의 일부 역할까지 대신하는 것도 나
항상 가족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것도 나
부모님께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것도 나
내 눈에는 내가 제일 서러운데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정말로 내가 그리 서럽지 않은 상황인 것만 같다
스스로가 유난을 떠는 것 같다
가족들과 잘 지내려는
내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이런 날 비웃듯이
나 없이도 잘만 살 것 같은 4인의 모습이 내게 보이곤 한다
다른 사람들도 겪는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가족들에게 내가 하는 모든 말이 들리지 않는 것 같은,
그들이 내 존재를 의식하고 있지도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아주 이상한 날이 있다
아무도 날 원하지 않고, 내가 빠졌는데도 위화감이 없어 보여서 기분이 울적한 날.
평소에 가족들과 잘 지내다가도
이렇게 아무런 연유 없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을 때면
나는 내가 크림수프 위에 올라가는 파슬리 가루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이고.
누군가의 눈에 띌 만큼 존재감이 있지도 않은
그런 파슬리가 나와 닮았다.
선택받기만을 기다리는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식사에 파슬리는 빠질 수 있어도 크림수프는 빠질 수 없다.
나는 평생을 누군가의 2순위로 살면서 체념에 익숙해지는 걸 배웠다
나는 내가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초콜릿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초콜릿이 아닌 종이쪼가리였고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 아프지만
나는 이렇게 살았으니까 괜찮다
어릴 때부터 남동생에게 밀려 둘째였던 걸 어찌하겠나
일찍 철이 들었다며 엄마는 항상 슬퍼하고 사과하셨지만
난 엄마가 사실은 남동생을 조금 더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엄마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엄마로부터 사랑한다는 말도 다 커서야 듣기 시작했지만
남동생이 나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먼저, 그리고 더 많이 들었지만
2순위니까 괜찮다
엄마가 항상 언니의 일로 힘들어하고 신경 쓰는 동안 그 옆에서 위로해 주는 건 나였지만
나까지 그러고 싶지 않아서 얌전히 살았던 나는 어쨌거나 2순위다
그러니 괜찮다
언니의 학교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엄마와의 나들이가 급하게 중단되었을 때
내가 2순위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으니까
괜찮다
2순위로 살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으니까 괜찮다
그래도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아니까 괜찮다
서러운 일들이 많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서러운 일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거니까
괜찮다
아무도 몰라줘도
나는 내가 얼마나 가족들을 사랑하고
얼마나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아니까
괜찮다
어차피 가족들은 평생 날 이해하지 못할 거고
원래 이렇게라도 인터넷에 털어놓는 거니까
괜찮다
자기 연민이 심해서 이런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날 것 같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감쪽같이 숨기니까
괜찮다
나도 언젠간 누군가에게 1순위가 될 수 있으니까
괜찮다
난 낭만주의자니까
꿋꿋하게 버틸 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