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이사와 한 번의 자유의지로
나는 학교를 지금까지 총 7군데를 다녀봤다. 부모님이 군인, 공무원과 같이 이동할 일이 있는 직업도 아니신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거의 한 동네 근처에서 이곳저곳 돌아다닌 거라 가끔 아는 애를 만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시작한 학교 생활이다.
초등학교 4군데, 중학교 1군데, 고등학교 2군데로 현재진행형. 대단한 것처럼 써놨지만 사실 다른 아이들보다 4군데 더 다닌 것뿐이다. 이유야 뻔하다. 이사. 그러나 가장 최근에 있었던 고등학교 전학만은 내가 부모님께 부탁을 드려서 나의 자유의지로 한 것이다.
이쯤 되면 전학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 매번 어느 순간부터는 학교에 소속되어 친구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지내버리고 곧 그런 나 자신의 모습에 그 익숙해져서, 전학이란 게 어떤 것이었는지를 금방 잊어버린다. 매번 새로운 걱정에 취해 전학을 마주하는 내 모습이란. 첫날의 긴장이 무뎌지는 날은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그때그때 상황이 다르다 보니 사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 학교에 한번 익숙해지면 익숙해지기 전의, 내가 쌩 외부인 같던 기억은 정말 금방 흐려지고야 만다.
새학기면 사실 적응이랄 것도 없다. 다들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학기 중간에 전학을 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전학을 간 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그때부터가 진짜다. 적응이 관건인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라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보통은 초반 며칠 혹은 몇 주 정도 관심을 바짝 받는다. 선생님들께서도 너 어디서 왔니, 왜 왔니, 이 학교 어떤 것 같니, 반 친구들이 잘 챙겨주니, 여러 번 물어보시고 매시간마다 뉴페이스라는 이유 하나로 그분들의 샤라웃을 받을 수 있다. 반 친구들도 날 궁금해한다.
그 이후로는 관심이 급격히 줄어든다. 알아서 적응해야 한다. 내가 무슨 초등학교 저학년도 아니고 담임 선생님이 내 적응을 도와주라며 붙이는 친구가 있을 리 만무하다. 나는 초반 몇 주는 분위기를 보는 데 집중한다. 누가 누구랑 친한지, 누가 누구와 싸웠는지를 눈치껏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볼 때면 내가 무슨 전술가라도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상당히 유치하다는 걸 알지만 내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그 뒤에는 친구들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정도에서 적당히 사는 편이다.
한 집단에 녹아드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한다. 당장에 친한 친구들이 생긴 것 같아도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을 때도 있고, 나는 아직 얘가 어색한데 정작 얘는 날 친하다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면에서는 또 어떤가. 반 친구들은 내가 모르는 맥락과 언어로 소통하고 내가 모르는 일들을 공유하고 있다. 솔직히 외롭지 않은 게 더 이상하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도 어렵다. 이전의 학교 시스템은 모두 잊고 새로운 수업 시간표부터 새로운 장소, 새로운 교칙에 얼른 익숙해지는 수밖에.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 그제서야 나도 이 반의 진정한 일원이 된듯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적응하는 과정이 순탄치 못한 건 당연하다. 친구를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반 아이들이 다 싫어하는 애였다든가, 지내보니 나와 코드가 잘 안 맞는다든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래 부딪히면서 알아가는 게 빠르다. 모르면 물어보고, 싫으면 거리 두는 게 최선이지 싶다.
전학을 많이 다니면 처세술에 능해진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 보는 눈도 생기고, 처음 보는 애한테도 쉽게 말 걸 수 있는 담력이 생길 수도 있다. 피곤해지기 싫어서 친구들에게 마음을 덜 줄 수도 있지만 짧고 굵게 지내보고자 하는 마음에 열정을 불태울 수도 있고, 각종 트러블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실전 사회생활 공부를 할 수 있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으며 대처하는 스킬이 발전하는 걸 느끼는 것도 재미지다.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난 전학을 다니는 게 싫지 않다. 물론 매번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되지만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잘 적응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괜찮아진다. 물론 아니겠지만서도. 그냥 내가 학교 생활 서바이벌 전문가라고 생각하면 뭔가 특별해진 기분이 들기에 그 기분으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련다.
이별은 슬프고 인연은 짧지만 시간이 흘러 언젠간 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전학이 싫지 않다.